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45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9회)

나는 군번은 알아도 학번은 몰라1994. 1. 1 서후리 동녘골에 온 지도 벌써 이태가 지나고 있다. 내 입에서 ‘좋다’ 소리가 계속 나온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새벽 3시까지 집필이다. 살림을 맡아주는 도우미 아줌마가 있어 더욱 집필에 열중할 수 있다. 몸이 나른하다. 운동 삼아 가끔 동녘골에 오르고, 초등학교시절부터 익힌 국민보건체조로 몸을 풀기는 하지만 집필에 너무 열중한 탓이다. 다음은 출판업과 관계된 두 지인이 서후리로 찾아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잔아 선생은 집념이 대단해. 꼭 한 맺힌 사람 같애.” “남들은 20대에 등단했는데 50살에 등단했으니 한이 맺힐 만도 하지.” “그래서 남들보다 3배는 더 창작에 매달리겠다는 거야.” “참, 요즘 쓰고 있는『인간의 시간』을 문이..

연재소설 2025.07.22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8회)

탤런트 영채가 세상을 떠나다1993. 10. 27 아내가 다려준 양복을 입고 영채(안옥희) 영안실에 갔다. 그녀 형제들은 별로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영안실 계단 앞에는 순해와 종관이와 종배가 앉아 있고 손님 접대는 종관이 처가하고 있었다. 조문객도 별로 없었다. 화환만 즐비했다. 순해가 내 손을 잡는 바람에 제단 앞에서 상주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했다. 그때 탈랜트 노주현과 김창숙이 왔다 갔다. 종관이 내게 그동안 왜 오지 않았느냐며 섭섭해한다. 그의 엄마가 내 소식을 묻기도 했다며 종관이 처가 말했다. 그러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3. 10. 28 영채(안옥희)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동세브란스 영안실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영구차로 성남 화장장으로 향했다. 나는..

연재소설 2025.07.15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7회)

‘질량불변의법칙’에 대입한 생사관1993. 9. 4 토요일 점심때 가야성에에서 공군 전투기 조종사인 정지운 대위 부모와 양가 상견례를 가졌다. 나는 아내와 유라를 태워왔고 그쪽에서는 대구 부모와 천안 이모네 부부가 참석했다. 이모부는 교회 장로이고 장로 부인은 아내와 시 공부를 함께한 사이인데 자기 조카를 소개했던 것이다. 대구 가족이 천안에 들러 함께 왔다고 했다. 정 대위 부모는 소박하게 생겼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내가 말을 많이 했다. 내 딸 유라는 미국 유학절차를 끝낸 상태라 친구 사이로만 지내기로 전재했던 것이다. 오후에는 태호 부부와 나래까지 합쳐 여섯 가족이 내 차로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여름부터 별렀으나 내가 중국에 다녀오는 바람에 미루어진 것이다. 한계령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고..

연재소설 2025.07.08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6회)

금융실명제 「돈보따리를 들고」 “알려야죠. 곧 대학을 졸업할 자식인데 알려 마땅하죠. 동주는 착실한 애라 돈 훔쳐낼 리도 없을 테니.” 아내의 말에 황대구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튿날 황대구씨 부부는 돈을 옹기그릇에 담아 밀봉해 놓고 마당 구석을 파기 시작했다. 뗏장을 걷어내고 옹기를 묻은 다음 다시 덮을 참이었다. 땅은 황대구씨 혼자 파고 아내는 이웃 사람을 망보았다. 그런데 옹기가 묻힐 만한 깊이로 땅을 팠을 무렵 학교에서 동주가 돌아왔다. 마당을 파낸 부모의 수고를 보자 웃음부터 터져 나온 동주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돈을 은행에 두셔야지 땅에 묻으면 어떡해요.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맘 편히 사셔야죠.” “누가 그걸 몰라 이런 짓 하냐? 이십 프로도 안 남는 장사에다 외상돈 떼..

연재소설 2025.07.01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5회)

금융실명제 「돈보따리를 들고」1993. 8. 3 중국 여행의 백미인 리강 유람에 나섰다. 전체 강 길이가 447km 중 죽강 부두에서 양삭 부두까지 57km를 배로 유람하는데 석회암 산의 절경이 이어진다. 중국의 10대 관광지인 만리장성, 계림산수, 자금성, 항주서호, 안휘황산, 소주원림, 장강삼협, 서안 병마용, 승덕 피서산장, 대만 일월단 중에서 계림관광이 최고라고 한다. 배가 줄을 이어 강을 따라 흘러간다. 점심도 배에서 먹었다. 감탄의 연속이다.1993. 8. 12 오늘 저녁 8시를 기해 금륭실명제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실시되었다. 정의사회구현의 일환으로 경제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걸 각오하고 혁명적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비판계층에서는 환영을 표시했다...

연재소설 2025.06.24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4회)

내 꾸중을 알아듣는 개구리1993. 7. 10 마조가 그의 제자 백장에게 근로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잡일을 시켰듯 나는 태호에게 마당 풀 뽑는 일, 비로 쓰는 일, 정리정돈 따위를 시켜왔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태호에게 춘천옥 지하실을 맡겼더니 당구장을 꾸민다며 야단이지만 일손이 서툴러 걱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임제를 변화시킨 광승(狂僧) 보화의 말이 가슴을 친다. 보화는 임제에게 진심으로 죽여야 될 것은 깨우쳤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 것이다. 1993. 7. 11 장편 도깨비촌 습격 사건의 도벌단속 부분을 쓰다가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아내는 계속 티브이만 보고 있다. 티브이 전원을 끄고 워드에 찍은 원고의 대화 부분을 읽어주었더니 배..

연재소설 2025.06.17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3회)

한국문단을 뒤흔든「작가의 말」1993. 5. 17 라스팔마스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1993. 5. 20 나에게는 불치의 병이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빨갛고 노란 꽃이나 단풍을 고운 제 색깔로 느끼지 못하는 병, 하지만 나는 그 병을 고치려고 애써본 적이 없다. 그 병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첫대목부터가 독자를 사로잡았다며 야단이다.1993. 5. 21 아내와 양평 서후리 집에 가서 쉬었다. 채전에 야채는 모두 심어져 있었다. 소외감이 들긴 하지만 시골에 와서 살아야겠다. 오후에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태호가 손님과 싸웠다는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참을 수밖에. 책을 거두어 ..

연재소설 2025.06.10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2회)

그랜카나리아 군도를 답사하다1993. 4. 4 지구로부터 1300만 광년 떨어진 M81 은하계에 위치한 초신성 하나가 폭발했는데 그 별은 태양보다 50배 정도 무겁고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아름다운 빛을 내면서 폭발하며 모든 물체를 흡수하는 브랙홀로 변했다고 한다.1993. 4. 23 2박3일 일정으로 이기정 해군 제독이 흑산도에 다녀오자 하여 두 집이 부부 동반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흑산도에서는 해군 전대 안에 있는 아파트(일명 콘도)에서 자고 이튿날에는 홍도와 목포 등지를 돌아보았다. 가는 곳마다 대령 급 장교가 나와 우리를 안내하고 대접했다. 아름다운 홍도를 일주하면서 느낀 환희가 가슴을 쳤다. 흑산도 비포장 도로 일주, 최익현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청촌에서 산을 넘어오는 등산 코스 등, 흑산..

연재소설 2025.06.03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1회)

김영삼 정부에서 공직자 재산 공개1993. 2. 16 밤늦게 군 출신 동창들이 습격하듯 집에 찾아왔다. 군 출신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이기정 해군제독, 손덕규 공군 준장, 김성직 육군 소장, 유치노 대령, 장영명 대령, 이명남 대령, 유원구 대령, 엄수현 대령(국방대학원 교수) 그리고 이성렬 예비역 대령과 조흥은행 지점장 윤용하가 일행이었다. 그들은 내 출판기념 케잌을 사 와 촛불을 켜놓고 아내와 함께 끄도록 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술을 마시는 중에 마침 내일 중국으로 귀국하는 임명옥이 와서 중국 노래와 심청전을 불렀다. 대단한 실력임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상해대학교 성악과를 나왔다.1993. 2. 17 며느리가 애기를 데려왔다. ..

연재소설 2025.05.27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0회)

1993년은 잔아(김용만)의 해1993. 1. 28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갠지스강 보트 관광에 나섰다. 나는 보트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았다. 이미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강변을 뒤덮다시피 했다. 손으로 강물을 휘저어보았다. 여기까지 시신을 씻은 땟물이 배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결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시신도 이 강물에 씻기고 싶었다. 기왕이면 강 상류에서 내 몸 하나만 씻기고 싶다. 아니, 내 시신도 저들처럼 강가 탁류에서 씻겨볼까? 장작개비로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을 둘러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신이 드나드는 골목길을 답사하고 유적지를 관람할 때도 그런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후 7시에 출발하는 야간특급열차를 타고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칼카타로 향했다. 이튿날..

연재소설 202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