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자서전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8회

충남시대 2025. 7. 1. 13:34

나는 일경을 달고 위경소 근무와 본부 사역 등을 담당했다. 특경 8기 네 명이 전입했다. 선임은 수경 계급장이 달린 모자와 자기의 군복을 빌려주며 군기를 잡으라고 했다. 위경소부터 연병장까지 오리걸음을 걷게 하며 얼차려를 시켰다. 선임이 시켰는데 하지 않으면, 내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최소한으로 했다.
처음에는 계급이 낮은 병이 하사를 얼차려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됐지만, 자신들의 선임도 그렇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머뭇거리다가 지시에 따랐다. ‘아무리 계급사회라 할지라도 여긴 민간적인 요소가 있어, 제대 말년이나 선임에게는 존대하며, 어디 나갈 때나 다녀오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며칠 지나 내 후임이 특경 네 명을 산 중턱에 있는 헬기장으로 데리고 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고분고분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다. 똑같이 병역의무를 필하기 위해서 왔는데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침 고향 후배가 있어 특경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분대장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데, 분대장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어. 낮 상황 근무 경우 후임병들을 쉬게 하고 대신 근무를 서고 교통호 작업이나 방호벽을 만들 때 더 열심히 일하고, 월급날은 일반 병보다 좀 더 많이 받으니까 닭 두어 마리 사와 회식시키면 다들 좋아할 거여. 그렇게 일반병과 신뢰를 쌓으면 후임 일반병들 분대장에게도 거수경례도 하고 존경할 거야.”
당시 월급은 육군 계급별 월급(3,000원 정도)에 이발비와 목욕비가 나와 일만 원 정도 되었다. 분대장은 육군 하사 급여이기에 보너스 받는 날은 삼만 원 정도 받았다.
얼마 전에 다른 중대에서 분대장을 사살한 몇 건의 총기사고가 있었다. 남 분대장도 그런 사실을 알고 분초에 나가는 것을 걱정했다. 다행인지 나와 함께 돌산의 하동 초소로 가게 되었다. 중대장에게 신고하고 함께 나루터로 가 돌산 우두리 하동 방면으로 가는 여객선을 탔다. 처음 보는 우리에게 마을 아가씨들이 이름표를 부르며 농을 했다. 소대장에게 신고하고 초소로 향했다. 개도에서처럼 또 민 일경이 먼저 와 있었다. 41기가 제일 선임, 다음은 45기, 49기, 다음이 56기 민 일경이고, 그다음이 내 순위였다. 내 밑에는 세 명이 있었지만, 똑같이 졸병이었다. 마을과 아주 가까웠고 또 마을 분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민 일경이 나를 데리고 동네에 가 이장이며 어촌계장 등에게 인사를 시켰다. 동기가 두 명이라 농땡이 친다며 잘하라고 연신 이야기한다. 남 분대장과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이야기한 대로 하자 대원들이 좋아했다. 이듬해 진달래가 활짝 펴서 초소가 환해졌다. 일요일 쉬는 날이어서 민 일경과 장기를 뒀다. 나보다 조금 잘 두는데 바싹바싹 약을 올리며 장기를 뒀다. 언쟁하다가 선임의 심기를 건드렸다. 41기 선임은 합리적이었던 것 같았다. 둘이 등 대고 서서 나는 마을 쪽을, 동기는 바다 쪽을 한 시간 동안 바라보며 반성하라고 했다. 벌 받는 사이 마을 사는 중학교 2학년인 금례 친구들이 왔다.
“아저씨들, 왜 그렇게 서 있어요?”
“그냥 민 일경은 바다가 좋아서, 나는 고향이 그리워 마을을 쳐다보고 있지.” 
시치미를 떼었지만 자세나 경직된 표정을 봐서 벌을 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벌서고 계시죠.” 
깔깔깔 웃는 모습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 회갑이라고 휴가를 내서 올 수 있느냐는 형의 편지에 소대장한테 간청했지만 묵살되었다. 마침 동기가 정기휴가를 갔고 나까지 휴가를 내서 가면 근무에 지장이 있다며 만류하였다. 혼자 아버지를 생각하며 술을 많이 마셨다. 2월 말쯤 부대 시찰 겸 순천 향토 사단장이 우리 초소를 방문했다. 내무반 바닥을 물로 청소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초소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기다렸다. 부대장이 사단장을 모시고 초소에 도착했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