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샹그릴라』이야기 Ⅳ
“이유만 달지 마세요. 몰래 빼돌린 재산인데 나눠줘야 공평하죠.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면....”
“어쭈, 이것들 요령은 알고 있네. 하지만 잘 못 짚었어. 내가 빼돌린 게 아니고 늬네 부모가 재산권을 인정해줬거든. 내 덕에 늬네 부모는 노년을 행복하게 지낸 거구. 그런데 뭐가 어째? 빼먹어? 이것들이 어따 대고 흉측한 말을 해!”
자식들은 즉각 자리를 떴다. 서로 눈짓을 주며 무슨 궁리를 짜는 모양이었다. 계향은 이틀을 잘 견뎌냈다. 혼자 먹고 자며 빈소를 지킨 그 정성이 눈물겨웠다.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내가 빈소를 지킬 테니 어서 들어가 푹 쉬게.”
빈소를 찾아온 보경이 계향을 집에서 쉬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계향은 보경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제가 삼일을 마저 채울 테니 집에서 몸조리하세요.”
“아닐세. 하루만라도 빈소를 지켜야 내 맘이 편하겠네.”
억지로 계향을 집으로 보낸 보경은 혼자 빈소를 지켰다. 내일이면 남편 유언대로 혼자 장의사 인부들만 데리고 시신을 산에 묻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자식들이 또 떼거지로 빈소에 몰려와 계향의 심보를 일러바쳤다.
“계향이란 여자는 요물이라구요. 그 여자 혼자 재산을 챙기면 큰일 나요. 정신 바짝 차리세요 엄마.”
큰아들이 엄마를 설득했다. 하지만 보경은 오히려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 경고가 에미를 위한 고자질이냐 너희들을 위한 고자질이냐?”
“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무슨 말씀? 너희들 양심을 달아볼 테니 당장 저울을 가져와라. 오시리스 신도 간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서 죄를 측정했니라.”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양심을 저울로 달아보겠다는 거죠?”
“나는 핏줄이나 호적 따위를 무시해온 사람이다. 천륜 따위로도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 오직 효심의 무게를 따져 관계를 맺자는 게 내 주장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야. 호적이나 사실혼으로 따지지 말고 애정의 무게로 측정하는 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엄마, 우리는 엄마 속에서 나온 엄마 자식들이에요. 엄마가 그런 말씀하시는 것도 그 여자의 꾐에 빠진 탓이라구요. 그리고 우리들을 상주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유언도, 그 유언을 지키려는 엄마의 불찰도 모두 그 여자의 꾐에 놀아난 결과라구요.”
“오빠 말이 맞아.”
이번에는 딸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아무리 마뜩잖다 해도 자식인데 아버지가 너무 냉정하셨어요. 우리들이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정을 못 느끼는 아버진데 왜 뜯어낼 궁리는 했지? 빨때족인 너희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주려고 일부러 냉정하셨는데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뭐가 어째? 요 쫌팽이들아!”
그러자 자식들은 아빠의 두 집 살림을 물고늘어졌다. 막내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가 그 여자한테 빠져 사셨는데도 엄마는 분통이 안 터지세요?”
그 말에 보경은 또 발칵 화를 냈다.
“요놈들아! 당뇨에 시달리는 에미의 건강을 지키려는 배려인데 뭐가 어째? 계향이가 없어봐라, 내가 신상 편히 살 수 있겠는가. 계향이 땜에 요양원 신세 면한 거야. 네놈들 같으면 벌써 요양원에 집어넣었을 거라구. 텔레비서 봤지? 늙은 환자를 줘패는 것. 네놈들 내가 당뇨에 시달리는 데도 아무 관심 없었지? 내가 쓰러져도 고스란히 재산만 물려주면 그만이지? 그렇지? 그게 네놈들 심보지? 당장 꺼져! 이 불효막심한 놈들!”
그러자 이번에는 논리에 밝은 둘째아들이 나섰다.
“저희들을 빨대족이라고 하셨는데 나름대로 살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효도가 뭔지도 알고요. 엄마 아빠 눈에 차지 않을 뿐이지.”
“뭐가 어째? 효도를 알고 있어? 그런 놈들이 그따위 짓을 해?”
“그따위 짓이라뇨?”
“아무리 아버지 유언이라 해도, 그래서 내가 유언대로 너희들을 상주로 인정치 않았다 해도, 아버지 주검을 놔둔 채 처자식을 데리고 떠나? 짐승만도 못한 놈들! 나는 사람새끼를 낳은 게 아니고 짐승새끼를 낳았어. 네놈들, 다신 나를 엄마라 부르지 마라! 나도 죽을 임시에 아버지처럼 외롭게 묻힐란다. 그 일도 계향에게 맡길 테니 네놈들은 얼씬도 하지 마! 그리고 계향이를 깍듯이 어머니로 모시지 않으면 네놈들을 호적에서 파버릴 테니 그리 알아!”
보경은 가차없이 자식들을 몰아냈다. 관 속에 누워있던 필봉은 아내의 결단을 보며 통곡했다. 행복한 통곡이었다. 아내가 고맙고 존경스러웠다. 그렇다. 효심 없는 자식이 무슨 소용인가. 효심은 부모에 대한 효도 말고도 사회를 인식하는 원리가 된다. 효자의 눈에는 사회가 밝게 보이지만 불효자의 눈에는 사회가 어둡게만 보인다.
필봉의 이야기를 귀담고 있던 염라대왕은 자식들이 엄마한테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미가 쫓아냈다고 애비의 시신을 놔둔 채 떠나다니 괘씸한 놈들이군. 하지만 기왕 찾아왔으면 상주 노릇을 시켰어야지, 안 그런가?”
“아내는 제 유언을 지키려고 일부러 그랬을 겁니다. 아내는 자식들을 엄하게 닦달했습니다. 네놈들을 상종하지 않겠다는 게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러니 마지막 길을 편히 가시게 어서 꺼져!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아내는 자식들의 행동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더군요. 엄마에게 반성의 기미를 보여주긴커녕 훌쩍 떠나버리는 그 불효가 슬펐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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