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유럽에서까지 체인점 요구
1984. 12. 9
대전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집행유예란 전화를 받고 나는 식당 구석방에 달려가 혼자 실컷 울었다. 지난 공판 때 공범이 전과자여서 힘들겠다는 걸 공범의 몫까지 지불하고 그놈을 소년원에 보내는 조건으로 태호의 집행유예를 받아낸 것이다.
정문 앞에서 밤 9시까지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대여섯 명이 정문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태호는 맨 앞에 걸어오고 있었다. 태호야, 하고 불렀더니 아빠한테 달려온다. 나는 그놈을 껴안고 “내 새끼!”를 연발했다. 그놈도 아빠를 꼭 껴안는다. 감격 어린 순간이었다. 그놈을 차에 태우니 누구 차냐고 묻는다. 친구 차라고 속였다가 나중에야 우리 차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놈에게 생두부를 먹이는 관례를 무시하고 마음을 다잡아주려고 지참 물품을 모두 버리고 침을 세 번 뱉게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욕부터 시켰다. 아내는 연방 눈물만 지었다. 장사에 지친 몸으로.
1984. 12. 19
영국과 중국이 홍콩 반환 협정에 조인하다.
1985. 3. 15
점포를 확장하려고 옆집을 3500만원에 비싸게 샀다. 자리가 없어 손님을 많이 놓쳤다. 하루가 급해서 즉시 벽에 출입구를 냈다. 그동안 옆 가게와 셋방을 털어 출입구를 냈는데 가게는 권리금을 달라는 대로 주고 셋방은 이사비용까지 대주며 사정했던 것이다. 업소가 마치 벌집처럼 여기저기 출입구가 뚫려 손님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제자리를 찾아오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건 복도가 아니라 미로야.”
손님들의 농담이었다.
1985. 3. 22
고천읍(지금은 의왕시)에서 가장 좋은 집인 300평짜리 별장을 8500만원에 샀다. 어느 대사가 지어 살던 집이라고 했다. 정원이 낙원처럼 꾸며진 집이다. 작은 수영장도 있다.
1985. 11. 6
기쁜 날이다. 애비 승용차를 돌로 깨고 가출한 태호가 책방 내겠다는 걸 허락하니 송 목수에게 그동안 천벌 받을 짓을 했다며 어머니 아버지에게 효도할 거라고 했단다.
1985. 12. 1
별장 수리를 끝냈다. 2층 35평 크기의 너른 거실. 고급 내장재에 못구멍 하나 없는 멋진 공간. 샹데리아 불빛이 은은하다.
집들이하는 날에는 구로 국회의원 김 의원과 많은 구로구 유지들이 꽃과 선물을 들고 20여명이 찾아왔다. 마당에 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걸 보고 이웃들이 누가 이사왔느냐고 묻더란다. 나는 감투가 여남은 개가 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서 사업을 그만 두고 소설을 써야 할 텐데.....
1986. 1. 7
아내 유라와 셋이 2박 3일 일정으로 동해안을 돌았다. 서울출발, 청주, 충주, 문경, 점촌, 안동땜에서 식사하고 영덕, 영해에서 하룻밤을 자고, 영덕 병곡에 있는 능수엄마네 친정에 들러 회를 먹고 사진 찍고, 포항, 구룡포, 감천, 울산, 송정, 해운대, 부산에서 저녁 식사하고, 밤에 눈 덮인 남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마산, 남해에서 회를 먹고, 대교에서 사진 찍고, 순천, 남원 눈 덮인 광한루에서 사진 찍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귀경했다.
1986. 2. 5
고천 별장집에서 제사를 드리고 TV를 보는데 유라가 피아노 앞에 앉아 <로망스>를 친다. 동아문화센타 소설반 전원 30여명이 고천 우리 집에서 온종일 수업했다. 내 꽁트 <손수건>이 동아일보 동우지에 실렸다. 처음 발표작인 셈이다.
아내에게 주기를 물었다. 생활이 넉넉해졌으니 애를 갖고 싶다.
1986. 2. 9
메테르링그의 <틈입자>가 감동적이다.
소설에 전념해야 할지 돈을 더 벌어야 할지, 그게 고민이다. 한창 불꽃이 피어오르는 사업을 접고 소설에만 매달린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에서까지 체인점을 내달라는 판인데, 사업적으로 확대하면 큰 기업체로 성장할 텐데 정말 고민이 크다. 친구들은 나보고 정신 나갔다고 야단이다. 1년에 수십억을 버는데, 이제 막 불이 붙었는데, 소설 쓰겠다고 그만 두다니.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체인점을 내달라고 아우성인데 문을 닫다니! 하지만 나는 결국 소설을 택했다.
KBS라디오에서 내 인터뷰 방송이 나왔다.
요즘 <춘천옥>에 대한 보도가 빈번하다. 이번에는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시보에 실렸다.
奇人으로 살고 싶다......
한승원 작가와 점심을 먹었다. 그는 항상 자식 중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태어나기를 고대했다.
(그 소망 때문인지 38년 후인 2024년에 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86. 4. 8
양구 장인어른이 방아를 찧다가 피대에 걸려 돌아가셨단다. 아내와 비상라이트를 켜고 달렸다. 순애는 다음날 태호와 함께 오라고 했다.
장례식은 잘 치러졌다. 봉분을 만드는 <회다지 노래> 가 구성지다. 나는 돈 많은 사위라고 나무칼 나무총을 차고 칡으로 묶였다. 다른 사위들은 밭, 산, 질퍽한 논으로 끌려다녔다. 상주를 웃기는 묘한 전통이었다.
1986.5. 24
48년 만에 처음으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종업원들이 사온 케잌에 촛불을 켜며 나보고 입으로 불어 촛불을 끄라고 한다. 민망한 생각이 들어 거절했지만 막무가낸다. 정말 촌놈 출세하는 기분이다. 가족과 직원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생일축하 합니다.....”를 부른다. 내가 입으로 촛불 끄는 짓을 해보다니! 딴 세상에 와 사는 기분이다.
1986. 7. 13
미정이 내게 가곡 <망향>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처녀다. 경리로 채용하고 싶었지만 문학인생을 살고 싶어했다. 중학교 생물선생을 지냈는데 나와 친한 방송 아나운서들과 먹걸리집에서 만나 동석한 여자다.
1986. 8. 7
바로 춘천옥 맞은편 코너 집(대지 120평)을 4억 4천만원에 매입했다. 그 속에 든 토끼장 같은 방 45 세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가 걱정이다.
1986. 8. 9
우리 온 가족이 고천 별장에 묵고 있는 미정을 데리고 1박2일 동안 동해안으로 해수욕을 다녀왔다. 해수욕장에서는 미정이 아내와 모래톱을 거닐며 정지용의 <고향>을 신나게 불렀다. 예술적 광기에 젖어 살아온 그녀는 독서에 미쳐 눈이 짓무를 정도다. 다음은 그동안 미정이 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죽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거적에 말려가는 실체.
사랑도 정상적인 사랑보다 비정상적인 사랑을 원한다.
비극을 만드는 허무주의자들이 문학을 좋아한다.
1986. 11. 3
구로 구청장이 자문위원인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회의 때도 나를 꼭 자기 곁에 앉힌다. 경찰서장도 나를 무척 좋아한다. 나를 무조건 경우회에 나오라고 한다.
이호철 작가와 윤 양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윤 양은 운동권학생이다.
1987. 2. 2.
9개국 유럽 여행을 모두 마치고 2월 2일 10시 10분에 파리 찰스 드골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맞혔다. 내 좌석은 05A로 에어프랑스 2층 전망 좋은 창가다. 내 옆에는 프랑스인 모녀가 앉아 있다. 시집간 딸과 일본 아니면 한국을 가려는 모양이다. 내가 그동안 얻은 것은 무엇이며 스스로를 자책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2층 승객 거의가 일본인 관광단이다. 덩치가 큰 일본인 남자가 서투른 영어로 유난히 떠들어댄다. 남자 프랑스 스튜어디스가 처음에는 나를 본숭만숭하고 일본인들에게 친절하여 저소득 국민으로서의 울분을 느꼈는데 일본인 남자의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내게 다정한 시선을 준다.
“세울?”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