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1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2회)

신민당중앙당 동향1971. 1. 20   당 의장을 지낸 최 의원의 전화를 받고 집을 방문했다. 나는 하바드대학을 나온 그분을 정치인으로서 보다 학자로서 따랐다. 최 의원은 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2층에서 내려와 막내아들 뻘인 내 외투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내가 사양하자 “우리 나리”라고 농담하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때 거실에 앉아 있던 군복 차림의 두 장성이 자리를 뜨자 최 의원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우리 아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지난 초겨울에 내가 연대 교수인 최 의원 아들과 이화장 이인수 교수를 다방으로 불러 인사를 시켰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1공화국(이승만)과 제3공화국(박정희)의 만남이랄까?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어색한 사이인 이인수 연세대 교수와 최 연세..

연재소설 2024.09.24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1회)

서울대학교 모의재판과 전태일 사건 1970. 11. 18   지난 11월 13일,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외치며 싸우다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한 전태일 군(23)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가슴이 무너진다. 평화시장 재봉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환경에 혹사당하는 동료들을 위해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다가 분신한 그 애통이 눈물겹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침을 뱉고 싶다. 그런데 그 사건을 다루기 위해 하필 내가 선정되다니! 전태일의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모병원이 중부서 관할이지만 얼굴이 생소한 동대문서 직원인 내가 현장을 맡게 되었다.   “중부서 정보과는 모두 얼굴이 팔려서.....”   2계장의 말이었다.   “보통 사건이 아닌데, 제 능력이 모자라서 걱정됩니다.”   나는 전태일 사건에 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연재소설 2024.09.10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0회)

사찰 부서인 정보2계로 발령1970. 2. 3   임시 거처로 길음동 산동네에 월세방 하나를 얻었다. 블록으로 지은 무허가 건물이지만 수니에게 깨끗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 전축, 옷장, 화장대, 그리고 자질구레한 장식품을 샀다. 목걸이와 반지도 사줬다. 제발 내 장래에 다시는 불행이 없기를 빌면서! 1970. 2. 5   소설 창작을 위한 준비로 프로이드, 야스퍼스, 허이데거, 사르트르, 쇼팬하우어, 키엘케고르, 까뮈,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심지어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독파해야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핵심은 에우다이모니아(이상적인 삶)를 지향한다. 1970. 5. 1   정보2계로 발령이 났다. 1계는 행정, 3계는 외사外事, 2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사찰하는 부서다. 정보..

연재소설 2024.09.03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9회)

하느님이나 들어 줄 수 있는 사업   “이름은?”   “여수니.”   “생년월일?”   “거기에 적혔을 걸요?”   “여기에 적힌 걸 누가 몰라서 그래?”   살짝 겁을 주었다. 담당형사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의견 기재란에 자칫 용공(容共)에 대한 냄새라도 피우는 날이면 공무원 임용은 물 건너가게 마련이다. 친인척의 부역사실도 조사 대상이어서 한 마디만 잘못 쓰면 밥줄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아버지 직업은?”   “정미소를 운영하세요.”   “어머니는?”   “집안에서 살림만 하시죠.”   “가정주부라고 간첩 아니란 법 있어?”   “어머.”   “농담요. 아가씨가 너무 착해 보여서.... 너무 착하면 바보스럽거든.”   “형사님은 농담을 좋아하시나봐요.”   “내가 바보여서 하는 ..

연재소설 2024.09.03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8회)

막걸리 1되 값으로 산 아내  “한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이글호에 함께 타고 있던 올드린도 곧 내려가 처음 본 달의 모습을 “장엄하고 황량한 풍경”이라고 표현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이후 약 2시간 반 동안 달의 표면에 성조기를 세우고 사진을 촬영했다. 지진계와 레이저 반사경 등 여러 과학 장비를 설치하고 22kg의 달 암석과 토양 샘플도 채집했다. 이제 달과 지구와의 대화는 이루어졌다.   아아! 달과 지구와의 대화라니! 생생한 목소리. 710만 개의 부속. 엄청난 우주곡예였다. 해설자의 말로는 태양의 수명은 최고 100억 년이란다. 태양의 핵반응으로 지구에서의 생물 존재 기간은 30억 년에서 40억 년이라고 한다. 그러니 인류는 앞으로 ..

연재소설 2024.08.20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7회)

아폴로11호 달을 정복하다  북평 시가지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무릎재 산정에서 분대별로 전투배치에 들어갔다. 광활한 산악을 분담배치해야 한다. 나는 분대원 9명을 3개조로 나누어 약 5백 미터 거리를 두고 요새에 배치했다. 능선에 참호를 파고 매복근무에 들어갔다.1969. 6. 12  낮에는 반합에 밥을 지어먹고, 산마루에 지는 석양이나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재미가 크지만 밤에는 바스락거리는 가랑잎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오줌을 눌 때도 두 명이 등을 돌려 사주경계하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솔잎을 사타구니에 대고 쌌다.  가끔 돼지고기가 보급되었는데 비계뿐이었다. L-19 정찰기에서는 자수하라는 삐라가 뿌려지고 확성기로도 자수를 권유했다. 1명 생포, 1명 사살, 하지만 1명은 오리무중이다. 과연 게릴..

연재소설 2024.08.13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6회)

주문진임검소 사건과 삼척 무장공비 침투1968년 11월 21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시민증, 도민증이 주민등록증으로 통일된 것이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주문진임검소에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졌다. 밤이 깊었을 때였다. 국군 복장을 한 괴한 4명이 임검소에 들어와 시비를 걸었다.   “경찰관 근무 태도가 이게 뭐야!” 육군 대위 복장의 괴한이 잠시 누워 쉬는 염 순경에게 소리쳤다. 염 순경은 근무수칙을 어긴 적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군인이 감독자처럼 굴었다는 데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그 장교와 따지기 위해 일어났다. 그때였다. 하사관 차림의 괴한이 칼을 목에 댔다. 이내 염 순경의 등에는 별 모양의 칼자국이 찍혔다. 염 순경의 숨이 끊어지자 괴한들은 이번에는 열댓 살 된 임검..

연재소설 2024.08.0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5회)

무장공비의 칼을 맞고 전사한 염 순경1968. 12. 24   공비소탕작전도 거의 끝나간다. 나는 거진항 임검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이브를 무기고 숙직실에서 예비군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보냈다. 새벽 2시까지 내 송별회로 막걸리 파티를 열어준다. 고맙다.   아폴로 8호가 사상 처음 달의 궤도를 돌고 지구 인력권으로 진입했다. 1968. 12. 30   어제 강릉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거진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 와 있는 기분이다. 북한과 가까운 탓이겠지. 임검소는 자그마한데 직원이 5명이나 된다. 급사도 있다. 알고 보니 명태를 나르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곳에도 깨끗하지 못했다.   거진항 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자 관할구역 순시에 들어갔다. 먼저 두 명의 직원이 선박을 ..

연재소설 2024.08.0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4회)

경포관광호텔에서 박정희 대통령 경호경비1968. 9. 21   오늘 아프리카 튀니지에 한국총영사관을 설치했다.   강릉경찰서에 있는 전투경찰대 본부에 나가 봉급과 급식비를 타왔다.   어제는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경찰청(치안국)에서 휴대용 혼다 발전기 취급법을 배워왔다. 전투경찰대는 오지 업무가 많아 자가발전이 필요했다. 천체과학관에서 관람도 하고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장에서 원자력 전시장도 둘러보았다.   외국의 한 경제학자는 오늘의 한국을 마치 산업혁명기를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1968. 9. 27   1954년도 화학부문 노벨수상자인 폴링Pauling 박사의『no more war!』(내일의 원자전)를 읽었다.    “만약 핵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인간의 돌연변이는..

연재소설 2024.07.1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3회)

첫사랑의 빨간 손수건과 편지를 불사르다  .....예술은 구속에서 살고 자유에서 죽는다.            -앙드레 지드   .....자기 자신의 소질에 복종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신념이다.          -에머슨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죽음에 지나친 명예를 주는 것이다.       -그린   .....이 세상에서 고독하게 될 권리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가입니다.    -까뮈     학아, 나(잎Leaf)는 바로 영원(나무Tree)이란 것에 붙어있다고 했다. 잎이 시든다 해도 그 Tree는 또 Leaf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고 똑같은 내(Leaf)가 또 생겨난다고 했다. 그것은 Leaf나 Tree나 결국은 궁극의 입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위..

연재소설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