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21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1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 『샹그릴라』 이야기 Ⅲ “이제 계향이 없이는 살아갈 능력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계향에게 어이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말게. 그냥 친구처럼 이물없는 사이로 지내도록 해. 예의 같은 것 나한테는 필요 없네. 내가 아우 때문에 얼마나 신나게 사는지 아는가? 아우 덕에 나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어. 아우가 아녔어봐. 구석구석에 끼어있는 재산 챙기랴, 귀찮은 살림 챙기랴, 세금 걱정하랴, 자식들 걱정하랴, 끼니거리 준비하랴, 그런 지랄 같은 일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냈을 거라구. 보경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 텐가?” 필봉의 말을 귀담아 듣던 염라대왕은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문했다. 필봉은 상좌에 앉아 있는 염..

연재소설 2022.09.06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0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샹그릴라』이야기 Ⅱ 그런 대화를 꿈꿔온 내 재미를 상상해보라. 초라한 죽음만이 쾌락을 유발시킬 수 있다. 가상세계와 우주시대를 지향하는 21세기에 공동묘지에서 산역꾼 2명만이 시신을 묻는 그 쓸쓸한 낭만을 상상해보라. 그러고 보니 영정사진을 들고 있을 사람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 일이라면 아무래도 아내가 무방할 것 같았다. 평생 함께 살아온 사람이니 그만한 일쯤 맡긴들 어떠랴 싶다. 소설『샹그릴라』에는 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저승에서 필봉이 염라대왕과 나눈 이야긴데, 필봉의 거침없는 말투에 쏠쏠한 재미를 느낀 염라대왕이 그를 곁에 머물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그럼 소설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골라 읽어보기로 하자. .... 필봉은 염라대왕에게 이승에서 바람피운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생전에 제가..

연재소설 2022.08.2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9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샹그릴라』이야기 장사에 너무 지친 탓일까? 형편이 넉넉해지자 집에서 편안히 누워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1년에 수십억씩 버는 전국에 소문난 식당을 팽개치고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춘천옥은 세를 주고 서초동 건물을 팔아 양평 문호리에 집과 농장을 마련했다. 이사를 마치자 우리 부부는 맨 먼저 방바닥에 지도를 펼쳐놓았다.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차례로 훑어볼 참이었다. 승용차를 몰고 동해안의 최북단 포구인 마차진을 시작으로 대진, 거진, 속초, 양양, 주문진, 사천진, 경포대, 정동진, 삼척, 울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포구와 항구마다에서는 날마다 생선회를 즐겼다. 남해안과 서해안에서도 바닷가 구석구석을 뒤졌다. 이제는 생선회가 물릴 지경이었다. “인간은 고생하며 살라는 팔자야.” 수니의 말이었다...

연재소설 2022.08.17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8회 아내 찾아 90000리

4년 만에 벼락부자가 되다 미아리 산동네에서 시작한 수니와의 동거생활은 정말 거지꼴이었다. 공무원직 사표를 내던진 후로 열 가지 직업을 전전할 만큼 내 팔자는 기구했다. 아니, 일부러 기구한 팔자를 만든 셈이었다. 사표를 내던진 것부터가 어이없는 짓이었다. 공무원이란 신분보장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지루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젊었을 때 옷을 벗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모험심이 수니와 나를 거지꼴로 만들었다. 퇴직 후 맨 먼저 시작한 일은 자동차 도색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없어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군대 친구가 경영하는 세차장에서 차를 닦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밀수 범법자여서 헤어지고 공사판 잡부로 일했다. 봉천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리어카 배추장사, 화장품 외판원, 보신제 외판원, 라디오 외판원 등..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7회 아내 찾아 90000리

내 꿈이 문제라구? 전화를 끊었지만 머리가 멍멍했다. 온 식구들이 발로 나를 짓이기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 가장이 아니라 천사들만 사는 낙원에 몰래 틈입한 악마 같았다. 심지어 홀애비 혼자 키운 아들놈마저 엄마 편을 들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라고 일러왔지만, 그랬다고 해서 엄마 편을 드는 건 아닐 성싶었다. 엄마의 인품에 끌리는 게 분명했다. 사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처가식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전 같지 않았는데, 파리에서 귀국하자마자 호프집으로 불러낸 것도 그 심보를 엿보고 싶어서였다. “도착지 호텔에서 대기할 때는 뭘 하고 지내는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시내로 볼 일 보러 나갈 때도 있고, 잠자는 시간이 태반이죠.” 박 서방의 대답..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6회 아내 찾아 90000리

어제 아내가 던진 유리컵은 재질이 무거운 크리스탈이었다. 컵 모서리에 찍히지 않아 마루바닥이 깊게 패이진 않았지만 파편이 백린탄(白燐彈)처럼 퍼져나가 일대에 엄청난 살상을 자행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쏘아댄 백린탄은 공중에서 1차 폭발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면 2차 폭발을 일으켜 근처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국제협약을 무시한 그 폭탄 투하가 우리 집 주방 마루바닥에 자행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내의 그릇 투척은 대책이 시급했다. 아내의 그 새로운 전술이 버릇처럼 굳어질 경우 큰일이었다. 칼로 홍송 문짝이나 자개농을 찍은 것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그릇 투척은 시시한 부부싸움에도 쉽게 화풀이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 싹수부터 잘라야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그 참혹한 ..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5회 아내 찾아 90000리

처음 꺼내본 호칭 어제 치른 전쟁은 두 달 만에 터진 육박전이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칼 대신 유리컵을 던지는 전쟁이어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밤까지 연장전을 치르는 바람에 늦은 아침인데도 아내가 일어나지 않아 걱정이었다. 침실에 들어가 조바심을 내도 이불자락 밖으로 비어져나온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발가락질로 반응을 나타낸 아내의 그 말 없는 투쟁이 마치 애기의 발장난 같아 귀여워 보였다. “여보, 어서 일어나 정원에 번진 햇살을 봐요.” “여보라뇨?” 드디어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아내를 여보라고 부르면 어때서?” “딴 여자한테나 여보라고 불러.” “당신한테 여보라고 부르면 안 돼?” “아이고, 오글거려라.” “왜 오글거리는데?” “됐다! 40년 만에 불러준 호칭이라 여보 소리가 생뚱맞거..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4회 아내 찾아 90000리

“그래서?” “외삼촌이 인민위원회에서 부역했다는 거야. 책임자로 있었다니까 아마 인민위원장을 지낸 것 같애.” “어어?” “자넨 직무를 유기한 셈이라구. 그 따위 신원조회가 어딨어.” “정말이라면 내가 실수했구먼.” “아무리 여자한테 환장했기로서니 그런 실수를 저질러?” “그런데, 부역 사실이 진짜라면 왜 요시찰인명부(要視察人名簿)에 없었을까?” “이제야 눈치 챘군. 여기는 수복지구라 부역이랄 수 없지. 그러니 부역에 신경 쓰지 말고 그걸 핑계 삼아서 자네 소원이나 풀어봐. 수니 씨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좋은 빌미잖아. 직장을 버릴 테냐 홀애비를 택할 테냐.” “백번 천번 직장을 버리겠지. 귀한 정미소 집 셋째 딸이 애 딸린 홀애비를 택하겠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우리 불쌍한 홀애비가 완전히 돌았어..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김용만)의 장편소설] 제 3회 아내 찾아 90000리

“내가 맡지.” 손을 내밀자 추 형사는 맨입으로는 안 된다며 조건을 걸었다. “막걸리 한 되 값이면 되겠어?” “막걸리 한 되면 오백 원인데, 좋아. 가난뱅이 짜봤자 똥뿐이 안 나올 테니. 그 대신 망신당하지 말라구.” 조심해서 처리하라며 추 형사가 서류를 넘겨주었다. 본적, 전주소, 현주소, 생년월일, 학력, 경력 등 인적사항은 물론 가족사항, 재산관계, 성분, 성격, 심지어 형액형까지 적혀 있으니 그 공문서는 중매쟁이나 다름없었다.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군청 내무괍니다.” “여긴 양구서 정보관데, 여수니씨 부탁합니다.” “제가 여수닌데요.” “신원조회가 나와서.....” “네, 네,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하다뇨?” 말을 좀 삐딱하게 받아보았다. 인생 풋내기여서 정보과니 신원조회니 하는 말에..

연재소설 2022.08.09

[ 잔아(김용만)의 장편소설] 제 2회 아내 찾아 90000리

암튼 전쟁 후의 피해는 금전적 손실 말고도 정신적 시간적 피해 또한 만만찮았다. 칼로 물을 베는 싸움이면 원상복귀에 일초도 안 걸리지만, 여기저기에 칼자국이 흉측한 집안을 상상해 보라! 또 상처난 가구를 교체하기 위해 가구점을 뒤지고 다니는 심정을 상상해 보라. 가구를 새로 들이는 데도 부숴버린 가구보다 더 나은 제품을 들여놔야 그나마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다. 전보다 못한 것을 들이면 상심을 달래지 못해 전쟁 후유증은 오래 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더 좋은 가구를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하며 가구점을 뒤져야 하는 그 수고는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 아내에 대한 실망은 거기에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일이 있잖은가. 아내보다 성질이 더 급한 나도 부엌칼을 들고 설치진 않는다. 한번 들으면 어딘가를..

연재소설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