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나들이 17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⑲] 소나무가 옆으로 누운 듯 자란다는 ‘와송정사’ 임동일 고택

청양 임동일 고택(가옥)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 산당로 393-42 (화암리 222)에 소재한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31호이며, 19세기 말 송암 임용주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평택 임씨의 집성촌이다. 당시 연못조성 시 소나무를 심었는데, 소나무가 옆으로 누운 듯 자라서 '와송정(臥松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마을의 내력은 조선 명종 때의 인물인 임식 부터 시작되는데 홍주의병 육 의사 중 한 명인 성헌 임한주 선생을 비롯해 8인의 애국지사가 나온 곳으로 유명하며 국무총리를 지낸 이현재씨의 외가이기도 하다. 임동일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로 조성이 되어,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사랑채는 정면 7칸 중 우측 2칸에 고택 앞을 조망할..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⑱] 대한민국 미술계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 생가지

□운보 생가지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13년 2월 18일 이곳 공주군 신상면 (현재 유구읍) 유구리 427번지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보통학교 입학 이전까지의 유년기를 이곳 공주 유구에서 지냈으며, 부친 김승환씨가 이곳에서 태어나 직장생활을 제외하고는 살았다는 곳은 분명하다.) 지금의 주소는 공주시 유구읍 창말 안길 11-13이다. 앞으로는 유구천이 유유히 흐르고 뒷산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창말 안길 마을이다. 칠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 김화백의 생가지를 찾았다. 큰 길에 높이 세워진 ‘운보 화백 생가지’란 푯말을 따라 골목을 들어섰다. 골목길은 잘 정돈되어 깨끗했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조용했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찾은 김화..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⑯]“대한 독립 만세“ 외치던 소녀를 기억합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기도하던 유관순열사의 조국애와 민족애는 3․1운동으로 꽃피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집결한 29인의 민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식은 민족대표들이 이종일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돌려보고, 한용운의 연설에 이어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탑골공원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다가 2시 30분경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시가지로 물밀듯 밀려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⑮]농촌소설의 대표작『상록수』가 탄생한 곳, 심훈(沈勳)과 필경사(筆耕舍)

□심훈(沈勳) 심훈(1901∼1936)은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번지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번지로 지번이 통합된 상태이다. 생가 터엔 현재 흑석동천주교회가 들어서 있다)했으며,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다. 1915년 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으로 투옥되어 퇴학을 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등지를 돌아다니다가 1921년 항저우[杭州] 지강대학(之江大學)에 입학, 192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25년 5월 ‘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⑭] 민족의 혼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지

이상재선생생가지(李商在先生生家址)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 있으며, ​한평생 고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월남이상재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이상재 선생(1850~1927)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호는 월남(月南), 본명은 계호(季皓)이다.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써 청년운동가, 개화파운동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등으로 활동한 이상재 선생은 1850년 10월 26일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16대 손으로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의 한산하고도 작은 마을에서 종9품 선공감 가감역관(繕工監假監役官)을 지낸 아버지 이희택(李羲宅)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전통적 유교교육을 받았다. 종지리 이곳은 ..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⑬] 선비의 집 논산명재고택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는 대문도 담장도 없어 누구나 쉽게 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사랑채까지 접근이 가능한 명재고택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90호로 파평윤씨(坡平尹氏)들의 세거지인 옛 이산현에 있는 이산을 배산 하여 인접한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 인공 방형지를 파고 조그마한 석가산을 조성한 훌륭한 정원이 꾸며져 있다.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멋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운치를 더한다. 연못을 지나 우측에 엄청난 양의 장독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고택을 지키는 병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정면을 향해 앞마당의 섬돌을 오르면, 기단 위의 기품 있는 사랑채가 손님을 반긴다. ◆ 나눔의 미덕이 지켜온 윤증 선생..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⑪] 사육신의 얼과 정신이 깃든 노은리 고택

노은리 고택(魯恩里 古宅)은 충남 홍성군 홍북읍에 위치한 가옥이다. 1996년 2월13일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홍성엄찬고택(洪城嚴璨古宅)'이었으나, 2017년 ‘노은리 고택’으로 변경되었다. 노은리 고택은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외손자 엄찬이 자랐던 고택이다.(엄찬이 성삼문의 외손자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녹운서원(綠雲書院)이 건립되는 1676년 전까지 이곳에서 성삼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녹운서원은 임자년에 세웠고, 숙종 임신년에 사액하였다. 사액은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을 말한다. 약간 높은 대지에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안마당이 트이지 않는 'ㅁ'자형으로..

고택 나들이 2021.09.02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⑩] 청렴결백의 상징 청백리 고불 맹사성 고택

몇 년 만에 맹사성 고택을 방문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고택도 많은 변모를 했다. 넓어진 주차장이며 신창맹씨비림, 맹사성 정승을 상징하는 조형물, 더불어 고불맹사성기념관과 교육관이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택은 역사의 증언처럼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맞이해준다. 역사유물관은 문화해설사의 집이 되었고 유물은 기념관에 가지런히 전시 되었으니 정갈한 기념관에서 고불 맹사성을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 관람객들은 호사를 누린다. 맹사성 고택은 1330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가장 오래된 집이다.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 맹사성은 조선 전기에 문관으로 평소 검소하고 행실이 바르고 청렴결백한 선비로서 임금..

고택 나들이 2021.08.2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⑨] 배움이 가득한 공간, 사계 고택

충남 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에 자리한 사계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사계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향리인 연산(連山)을 세거지로 하여 성장하였으며, 일찍이 스승인 율곡 이이(栗谷 李理)와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에게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였던 당대의 대학자이다. 특히, 조선 최고의 예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그의 예학사상은 조선 중기 이후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몇 차례 벼슬에 나가기도 하였으나 향리에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사후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학문은 아들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을 비롯하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

고택 나들이 2021.08.2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⑧] 추사체의 요람 추사고택

□추사고택과 추사 김정희 추사고택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생가이며,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했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추사고택은 266.11m²(80.5평)으로 솟을 대문의 문간채와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엔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문을 열면 방이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추사는 예산 출신이며 본관은..

고택 나들이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