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ⅩⅦ)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특수반인 우리들은 다른 반과 달라야 한다며 채근했다. 우리들은 스스로 공부하도록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자며 자율학습 분위기를 만들자고 회의를 했다. 떠들면 반장한테 불려 가 엉덩이를 맞기도 하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처음 수업은 영어 시간이었는데 외국 사람처럼 생기셨고 유창하게 영어를 하여 중학교 선생님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최태흥 선생님으로 교무과장을 맡았다고 했다. 둘째 시간은 국민윤리이었는데 최명학 선생님으로 학생과장이었다. 셋째 시간은 불어 시간이었는데 채기병 선생님으로 서울대 불어과를 나왔다고 했다. 젊고 귀엽게 생겼는데 발음 중 R 발음은 콧소리로 ‘에흐’ 소리가 나면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다음 시간부터는 대청소를 하고 오후 집에 들어왔다. 일상 용품을 사러 시장에 갔다. 비누 80원, 전등 70원, 노트 1,400원, 운동화와 실내화 770원, 모자 450원, 등록금 책 대 2,100원, 도서대 400원, 모표와 단추 300원, 차비 500원, 우산 100원, 연탄 1,400원, 집세 6,000원 당일 지출한 내역이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음)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모두 시골 중학교에서 제법 공부 잘하는 애들이 모인 학급이라 첫 중간고사 성적이 형편없게 나왔다. 학급성적이 뒤쪽에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었다. 아버지가 누님 집에 오셔서 나를 부르셨다. 이렇게 공부하려면 때려치우라고 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진학하지 말고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경영하는 자동차 정비공장 다니라고 해서 밤새 운 적도 있었는데, 또 그 말씀을 하신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아버지께 다짐하고는 그날부터 진짜 더 열심히 했다. 그 후 기말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이었다. 필기하지 않았다며 때리신다. 잘못했다며 다음부턴 열심히 필기하겠다고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하면 되지, 이렇게 어려운 로그함수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나오라고 한 다음 선생님은 의자를 바닥에 던져 부서진 의자에서 각목이 몇 개 나왔다.
무릎을 꿇려놓고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단단히 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의 신규 수학 선생님인 청년 교사였다. 있는 힘을 다해 때렸다. 교복 바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고 허벅지 살이 패이는 통증을 느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며 각목을 던졌다. 그 후로는 어깃장 놓는 것처럼 수학 시간에는 영어와 다른 과목을 버젓이 펴놓고 공부했다. 수학 선생님은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맘이 편했다. 그러니 수학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다른 과목 성적은 우수했다. 대학 입시에서 수학을 포기한 대가는 혹독했다. 우리 반 교실은 맨 우측 끝에 있어 야구부 합숙소와 거의 붙어 있었다. 야구부원들의 후배 길들이기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선배들의 흡연 장소로 후미진 이곳이 적합했는지, 흡연한 후 우리 교실에 와서 트집 잡아 구타하였다. 우린 언제나 긴장하면서 조용히 교실에 있었다. 교실에 있으면 맞는 일이 있지만, 운동장이 보이는 스탠드에 앉아 야구부 연습하는 것을 보면 신이 났고 맞을 일도 없었다. 매일 점심시간을 비롯한 쉬는 시간에는 야구 연습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