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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8회

나는 일경을 달고 위경소 근무와 본부 사역 등을 담당했다. 특경 8기 네 명이 전입했다. 선임은 수경 계급장이 달린 모자와 자기의 군복을 빌려주며 군기를 잡으라고 했다. 위경소부터 연병장까지 오리걸음을 걷게 하며 얼차려를 시켰다. 선임이 시켰는데 하지 않으면, 내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최소한으로 했다.처음에는 계급이 낮은 병이 하사를 얼차려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됐지만, 자신들의 선임도 그렇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머뭇거리다가 지시에 따랐다. ‘아무리 계급사회라 할지라도 여긴 민간적인 요소가 있어, 제대 말년이나 선임에게는 존대하며, 어디 나갈 때나 다녀오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며칠 지나 내 후임이 특경 네 명을 산 중턱에 있는 헬기장으로 데리고 갔다. ..

이상헌 자서전 2025.07.01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7회

“야, 이 이경. 괜찮아부러야. 어디 아픈 데는 없구야. 병원 안 가도 돼야?”“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걱정되었는지 모두 내게 와 물어본다. 졸병은 아파도 아프지 않고 피곤해도 피곤하지 말아야 한다. 씩씩하게 대답하였는데 이틀 동안 근무 서지 말고 쉬라고 했다.식사 당번을 도와준다고 마을 샘에 가서 물 길러 갔는데 물을 길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전라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골이 이처럼 깊은 줄은 처음으로 알았다. 충청도 출신인 나는 지역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마을 주민들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밤마다 구타는 계속되었다.그러던 차에 공문이 한 건 왔다. 여수시 둔덕면에 있는 봉화산 정상에 통신소를 짓는데, 각 초소에서 희망 대원 1명을 선발하라는 것이었다. 공사가 끝..

이상헌 자서전 2025.07.01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6회)

금융실명제 「돈보따리를 들고」 “알려야죠. 곧 대학을 졸업할 자식인데 알려 마땅하죠. 동주는 착실한 애라 돈 훔쳐낼 리도 없을 테니.” 아내의 말에 황대구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튿날 황대구씨 부부는 돈을 옹기그릇에 담아 밀봉해 놓고 마당 구석을 파기 시작했다. 뗏장을 걷어내고 옹기를 묻은 다음 다시 덮을 참이었다. 땅은 황대구씨 혼자 파고 아내는 이웃 사람을 망보았다. 그런데 옹기가 묻힐 만한 깊이로 땅을 팠을 무렵 학교에서 동주가 돌아왔다. 마당을 파낸 부모의 수고를 보자 웃음부터 터져 나온 동주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돈을 은행에 두셔야지 땅에 묻으면 어떡해요.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맘 편히 사셔야죠.” “누가 그걸 몰라 이런 짓 하냐? 이십 프로도 안 남는 장사에다 외상돈 떼..

연재소설 2025.07.01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6회

가끔 마을 아가씨들이 놀러 왔다. 낮에는 멸치 막에서 멸치 고르고, 밤에 전마선을 타고 노 저어 왔다. 놀러 온 다음 날 낮에는 졸면서 큰 멸치와 작은 멸치 그리고 다른 종류를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아가씨들이 올 때 김치라도 가져오면 나는 대환영이다. 한 가지 반찬을 해결하기에 밥쟁이가 불쌍해 올 때마다 김치며 나물을 준비해 왔다. 탐조등 근무는 두 개의 카본 봉을 접촉시켜 해상의 선박을 확인하는 근무인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또 발전기도 없어 근무를 서지 않는 대신에 공용화기초소에서 근무를 섰다. 이런 근무 외에 노래 사역이 있었다. 고참은 노래를 하라는 명을 내린다. 나는 아는 노래가 별로 없어 아주 힘들었다. 내가 조금 아는 노래는 느린 곡조로 그 당시 가장 유행하던 ‘밤배’ 등을 불렀다. 젓..

이상헌 자서전 2025.06.24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7회

“야, 이 이경. 괜찮아부러야. 어디 아픈 데는 없구야. 병원 안 가도 돼야?”“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걱정되었는지 모두 내게 와 물어본다. 졸병은 아파도 아프지 않고 피곤해도 피곤하지 말아야 한다. 씩씩하게 대답하였는데 이틀 동안 근무 서지 말고 쉬라고 했다.식사 당번을 도와준다고 마을 샘에 가서 물 길러 갔는데 물을 길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전라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골이 이처럼 깊은 줄은 처음으로 알았다. 충청도 출신인 나는 지역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마을 주민들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밤마다 구타는 계속되었다.그러던 차에 공문이 한 건 왔다. 여수시 둔덕면에 있는 봉화산 정상에 통신소를 짓는데, 각 초소에서 희망 대원 1명을 선발하라는 것이었다. 공사가 끝..

이상헌 자서전 2025.06.24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5회)

금융실명제 「돈보따리를 들고」1993. 8. 3 중국 여행의 백미인 리강 유람에 나섰다. 전체 강 길이가 447km 중 죽강 부두에서 양삭 부두까지 57km를 배로 유람하는데 석회암 산의 절경이 이어진다. 중국의 10대 관광지인 만리장성, 계림산수, 자금성, 항주서호, 안휘황산, 소주원림, 장강삼협, 서안 병마용, 승덕 피서산장, 대만 일월단 중에서 계림관광이 최고라고 한다. 배가 줄을 이어 강을 따라 흘러간다. 점심도 배에서 먹었다. 감탄의 연속이다.1993. 8. 12 오늘 저녁 8시를 기해 금륭실명제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실시되었다. 정의사회구현의 일환으로 경제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걸 각오하고 혁명적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비판계층에서는 환영을 표시했다...

연재소설 2025.06.24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4회)

내 꾸중을 알아듣는 개구리1993. 7. 10 마조가 그의 제자 백장에게 근로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잡일을 시켰듯 나는 태호에게 마당 풀 뽑는 일, 비로 쓰는 일, 정리정돈 따위를 시켜왔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태호에게 춘천옥 지하실을 맡겼더니 당구장을 꾸민다며 야단이지만 일손이 서툴러 걱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임제를 변화시킨 광승(狂僧) 보화의 말이 가슴을 친다. 보화는 임제에게 진심으로 죽여야 될 것은 깨우쳤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 것이다. 1993. 7. 11 장편 도깨비촌 습격 사건의 도벌단속 부분을 쓰다가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아내는 계속 티브이만 보고 있다. 티브이 전원을 끄고 워드에 찍은 원고의 대화 부분을 읽어주었더니 배..

연재소설 2025.06.17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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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자서전 2025.06.10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3회)

한국문단을 뒤흔든「작가의 말」1993. 5. 17 라스팔마스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1993. 5. 20 나에게는 불치의 병이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빨갛고 노란 꽃이나 단풍을 고운 제 색깔로 느끼지 못하는 병, 하지만 나는 그 병을 고치려고 애써본 적이 없다. 그 병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첫대목부터가 독자를 사로잡았다며 야단이다.1993. 5. 21 아내와 양평 서후리 집에 가서 쉬었다. 채전에 야채는 모두 심어져 있었다. 소외감이 들긴 하지만 시골에 와서 살아야겠다. 오후에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태호가 손님과 싸웠다는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참을 수밖에. 책을 거두어 ..

연재소설 2025.06.10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4회

31기 곡성이 집인 김 수경, 광주가 집인 33기 정 상경, 순천이 집인 35기 김 상경, 47기 정 일경(광주), 48기 서 일경(서천), 51기 한 일경(광주), 그리고 동기인 민 이경(청원)으로 9명이 정원인데 한 명이 결원인 상태였다. 위 기수들은 열외라 하여 공부를 하도록 하고, 근무는 47기 정 일경부터 민 이경이 상황 근무, 공용화기실 근무 등을 했다. 당일 47기 정일경이 집합시켰다. 보고자는 48기 서 일경이었는데 키가 큰 서천 출신이었다. 보고자 열외로 한 다음 ‘졸병이 온다고 해안가에 가 해삼과 멍게를 잡았는데 뱉었다’라며 가슴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고무통에서 소주 대병을 꺼내 온 민 이경이 선임이 보이지 않는 해안으로 나를 데리고 가 같이 술을 마셨다. 맞아도 참고 힘들어도 참..

이상헌 자서전 202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