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이경. 괜찮아부러야. 어디 아픈 데는 없구야. 병원 안 가도 돼야?”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걱정되었는지 모두 내게 와 물어본다. 졸병은 아파도 아프지 않고 피곤해도 피곤하지 말아야 한다. 씩씩하게 대답하였는데 이틀 동안 근무 서지 말고 쉬라고 했다.
식사 당번을 도와준다고 마을 샘에 가서 물 길러 갔는데 물을 길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전라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골이 이처럼 깊은 줄은 처음으로 알았다. 충청도 출신인 나는 지역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마을 주민들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밤마다 구타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공문이 한 건 왔다. 여수시 둔덕면에 있는 봉화산 정상에 통신소를 짓는데, 각 초소에서 희망 대원 1명을 선발하라는 것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15일 포상 휴가를 준다는 것이다. 나를 가장 못살게 굴었던 정 상경이 은전을 베푸는 양 내게 가라고 했다. 4월 17일 군에 와서 한 번도 휴가도 못 갔으니, 이번에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힘든 소굴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었기에 흔쾌히 간다고 대답했다. 곧바로 M16 개인화기와 더블백을 메고 여수와 남해 상주 해수욕장을 오가는 남창호를 타고 본부에 갔다. 건축과를 다니다 온 대원과 튼튼하게 생긴 대원, 셋이 뽑혔다. 공사 총책임자는 해병대 대위로 제대한 중대 부대장인 정 경위가 맡았다. 첫날 항고에 밥과 반찬을 가득 담고 봉화산 초입에 내렸다. 첫날 부대장은 정글을 헤치고 나가면서 칼로 길을 만들고 우린 낫으로 좀 넓게 길을 만들었다. 422m 고지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쯤이었다. 허물어진 봉화대 넓은 공터에 통신소를 만드는 것이다. 준비한 삽으로 평탄 작업을 하고 줄자와 새끼줄로 터를 잡았다.
시멘트로 기초를 하기에 사각형으로 바닥을 팠다. 본부로 들어와서는 위경소 근무나 불침번 근무도 열외였다. 아버지가 남해 초소에 오셨다는 것을 무전을 통해 알았다. 소화제와 영양제를 가지고 남해 작장초소에 오셨다가 본부로 발령이 났다고 하여 다시 여수 본부로 오셨다. 한약을 받고 같이 저녁을 먹고 곧바로 집으로 가셨다. 남들은 전화하여 자주 면회도 오는데 시외 전화하려면 전신전화국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전화하지 않았고 힘드니까 편지도 못 했다. 나는 편하게 있다며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내년이면 환갑이신 아버지는 노인티가 역력했다. 나는 아버지 걱정을, 아버지는 내 걱정하며 헤어졌다.
매일같이 올라갈 때 시멘트 한 포대 혹은 사낭(모래 포대) 두 포대를 가지고 올라갔다. 어떤 때는 철근 두 가닥을 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산 정상에 오르면 점심때가 되었다. 항고에 항고에 가득 담긴 밥과 김치, 오뎅 볶음, 반찬은 두 가지밖에 없어도 꿀맛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본부 등대하여 지시공문을 받아 가며 부식 구입 차 각 초소 대원들이 왔다. 본부 등대한 후 부식 구입 차 시내로 나가는 대원들을 봉화산 기슭에 하차시켜 사낭 두 포대를 멜빵을 하여 정상까지 날랐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매일같이 하는 우릴 보고 대단하다며 고생이 많다고 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각 초소에 있는 선임과 후임을 거의 알게 되었다. 공사하는 동안,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계엄 상태라 여수 시내에도 군인들로 북적댔다. 남색 트럭을 타고 다니는 우린 여러 번 검문당했다. 이때마다 부대장은 눈을 부라리며 그들을 혼냈다.
우린 군이 아닌 경찰이고, 자신은 파월 용사이며 대위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귀찮다는 듯이 얼른 보내줬다. 몇 번 검문이 있은 후, 검문소를 지날 때면 비상등을 두어 번 켜면 자동 통과했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드디어 완공했다. 미리 준비한 소주와 안주로 봉화산 정상에서 자축의 파티를 했다. 사진을 찍지 않아서 그렇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곧바로 통신소 공사 참여한 세명에게 10일 휴가를 줬다. 여수역에서 논산까지 기차로 그다음에는 버스로 공주에 왔다. 동네 친구들과 술 마시고 피곤해서인지 잠을 푹 잤다. 거의 집에만 처박혀 그간의 피로를 풀었다. 열흘은 금세 지나가고 또다시 논산역에서 전라선 기차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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