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66회)
중앙아시아의 고통과 낭만
1992. 5. 24
엄청난 평가를 받으면서도 소설을 쓸수록 지식의 한계를 느낀다. 장편에 들어가기 전 독서부터 해야겠다.
1992. 6. 6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농가로 허가 난 땅을 1200여 평 샀다. 소원하던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막다른 골짜기여서 물이 좋고 송림의 향기가 그윽하다. 골짜기 물을 그냥 마시기도 했다. 오염물질이라고 해야 짐승 오줌똥밖에 더 있겠는가.
1992. 6. 11
이외수 작가가 내 작품을 칭찬했다고 그의 아내가 동창인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보라 아빠가 또 업소를 나갔다. 게다가 세무조사까지 나와 4일 동안 매상을 체크했다. 내가 세무 공무원에게 “재벌도 아닌 작은 식당을 4일 동안 조사하니 영광입니다. 철저히 조사하세요.” 했더니 그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1992. 7. 24
오늘부터 러시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문인 40여 명이 모스크바로 출발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국호가 러시아로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입국하는 셈이다. 오후 7시에야 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호텔에 투숙했다.
옛 소련 땅을 두 번 밟아보는 셈이다. 모스크바에서는 그전에 투숙했던 코스모스호텔에 다시 투숙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대로 지하도를 지나 메트로광장에서 거리의 악사인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박수 치고 신나게 한바탕 놀았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고 남녀노소가 흥에 젖었다. 노파가, 아낙이, 사내가, 총각이 아코데온 앞에 나와 춤을 춘다. 땅바닥에 놓인 돈 주머니에는 아코데온을 연주하는 아낙만이 관심을 줄 뿐 모두 신이 났다. 우리가 주는 달러말고 가난한 행인들도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낸다. 정렬적인 민족! 와해되어가는 과도기인데도 그들의 흥만은 가난하지 않았다. 잔혹한 스탈린 체제를 겪으면서도 시민들의 문화정신은 여전했다.
1992. 7. 25
호텔에서 조식 후 온종일 시내 관광에 나섰다. 크레믈린궁, 붉은광장, 성바실리성당, 아르바트거리, 고리키성당,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대 문호 푸슈킨의 동상이 있는 고리키 거리 등을 탐방했다.
1992. 7. 26
오늘도 온종일 자카스 숲에 있는 톨스토이 생가를 방문하고, 레닌언덕, 모스크바대학교, 올림픽스타디움, 푸슈킨박물관 등을 관람했다. 저녁에는 러시아 작가들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지독한 보드카를 마신 탓에 금방 취했다. 홀에서 춤을 추는 러시아 문인들에게 우리 일행 중에서 나 혼자만 홀로 나가 러시아 여류 시인을 껴안고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행 모두가 박수를 보내주었다.
“춤을 언제 배웠어?”
조병화 시인과 한 자리에 앉아 있던 한무숙 소설가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어머니뻘인 한무숙 선생은 나를 무척 좋아해서 늘 곁에 데리고 다녔다.
1992. 7. 27
조식 후 항공편으로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타로 향했다. 천산산맥이 병풍을 두른 공항의 경관부터가 이색적이다. 산등성이를 덮은 하얀 눈과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더위가 공존하는 공항. 중앙아시아는 나그네의 허무한 낭만과 말발굽의 모험을 동시에 자극하는 땅이다.
이튿날에는 온종일 전용버스를 타고 다녔다. 오전에는 심포지움에 참석했다가 오후에는 간단한 공연을 구경했다.
1992. 7. 29
조식 후 오전 내내 알마타 시내에 있는 레닌거리, 칼 맑스 거리, 고리키공원, 아바이 오페라극장 등 문화시설을 구경하고 항공편으로 페테스부르크로 향했다.
소련이 해체되었지만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렌닌과 그가 신봉한 고리키의 흔적은 가는 곳마다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예쁘다. 백계러시아 여성의 투명한 살결과 미의 여신처럼 조각한 듯한 미모, 그녀들은 한국인의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에서 긍지를 느끼고 있다.
담배나 티셔츠 같은 선물 대신 책을 달라는 한 많은 늙은 학자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는 철학교수였다.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이주를 당했던 동포의 수난기를 기록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비교적 잘 사는 한 동포의 가정을 방문했다. 아내는 인민배우이고 남편은 영화감독이다. 그들은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했다.
1992. 7. 31
지난해 5월부터 레닌그라드를 본 이름인 성페테스부르크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번에 갔을 때만 해도 레닌그라드였다. 발 빠른 역사의 회전을 느낀다. 아름다운 에바강이여!
장거리 버스 투어가 시작되었다. 페테스부르그에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달렸다. 산림을 지나 핀란드로 들어서는 기분. 정말 드문 코스다. 숲과 호수와 낯선 국경의 풍경 등 너무 황홀하다. 그런데 김ㅇ총과 그의 여자 패거리들이 종일 술을 마시며 버스에서 떠드는 바람에 기분을 망쳤다. 결국 헬싱키 호텔 술집에서 김ㅇ총과 다투고 말았다. 나는 김ㅇ총에게 주먹을 들었다가 참았다. 저런 주정뱅이와 그의 패거리가 한심하다. 그들의 상식적인 언어가 구접스럽다.
황금찬 시인이 내게 하소연 비슷한 말로 문단이 너무 썩었다고 말한다. 시를 써 등단하는데 300만 원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한숨을 쉰다.
1992. 8. 1
이튿날에는 온종일 전용버스 편으로 헬싱키 시내를 관광했다. 알렉산더 거리, 템펠리아우기오 교회, 마아켓광장, 시밸리우스 공원 등을 관람하고 크루즈 SILJA LINE 편으로 해협을 건너 스톡호름으로 향했다. 유람선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석양과 백야의 수평선이 환상적이다.
1992. 8. 2
전용버스를 타고 온종일 밀레스정원, 시청사, 왕궁, 옛 시가지 등 스톡호름 시내를 관광했다. 특히 왕실 정원에서 만난 두 처녀와의 자리가 추억거리다. 그중 하나가 생일이라며 저희들이 가져온 케잌을 나누어준다. 순박한 아가씨들이다. 임영조 시인, 조여주와 셋이 그녀들과 어울렸다.
1992. 8. 3
조식 후 오전에는 스톡호름 시내에 있는 와사박물관, 드로트닝홀름 궁전 등을 관람하고 항공편으로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로 향했다. 어서 피요르드와 빙하를 보고 싶다. 1시간을 날아 오슬로에 도착하여 곧장 호텔에 투숙했다.
1992. 8. 4
호텔식으로 아침을 들고 버스 편으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국회의사당, 비젤란드 조각공원, 왕궁, 시청사 등을 둘러보고 항공편으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1992. 8. 5
조식 후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관광에 나섰다. 댐광장, 왕궁, 다이아몬드공장 등을 관람하고 풍차촌과 운하를 구경한 다음 오후에는 고속도로를 달려 벨기에와 독일 바덴바덴을 지나 파리로 향했다.
1992. 8. 6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전용버스로 루브르박물관, 콩코르드관장, 샹제리제거리, 개선문, 노틀담사원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고는 세느강에서 뱃노리를 하며 파리의 야경을 구경했다. 유람선에는 수십 개 국의 관광객이 어울렸다. 이태리 밀라노에서 온 친구와 함께 왔다는 안나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1992. 8. 7
조식 후 오전 내내 호화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보내고 오후에는 몽마르트언덕, 성심성당, 빅톨 위고가 묻힌 팡테옹 등을 관람한 후 항공편으로 서울로 향했다. 몇몇 순수 문인 말고는 저속한 패거리들의 잡소리 탓에 피곤한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나와 붙어 지낸 문화일보 신 기자가 내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왜 우리 문인들은 모두 엘리트가 아닐까? 무척 아쉽다. 앞으로 문학단체가 팽창할 테니 더욱 앞이 캄캄했다. 옛날에는 문인협회가 존경받는 단체였잖은가. 그런데 지자체가 생기면서 숫자놀이판 단체가 되어 타락하고 있잖은가. 감투를 탐내는 판에 순수한 문인이 될 수 있겠는가. 창작은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닌가! 그러니 정치인처럼 표 모을 새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