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자서전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3회

충남시대 2025. 5. 27. 14:12

중대에 이렇게 한 기수가 많이 오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영부영한다며 선임들은 우릴 힘들게 했다. 내무반에 들어가 선임에게 전입 신고를 하였다. 내무반 한쪽에 머리를 박고 다른 한쪽에 다리를 쭉 뻗어 얼차려를 받았다. 6월 23일 무더운 여름에 그렇게 한참을 하자 고요한 가운데 땀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힘에 겨워 내무반 바닥에 떨어진 친구들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열중쉬어’ 한 상태에서 앞으로 전진을 외쳤다. 머리가 아파 전진하지 못하는 동기들은 몽둥이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신고를 마친 다음 얼굴과 손을 씻고 중대장에게 전입 신고를 마쳤다. 내무반에 들어온 후에는 각 선임 기수별로 집합하여 이러쿵저러쿵 잔소리와 간단한 얼차려를 받았다. 취침 점호가 끝나고 12시에 ‘기상’이라는 외침이 있었다. 소주 대병이 놓여 있고 안주는 없었다. 신병 환영식을 한다고 했다. 일렬횡대로 서서 밥공기 그릇에 소주 한 잔씩을 받았다. 두 달 동안 한잔도 마시지 못한 술이 목에 와닿았다. 동기생 한 명이 마시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세로 서 있었다.
“야 임마. 왜 안 마셔?”
“신학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와서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말대꾸한다며 술잔을 내려놓고 여러 차례 맞았다.
“술을 마신다 실시.”
중간 선임이 지시했다. 우린 경직된 자세로 동기생을 바라보았다. 동기생은 하는 수 없이 술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우물쭈물하였다.
“하늘을 향한다. 실시. 열을 센다 실시.”
계속 지시가 떨어졌다. 동기는 마시고 두어 번 ‘켁 켁’ 소리를 내더니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 친구는 2주일 후에 아버지가 전남 어느 곳의 검찰청 검사라며 데리고 갔다. 검은 세단이 오고 중대장은 위경소에서 대기하다가 검사를 모셨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그날이 끝이었다.
그렇게 102 전경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당시 전경은 시험을 통한 지원 입대여서 대학 재학자가 다수였고, 어떤 선임은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온 선임도 있었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들어온 김 일경은 내게 참 잘 대해주었다. 그는 취사장에서 근무하였는데, 나를 취사장에 근무할 것을 추천하여 나는 반찬을 만들고 그릇을 닦았다. 어머니가 해주던 맛을 살려 콩나물무침을 할 때 참기름을 넣었다. 중대장이 맛있다며 칭찬을 했다고 중대장 당번병이 전했다. 그 후 동기들은 섬에 흩어져 있는 초소로 발령이 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중대 본부로 등대하여 지시공문과 특히 중요한 암호문건을 받아 가며 부식을 구입해 초소로 돌아갔다. 등대하면 내가 있는 취사장으로 와 초소 생활을 이야기해 줬다. 동기들은 힘든 초소 생활을 이야기했는데 매일같이 집합당하고 매타작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초소로 발령 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나도 초소로 발령이 났다.
여천군 화정면 개도 초소인데, 여수항에서 두어 시간 가야만 하는 먼 거리였다. 개인화기를 수령하고 더플백에 일상 용품을 넣고 인솔하러 온 선임과 여수항에 나갔다. 시간이 맞지 않아 여객선을 타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선임이 날 불렀다. 개도에 사는 어선을 찾아 그 배를 타고 개도로 향했다. 처음으로 타보는 배, 여객선도 아닌 어선은 파도를 이기며 힘겹게 전진하였다. 하얀 스티로폼이 가득한 어장에는 어김없이 갈매기가 날아다녔다. 뱃멀미로 현기증이 나며 토했다. 저녁이 되어 개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임은 마을 이장님 댁에 들러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있어 초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초소다, 초소다? 저그 바위 위로 돌아 가이다.”
말이 빠르고 첨 듣는 억양이라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들은 다른 전경들은 익숙한데 처음 보는 날 보며 신기해했다. 처음으로 와본 섬 모든 것이 신기했다. 걸어서 4㎞ 산길을 가자 전경 초소가 나타났다. 우렁찬 목소리로 ‘충성’을 외쳤다. 전 대원 앞에서 전입 신고를 마쳤다. 우리 초소로 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해삼과 멍게를 내놓고 환영회는 시작되었다. 마침 청주가 고향인 동기가 있어 더욱 반가웠다. 해삼이며 멍게는 공주 촌놈으로서 처음 입을 대는 것이었다. 해삼을 먹으면서 커다란 거머리 생각이 나서 도저히 먹지 못하고 뱉었다. 물컹거리는 느낌의 해삼은 그 이후 제일 좋아하는 안주가 되었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