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17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50회)

야비한 인간만 되지 마라1983. 12. 22   그동안 업소를 정리하고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매일 수도권 주변의 해안을 여행했다. 오이도에도 두세 번 다녀왔다. 놀고먹어도 배는 곪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음식장사 경험이 풍부하니 또 식당을 차리면 된다.   태호가 처음 공부란 말을 꺼낸다. 삼성반도체 주차장에서 차를 정리해주고 몇 푼 받는 모양인데 큰 자랑이다. 어떤 식으로 그놈에게 한恨을 가르쳐줄지가 걱정이다.   태호가 2종면허를 땄다고 한다. 집을 나가긴 했어도 월 23만 원씩 돈을 모으고 면허증을 딴 것이 대견스럽다. 나는 태호에게 일렀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어라.” 1984. 1. 4   오랜만에 태호가 낀 온 식구가 제사상을 차렸다. 내가 보관해 둔 상복을 태호에게 입히고 둘이 어머니 산..

연재소설 2024.11.2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9회)

트로이 목마 현장에서1982. 1. 1   도가에는 현빈(玄牝)이 있었으니 그건 谷神이다.   요즘 다시 노장자서(노자와 장자의 저서), 공맹자서(공자와 맹자의 저서), 대학, 중용 등을 읽고 있다.   밤을 새우며 습작하고 읽는다. 태어나서 처음 행복감을 느낀다. 그토록 목매달던 공부가 아닌가! 1982. 3. 4   한국일보 문화센타 소설반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하루, 3개월 동안 40000원. 서울대 전광용 교수가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그의 대표작『꺼삐딴 리』는 일제강점 말기와 50년대의 기회주의적인 풍토와 지도층 인사들의 반민족 행위를 비판한 작품이다.   나는 옛날부터 不朽(불후)란 낱말을 좋아했다. 일기장 첫머리에도 라고 썼던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표현의 욕망을 지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재소설 2024.11.1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8회)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1878. 3. 9   겨우 살만 하니까 떠나다니. 어디서 울고 있느냐. 어서 돌아오라!   수니는 만날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미치겠다. 수니가 손님이 밀리는 업소를 팽개치고 나간 것도 그 오해 때문이다. 의정부 생질녀가 외숙모 펀지를 대신 붙여주었다. 편지 첫마디부터가 내 가슴을 울렸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저는 지금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은 환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속옷은 건넌방에 있으니 찾아 입으세요.....   정말 미치겠다. 왜 이리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기야 그 깊은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내가 잘못이다. 나는 아내에게 보고 싶은 마음을 원고지 열 장 분량이나 썼다. 무엇보다 유라가 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 유라 체취를 온 ..

연재소설 2024.11.12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7회)

가난한 밥집 주인이 주례를 서다1975. 5. 13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여 유신헌법 반대, 부정, 비방행위를 금지시켰다. 1975. 7. 26   서울 봉천1동(당곡)에서 이잣돈을 얻고 전당포에 시계를 잡혀 과일과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용산시장에서 무 배추와 과일을 받아와 팔았는데 일반시장 상인들은 도매가로 떼다 팔지만 나는 몇 포기씩만 떼다 파니 시장보다 비싸거니와 상품 질이 떨어져 팔리지 않았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동정으로 팔아줄 뿐이었다.   야채장사를 접고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품을 팔았다. 하지만 판넬을 나르기에는 힘이 부쳐 위험했다. 등에 판넬을 메고 2층 3층에 오르다 넘어지면 즉사할 판이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해봐요. 원래 약체라 공사판 일은 포기하소.”   오야지(감독자)의..

연재소설 2024.11.05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6회)

육영수 여사 문세광이 쏜 유탄에 맞아 서거1973. 12. 3   이후락(대통령 비서실장) 남북조절위원회 서울 측 공동위장을 사임하다.   지난 11월 8일에는 영동선이 개통되었다. 1974. 1. 8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1호(헌법논의 금지)와 긴급조치2호(비상군법회의 설치)를 선포했다. 1974. 6. 10   공장에서 종업원이 밤에 주차한 승용차에서 휘발유를 빼먹다가 기름통이 연탄아궁이에 흘러 큰 화재가 발생했다. 공장시설은 물론 고급승용차를 포함하여 승용차 5대를 태웠다. 어느 기사는 불타는 차를 꺼내자 소방차가 뒤따라가며 호스를 들이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불타는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대구에 근거도 없으니 가족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면 그만인데 양심대로 저축한 돈으로 모든 피해차..

연재소설 2024.10.2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5회)

유신헌법 발표1972. 7. 4   오늘은 기념할 날이다.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1972. 8. 3   박정희 대통령 헌법 73조에 의거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발표.   광택센터에서 유리재생, 색유리도 시작했다. 손은 항상 칠과 화공약품이 묻은 상태여서 살색이 보일 때가 없다. 그런 바쁜 중에도 밤에는 틈틈이 독서한다. 주로 철학서와 문학 작품이다. 1972. 8. 31   연일 평양발 뉴스다. 평양시내 모습이 방영되었다. 1972. 10. 17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2. 11. 21   개헌 국민투표가 전국에서 실시되었다.   유신헌법이 확정되었다. 찬성률 91.5%. 1972. 12. 23   박 대통령을 8대 ..

연재소설 2024.10.22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4회)

경찰직공무원 사표를 내다  1971. 6. 15   오늘 드디어 서울경찰청 인사계를 찾아가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간청했다. 상사들이 고마웠다. 자꾸 눈물이 흘렀다. 이제 의지할 곳도 없다.   사실 고생을 각오하고 선뜻 사표를 제출한 것은 경찰생활을 그만둬야 소설 창작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소설 창작이 우선이었다. 글쓰기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었다.   중앙청 연금국장실에서 내린 지시로 두 달 걸려 찾을 퇴직금을 2시간 만에 찾았다. 처음 만져보는 목돈이었다. 225,000원.   퇴직금을 들고 가족들과 함께 양구 처가댁에 갔다. 그곳에서 3일간 지내며 여러 가지 살 궁리를 했다. 장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정미소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거기에 얽매일 수는 없었다. 떠나기 전..

연재소설 2024.10.22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3회)

제7대 대통령 선거. 유권자 약 150만 명1971. 4. 27   오늘은 제7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전국의 유권자 수는 약 150만 명. 1971. 4. 28   박정희 후보가 94만 표차로 승리했지만 공정선거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후유증이 클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보 계통의 수고가 득표에 얼마나 유효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자유당시절처럼 표를 만들어 내지 않고는 과연 그런 수고가 득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겠다. 국민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말이다.   예상한 대로 신민당에서는 4.27 선거를 무효라고 주장했다. 나는 동대문 갑구 개표장 경비본부에서 TV를 보며 밤을 새웠다. 경상도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4배 내지 6배로 우세하고 전라도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2배로 우세했다. ..

연재소설 2024.10.08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2회)

신민당중앙당 동향1971. 1. 20   당 의장을 지낸 최 의원의 전화를 받고 집을 방문했다. 나는 하바드대학을 나온 그분을 정치인으로서 보다 학자로서 따랐다. 최 의원은 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2층에서 내려와 막내아들 뻘인 내 외투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내가 사양하자 “우리 나리”라고 농담하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때 거실에 앉아 있던 군복 차림의 두 장성이 자리를 뜨자 최 의원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우리 아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지난 초겨울에 내가 연대 교수인 최 의원 아들과 이화장 이인수 교수를 다방으로 불러 인사를 시켰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1공화국(이승만)과 제3공화국(박정희)의 만남이랄까?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어색한 사이인 이인수 연세대 교수와 최 연세..

연재소설 2024.09.24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1회)

서울대학교 모의재판과 전태일 사건 1970. 11. 18   지난 11월 13일,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외치며 싸우다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한 전태일 군(23)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가슴이 무너진다. 평화시장 재봉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환경에 혹사당하는 동료들을 위해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다가 분신한 그 애통이 눈물겹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침을 뱉고 싶다. 그런데 그 사건을 다루기 위해 하필 내가 선정되다니! 전태일의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모병원이 중부서 관할이지만 얼굴이 생소한 동대문서 직원인 내가 현장을 맡게 되었다.   “중부서 정보과는 모두 얼굴이 팔려서.....”   2계장의 말이었다.   “보통 사건이 아닌데, 제 능력이 모자라서 걱정됩니다.”   나는 전태일 사건에 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연재소설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