이상헌 자서전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ⅩⅣ)

충남시대 2025. 3. 17. 16:50

친구의 충고대로 전부터 마음속에 둔 여학생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탄천중학교는 5반까지 있었는데 3반까지는 남자반이었고 4반은 남녀 혼합반, 그리고 5반은 순수 여학생반이었다. 시내에 사는 그 여학생은 키가 중간 정도였고 얼굴이 하얘서 나처럼 얼굴이 검은 촌놈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될만했다. 월례고사에서 상을 받는 것을 보면 공부도 제법 잘했다. 시내에서 식당 겸 가게를 하는 부잣집 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뛰었다. 친구들은 누구랑 연애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조숙한 친구들은 같이 이야기도 하면서 빵도 사 먹고 놀았다. 동창생들은 절반은 한 살 위의 닭띠생이었다. 그 한 살 차이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만큼 그들에 비해 늦은 것 같이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일을 해야 해서 되도록 공부한다는 핑계로 집에 늦게 돌아갔다. 한편으론 그녀가 있는 교정에서 되도록 머무르려는 심산이기도 했다. 마음속에 그녀의 등장은 학교생활을 재미있고 활기차게 변화시켰다. 학교에서 지나칠 때 그녀 얼굴이라도 보면 왠지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후일 어른이 돼서 누구를 짝사랑했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아무개, 아무개 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모의고사 성적을 등수별로 붙여놓는 방문에 상위에 내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146~150점대 나왔다. 거기에 체력장 점수를 합하면 170점 정도 예상을 하여 사대부고에 입학하려고 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남녀공학하는 학교에 가면 중성이 된다며 극력 말렸다. 고등학교 입시에 체력장이라는 시험이 있었다. 고입 시험 200점 만점에 20점을 환산하는 중대한 시험이다. 모의 수류탄 던지기, 왕복 달리기, 허리 굽히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100m 달리기, 1,500m 달리기, 멀리뛰기 등 점수에서 특급이 20점, 1급이 19점이어서, 하교하기 전에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연습과 던지기 연습을 하였다. 그녀와 친구들 역시 체력장 연습을 했다. 턱걸이 대신에 여학생들은 철봉에 목을 걸고 얼마나 오래 있느냐로 측정했다. 남자들은 턱걸이 만점이 20회라서 힘들었다. 물론 여학생들은 더욱 힘들었다. 그녀가 철봉에서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허리를 들어 철봉을 잡도록 체격 좋은 여학생들이 도와준다. 내가 허리를 안고 들어주고 싶었다. 체력장은 공정한 측정을 위해, 공주군 관내 선생님들이 동원되어 공주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했다. 측정하러 가는 날, 부여에서 공주 가는 완행버스에 같이 탔다. 내가 먼저 버스에 올라 맨 뒤쪽 의자에 앉았다. 바로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남색 운동화에 하얀 양말, 남색 치마에 흰 교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과 목은 학처럼 길고 하얬다. 뒤에 앉은 남학생들은 앞에 선 여학생들에게 아무도 양보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앉아서 가야만 체력이 방전되는 것을 막고 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나 그녀에게 앉으라고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양보를 하게 되면 친구들이 뭐라 할까, 훗날 생각에 눈을 감고 공주까지 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