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0회)

충남시대 2024. 9. 3. 13:19

사찰 부서인 정보2계로 발령



1970. 2. 3

  임시 거처로 길음동 산동네에 월세방 하나를 얻었다. 블록으로 지은 무허가 건물이지만 수니에게 깨끗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 전축, 옷장, 화장대, 그리고 자질구레한 장식품을 샀다. 목걸이와 반지도 사줬다. 제발 내 장래에 다시는 불행이 없기를 빌면서!

1970. 2. 5

  소설 창작을 위한 준비로 프로이드, 야스퍼스, 허이데거, 사르트르, 쇼팬하우어, 키엘케고르, 까뮈,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심지어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독파해야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핵심은 에우다이모니아(이상적인 삶)를 지향한다.

1970. 5. 1

  정보2계로 발령이 났다. 1계는 행정, 3계는 외사外事, 2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사찰하는 부서다. 정보형사는 우선 몸가짐부터 단정해야 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와 학술, 종교, 군사 등 각양각색의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부류의 사람, 지위가 높은 고관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로부터 말단 직책은 물론 다방 아가씨나 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대등한 위상에 놓고 상대해야 원만한 정보활동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남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남의 말을 예의치레로 들어주는 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예민한 귀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양이다. 정객을 만나면 정치에 대해, 경제인을 만나면 경제에 대해, 학자를 만나면 학문에 대해, 예술인이나 종교인을 만나면 예술이나 종교에 대해서 기본 대화가 통해야 업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다. 나는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했다. 며칠 동안은 관내 파악을 하면서 여론을 수집했다. 내 나이 서른한 살. 직업나이로도 철이 들 무렵이었다.
  정보형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첩보 작성이었다. 매일 퇴근 무렵에는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여 첩보로 묶어야 하는데 거의가 내년에 치를 선거업무 일색이었다. 하지만 정치판보다 더 중요한 업무는 대학교 동향이었다. 특히 서울대학교의 움직임은 동대문서 정보업무의 중심과제였다. 나는 중요한 채증업무를 맡게 되었다. 학생풍의 이미지여서 침투에 용이하다는 평이었다. 채증요원은 순간포착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상황이 돌발할지 모른다. 또 기습을 당할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직원들의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그 보호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노출시킬 수 없었다. 그건 대외비였다. 그 사진의 위력은 매우 컸다. 심지어 공천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고통苦痛은 휴머니즘이다. 그것은 사물의 긍정이다. 숨겨진 사실의 부정을 솔직하고 올바르게 긍정하는 행위이다.     -잔아

1970. 5. 4

  민주수호 기독교청년회 주최의 투개표참관 학생들의 보고회가 있어 나는 기독교회관으로 침투했다. 함석헌 옹과「오적시五賊詩」를 쓴 김지하 시인도 참석했다. 학생들은 모두 이번 선거를 부정투성이로 보고 있다.「五賊詩」를 등재한『思想界』도 폐간되었다. 당시 최고의 교양지인『思想界』를 나는 고교시절부터 구독해왔다. 어려운 글이지만 자부심이 느껴졌다.
  함석헌 옹은 ‘오늘의 세계는 전체’란 강연을 통해, 민족은 그 전체사회의 착실한 국민이 되기 위해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성은 부단히 향상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함석헌 옹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나와 비슷했다. 즉 자신이 품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김지하는 앞으로의 학생운동은 사랑과 에로스에 의한 문화운동이어야 한다며 값싼 학생운동을 꾸짖기도 해 싸늘한 분위기를 유발했다. 학생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용기는 유연성에 있고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나자 데모 행진이 이어질 게 뻔했다. 함석헌 옹은 종로 3가까지의 행군을 요구했지만 나는 데모 자체를 허락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내가 평소 존경하는 함옹의 요구여서 종로3가까지만 허락했다. 다만 십자가를 앞세운 조용한 행진을 조건부로 내세웠다. 경찰서의 양해도 받았다. 그런데 아래층 마당 쪽에서 갑자기 요란한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십자가를 앞세운 100여 명의 학생과 교인들이 종로통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속은 셈이었다. 나는 급히 계단을 내려가 선두 쪽으로 달려갔다. 경찰서에서 진압부대가 출동하고, 일반인들의 호응으로 불어난 데모대는 종로3가 쪽으로 향했다. 광화문네거리가 목표였다. 어느새 기동대 버스 4대가 사이렌을 울리는 선두차를 따라 돌진해오고 있었다. 이내 페퍼포그가 작동했다. 순식간에 종로대로는 체루가스로 뒤덮였다. 주모자 40여 명이 연행되었다.

1970. 6. 10

  서울대 문리대 학장인 국어학자 이희승 교수와 혜화다방에서 무려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학과 자연과학, 종교 등 광범위한 대화를 가졌다. 옆에는 미국에서 5년 간 국제법을 전공한 용고동창회장인 이연희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희승 교수에게 세계정부와 우리의 민족주체성과의 모순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육칠십 년 후의 한글전용에 대해 말했다. 나는 올떼가의 소외인간疏外人間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 교수는 불완전은 생명의 의미이며, 완전은 무無라고 말하고 우주질서는 바로 생명체라고 덧붙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국어의 영원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유일한 민족어는 영원히 존속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1970. 6. 30

  국립묘지에 침투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위해 비상이 걸렸는데 골프족들은 근처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게 말썽이 났다.
  유머가 감정을 거부하는 것이라 한다면 위트는 지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위트가 외향적인 것을 동반하고 신속한 판단, 문제의 핵심을 제기하는데 반해 유머는 산 경험을 요약한다. 그러나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1970. 10. 4

  오늘 24시. 내 귀여운 딸이 출생했다. 나는 수니가 진통할 때마다 꼭 껴안아주었다. 옆집 아줌마가 애를 받았지만 울지 않아서 내가 애기를 거꾸로 들고 궁둥이를 때렸더니 앵 하고 울었다. 딸 이름을 ‘김하늘’이라고 지으려다 유라로 고쳤다.

1970. 10. 17

  이화장梨花莊을 방문해서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 이인수 연대 영양학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나를 어머니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My kind friend”라고 소개했다. 영부인은 가늘고 고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나를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한옥 좁은 방안에는 구석에 온도계가 걸려있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오는데 프 여사가 대통령이 사용하던 파이프를 선물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 여사가 한국의 실정을 자세히 이해하고 남편에게 부통령 후보를 잘 천거했던들 4.19가 터지지 않았을 거라고.

  존 듀이(John Dewey)의 다음 말에서 나는 죄의 상대성을 연상하며 탐구의욕이 느껴졌다.
  “진보가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이었는데 우주의 신비 속에 간직되어 있는 물적 요소들을 모조리 소모하고 파괴하고 변질시켜버리는 데에 불과한 과학의 위력만 믿었으니 인류는 점점 더 불안과 부도덕밖에 얻는 것이 없다. 참으로 인간은 이렇게 많은「힘」을 가지고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잃어본 전례가 없다. 그것은 과학의 잘못이 아니라, 우주의 신비 속에 간직되어 있는 영적靈的 요소의 존재를 무시하는 인간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 10. 28

  매일 2장 내지 5장의 첩보를 써내야 하는데 내 정번(정보번호)은 23781이다. 그 번호가 내 이름이었다.
  수신자가 경찰청장이어서 서장은 발신인이 된다.

   수신 경찰청장
   참조 정보과장
   성명 23781
   제목 서울대학교 동향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생회에서는 10월 28일 20시부터 동 대학교 강당에서 교수 및 학생 다수가 관람하는 가운데 소위 학림공화국 최고 재판소장의 주심으로 반사회행위 규제법 위반자에 대한 공판이란 풍자극을 연출했는데, 이 극의 주요 골자는 현 사회에 대한 불평인 바 일반 법정의 양식을 모방한 풍자극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무대 등장 인물
  판사 1명, 검사 1명, 변호사 1명, 서기 1명, 증인 1명(황색일보 주간), 피고인 3명(학림남도 419번지에 거주한다는 농민 1명, 학림특별시 동빙고동 516번지에 거주한다는 차관도입공사 사장 외차관, 그리고 수입개발공사 사장 막수입)
          2. 씨나리오의 중요 요지.
  검사 :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는 고층빌딩과 판자촌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동일성을 파괴하고 사회불평을 조장한다는 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