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에 자리한 사계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사계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향리인 연산(連山)을 세거지로 하여 성장하였으며, 일찍이 스승인 율곡 이이(栗谷 李理)와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에게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였던 당대의 대학자이다. 특히, 조선 최고의 예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그의 예학사상은 조선 중기 이후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몇 차례 벼슬에 나가기도 하였으나 향리에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사후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학문은 아들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을 비롯하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초려 이유태(草廬 李惟泰) 등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사계고택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가 은농재를 포함한 고택 경내 전체를 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유형문화재 지정을 해제하였다. 현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택은 2,850m2의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으며 대문에는 현대 서예가인 여초 김응현이 쓴 "사계고택" 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앞으로 구봉산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사랑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인 은농재(隱農齋)는 처음에는 초가지붕의 형태였으나, 지금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평면에 홀 처마 우진각지붕의 기와집으로 고택의 중심적인 건물이며 단아하고 수수한 자태가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은농재는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 왔을 때 이곳에 머물면서 그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대문 옆으로 길게 붙은 문간방은 현재 사계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계 선생의 일대기와 유물을 비롯해 그의 스승과 제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은농재 양 옆으로 문이 있는데 오른쪽 문으로 들어서면 영당(影堂)이 보인다. 영당은 숭정(崇禎)4년(1631년) 음력 8월3일 사계 김장생 선생이 돌아가시자 출상(出喪)하기 전 이곳에 시신(屍身)을 모셨던 곳이다, 당시 왕(王)은 150일 후에 사대부양반(士大夫兩班)은 90일 후에 출상하는 제도로서 사계 선생은 돌아가신 후 이곳에서 78일간을 모셔 있다가 그해 10월19일 출상하여 진잠 성북산에 안장하였다가 숭정 14년(1641년) 음력 10월9일 연산면 고정리로 이장묘 하였다.
안채와 안사랑채는 주로 다양한 체험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고택에서 옛 문화를 느끼며 우리 고유 옷인 한복을 만들어보는 규방공예체험과 라탄공예, 리마인드웨딩(전통혼례) 등 사전 예약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요대회, 사생대회 등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가 있다. 사계고택의 다양한 문화콘텐츠 활용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사단법인 기호문화유산활용진흥원은 문화유산의 내재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문화콘텐츠 개발과 활용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문정신 및 도덕성을 회복하고, 건전한 사회문화를 조성하고자 한다.
고택 주변에는 사계고택을 시작으로 왕대산을 거쳐 다시 고택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조성된 사계솔바람길이 있다. 사계선생의 정신과 뜻인 어질고 바른 마음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며 산책하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사진/이해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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