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20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아내 찾아 90000리 (제18회)

송아는 잠들어 있었다. 김석은 침대에서 일어나 찬물을 마셨다.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소파에 앉아 주먹으로 머리통을 두들겼다. “술 깨셨어요? 괴로워 말고 어서 내 곁에 와 누우세요.” 어느새 깨어났는지 송아가 침대에 누운 채 손을 깝죽거렸다. 잠옷 밖으로 내비친 뽀얀 가슴과 허벅지가 김석의 시선을 유혹했다. “무슨 남자가 그래요? 예쁜 여자를 곁에 두고도 곯아떨어지다니.” 결국 송아의 품속에 휘감기고 말았다. 빌어먹을! 편리한 대로 살지 뭐. 구원(救援)이나 성불(成佛) 따위는 훗날로 미루면 돼.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내 타락을 누가 눈여겨볼 수 있겠는가. 아무리 유능하신 하느님도 수천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내 타락을 감시하실 수 있을까? “당신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이유는 몰라요.” 포옹을 풀고 나자..

연재소설 2022.11.01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아내 찾아 90000리(제17회)

“선을 넘었는데, 당신이지 뭐.” “선을 넘다니?” “키스는 선 넘은 것 아녜요?” 어이쿠! 걸려든 모양이구나! 등골이 오싹했다. 아무리 취했다 해도 왜 송아의 키스를 받아줬던가, 후회가 가슴을 쳤다. 김석의 표정을 곁눈질로 훔쳐본 송아가 말했다. “염려 말아요. 나 싸구려 아녜요. 약점 드러내는 것도 탐색전에 필요한 전술이죠.” “맞아요. 약점부터 드러내야 장점이 더 부각되게 마련이죠.” “또 비웃는 것 좀 봐.” “내 말끝마다 비웃는다고 하니 숫제 입을 다물게요.” “입 다물면 쫌팽이라고 놀릴 텐데요?” “그럼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큰일 날 소리 마세요. 나보고 자살하라는 말인데 잘못하면 살인범으로 몰려요.” “내가 집에 돌아가면 자살한다고?” “그 수밖에 없잖아요? 오십 평생에 겨우 쓸 만한 ..

연재소설 2022.11.01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아내 찾아 90000리(제16회)

사랑한다 대신 감동시킨다가 결혼조건 김석은 사랑에 대한 소회를 계속 이어나갔다. “벌벌이가 사랑을 구원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야. 사랑은 신앙차원의 절대가치여서 영구불변이야.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면 이혼하지 말아야지. 연애시절의 사랑은 평생 변질되지 않을 테니까, 안 그래?” “그럼, 사랑으로 맺어진 게 아니면 뭘로 맺어진다는 거죠?” 불쑥 송아가 나섰다. “감동이죠. 그러니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감동시켜줄 사람으로 알고 결혼하는 거죠. 그대를 사랑해요가 아니라 그대를 감동시켜줄게요가 맞는 표현이죠. 이제는 노래의 가사도 바꿔야 해요.” “그라모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아이고 감동이 눈물의 씨앗이다, 그 말이제?” 벌벌이의 말에 서 장군이 맞장구를 쳤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연재소설 2022.11.01

제15회 아내찾아 90000리

동창친목회에서 만난 송아 * 15회부터는 일인칭 주인공 ‘나’를 삼인칭 ‘김석’으로 바꾸겠습니다. “여보, 우리도 계향이 같은 여자를 구해봅시다.” 김석은 아내에게 농담을 던졌다. “구할 것 뭐가 있어. 송아 년이 있는데.” “송아는 욕심이 많아서 안 돼.” “당신이 데리고 살 여잔데 욕심 부리면 더 좋지 뭐. 나는 나대로 실속 차릴 수 있고. 당신과의 전쟁도 휴전이 될 테고. 아니, 휴전이 아니라 아예 종전이 될 테고.” “농담 그만 하고, 왜 자꾸 송아를 지우지 못하는 거요?. 잠꼬대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정말 미치겠어. 제발 깨끗이 잊어버려.” “그년 생각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걸 어쩌라구.” 김석은 수니의 몸을 꼭 껴안아주었다. 수니가 밀쳐내도 억지로 포옹을 풀지 않았다. 아내가 가여..

연재소설 2022.10.07

아내 찾아 90000리(제 14회)

소설 『샹그릴라』 - 동네거지 을돈의 덕담 윤리분과회장은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계향이와 네 아내도 현실을 직시하고 자식에 대한 분노를 삭이도록 하라. 물론 네 자식들에 대한 계향의 닦달은 엄포겠지만.” “엄포라고요?” “계향이는 너보다 속이 훨씬 깊고 넓은 여자니라.” “사실은 그래서 계향에게 모든 재산을 맡겼던 것입니다.” “자식들한테도 미리 나눠주지 그랬나. 직업이 없는 자식도 있던데?” 회장은 은근히 필봉의 속을 떠보았다. “안됩니다. 제 자식들에게 주느니 차라리 길바닥에 버렸을 겁니다. 그놈들은 천륜조차 무시할 수밖에 없는 놈들입니다.” “어허, 분노를 삭이라 해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구나.” 그때였다. 염라대왕의 엄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긴장시켰다. 분과회장들과 심사원장..

연재소설 2022.09.29

아내 찾아 90000리(제 13회)

소설 『샹그릴라』 - 저승혁신위원회 필봉은 울먹이며 계속 아내의 입장을 두둔했다. “저는 아내가 가여웠습니다. 아내보다 먼저 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죽었기에 아내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왕님! 청컨대 제 아내 보경이 저승에 오면 함께 살도록 선처해주십시오.” 내 간절한 청에 염라대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얼굴에 넉넉한 미소를 매달았다. “자네의 그 개차반 같은 자식들 행실에 재미가 끌리는군.” “네? 재미가 끌리시다뇨? 방금 제 자식들을 괘씸한 놈들이라고 꾸지셨잖아요?” “괘씸한 것과 재미는 다르니라.” 필봉은 염라대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기분이 멍했다. 염라대왕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고 나서 내일 저승 혁신위원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필봉으로서는 생경한 말이었다...

연재소설 2022.09.20

아내 찾아 90000리(제 12회)

소설『샹그릴라』이야기 Ⅳ “이유만 달지 마세요. 몰래 빼돌린 재산인데 나눠줘야 공평하죠.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면....” “어쭈, 이것들 요령은 알고 있네. 하지만 잘 못 짚었어. 내가 빼돌린 게 아니고 늬네 부모가 재산권을 인정해줬거든. 내 덕에 늬네 부모는 노년을 행복하게 지낸 거구. 그런데 뭐가 어째? 빼먹어? 이것들이 어따 대고 흉측한 말을 해!” 자식들은 즉각 자리를 떴다. 서로 눈짓을 주며 무슨 궁리를 짜는 모양이었다. 계향은 이틀을 잘 견뎌냈다. 혼자 먹고 자며 빈소를 지킨 그 정성이 눈물겨웠다.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내가 빈소를 지킬 테니 어서 들어가 푹 쉬게.” 빈소를 찾아온 보경이 계향을 집에서 쉬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계향은 보경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제가 삼일을 마저 채울 테..

연재소설 2022.09.20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1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 『샹그릴라』 이야기 Ⅲ “이제 계향이 없이는 살아갈 능력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계향에게 어이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말게. 그냥 친구처럼 이물없는 사이로 지내도록 해. 예의 같은 것 나한테는 필요 없네. 내가 아우 때문에 얼마나 신나게 사는지 아는가? 아우 덕에 나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어. 아우가 아녔어봐. 구석구석에 끼어있는 재산 챙기랴, 귀찮은 살림 챙기랴, 세금 걱정하랴, 자식들 걱정하랴, 끼니거리 준비하랴, 그런 지랄 같은 일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냈을 거라구. 보경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 텐가?” 필봉의 말을 귀담아 듣던 염라대왕은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문했다. 필봉은 상좌에 앉아 있는 염..

연재소설 2022.09.20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2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샹그릴라』이야기 Ⅳ “이유만 달지 마세요. 몰래 빼돌린 재산인데 나눠줘야 공평하죠.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면....” “어쭈, 이것들 요령은 알고 있네. 하지만 잘 못 짚었어. 내가 빼돌린 게 아니고 늬네 부모가 재산권을 인정해줬거든. 내 덕에 늬네 부모는 노년을 행복하게 지낸 거구. 그런데 뭐가 어째? 빼먹어? 이것들이 어따 대고 흉측한 말을 해!” 자식들은 즉각 자리를 떴다. 서로 눈짓을 주며 무슨 궁리를 짜는 모양이었다. 계향은 이틀을 잘 견뎌냈다. 혼자 먹고 자며 빈소를 지킨 그 정성이 눈물겨웠다.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내가 빈소를 지킬 테니 어서 들어가 푹 쉬게.” 빈소를 찾아온 보경이 계향을 집에서 쉬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계향은 보경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제가 삼일을 마저 채울 테..

연재소설 2022.09.06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1회 아내 찾아 90000리

소설 『샹그릴라』 이야기 Ⅲ “이제 계향이 없이는 살아갈 능력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계향에게 어이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말게. 그냥 친구처럼 이물없는 사이로 지내도록 해. 예의 같은 것 나한테는 필요 없네. 내가 아우 때문에 얼마나 신나게 사는지 아는가? 아우 덕에 나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어. 아우가 아녔어봐. 구석구석에 끼어있는 재산 챙기랴, 귀찮은 살림 챙기랴, 세금 걱정하랴, 자식들 걱정하랴, 끼니거리 준비하랴, 그런 지랄 같은 일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냈을 거라구. 보경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 텐가?” 필봉의 말을 귀담아 듣던 염라대왕은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문했다. 필봉은 상좌에 앉아 있는 염..

연재소설 202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