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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대장이 오는 날이여. 자, 내 말 잘 들어 잉. 절대 분대장한테 인사하지 말 것, 둘째 군화 닦아주지 말 것, 식사는 제일 나중에 줄 것, 반드시 반말할 것, 이상, 아 참 야 밥쟁아, 분대장 밥 준비했냐.”
“네 준비했습니다.”
“야, 준비한 밥 개밥 줘라 잉.”
선임이 시키는 대로 나는 개밥을 주면서 분대장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병역의무를 필하기 위해 왔는데, 더 힘든 부사관 훈련까지 마쳤는데 저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맘속에 정리가 되지 않았다. 칼주름을 한 분대장이 취사장에 들어왔다.
“야, 밥 있냐. 밥 줘라.”
“밥 없다.”
존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어눌한 투로 말했다.
“왜 밥이 없어?”
싸늘한 어조로 날 쏘아보며 말했다.
“개밥 줬다. 왜.”
분대장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밤 10시쯤 돼서 큰 소리가 들렸다.
“내 기수 밑으로 팬티만 입고 집합할 것.”
정 상경이 집합시켰다. 매일 집합을 해 맞거나 잔소리를 들어야 그날 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팬티만 입고 정렬했는데 47기 선임이 분대장을 데리고 왔다.
“야야, 이번 우리 초소로 온 분대장이여.”
분대장이 거수경례하며 잘 봐달라는 말이 끝나게 무섭게 선임이 명령했다.
“야, 까.”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내 동기와 다른 선임들은 무자비하게 패 댔다.
“야, 이 이경, 뭐 하는 것이여 새꺄. 까라니께.”
선임한테 볼과 배를 몇 차례 맞았다. 아무리 때리라고 해도 무슨 억하심정이 있거나 억울하고 분풀이를 하기 위해 주먹이 발이 움직이는 것이지 아무런 감정 없이는 폭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폭력에 시달리다가 분대장이 도망을 갔다.
“야 빨리 잡아 오지 않고 뭣해야.”
나와 동기인 민 이경이 달려가 붙잡았다. 민 이경이 말했다.
“야, 때리면 맞아야지, 왜 도망가. 치사하게.”
그렇게 분대장 환영식이 끝나고, 나는 불려 가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한참을 두들겨 맞았다.
이튿날 부소대장이 씩씩거리며 초소로 왔다. 부소대장은 경장 계급으로 두 개 초소를 관리 감독하며 인근 마을에 거주하였다.
밥을 하러 제일 먼저 일어나 취사장으로 가던 날 불러 세웠다.
“야 임마, 전 대원 집합시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취침에 들어간 선임들을 일일이 깨웠다.
마당에 집합한 대원들을 보며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야, 이 이경. 기관총 가져와. 이 새끼들 다 쏴 죽이게.”
나는 머뭇거렸다.
“곡괭이 자루 두 개 가져와,”
얼른 창고에 가 곡괭이와 자루를 분리해 가져왔다.
“야 임마, 넌 열외, 모두 엎드려.”
부소대장이 대원들에게 매질을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타작을 시작했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나와 분대장은 옆에서 고개를 떨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 섯. 일렬횡대로 집합. 특경 분대장이 대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 대대에 내 동기가 있는데 동생이 특경이라 날 보고 잘 보살펴주라고 해 우리 초소로 배치했는데, 너희들이 폭력을 휘둘러. 이 나쁜 새끼야. 앞으로 또 이럴 거야.”
대원들은 모두 ‘아니요’라고 크게 소리치고 부소대장은 ‘두고 보겠어’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갔다. 그 후 서로 서먹서먹한 가운데 전경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 분대장 폭행에 불참한 점을 들어, 나는 밤마다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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