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11회 아내 찾아 90000리

충남시대 2022. 9. 20. 10:54

소설 『샹그릴라』 이야기 Ⅲ

 “이제 계향이 없이는 살아갈 능력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계향에게 어이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말게. 그냥 친구처럼 이물없는 사이로 지내도록 해. 예의 같은 것 나한테는 필요 없네. 내가 아우 때문에 얼마나 신나게 사는지 아는가? 아우 덕에 나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어. 아우가 아녔어봐. 구석구석에 끼어있는 재산 챙기랴, 귀찮은 살림 챙기랴, 세금 걱정하랴, 자식들 걱정하랴, 끼니거리 준비하랴, 그런 지랄 같은 일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냈을 거라구. 보경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 텐가?”
  필봉의 말을 귀담아 듣던 염라대왕은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문했다. 필봉은 상좌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을 바라보며 의견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계향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보태야겠습니다. 제 빈소에 얽힌 이야기가 기똥차거든요.”
  “빈소라니? 장의사에 부탁해서 즉시 땅에 묻혔다면서 빈소가 뭔 소린가?”
  “대왕님, 제가 드린 말씀에서 누락된 게 있습니다. 사실은 계향이가 아내에게 사정해서 관례대로 3일장을 치렀던 것입니다. 아무한테도 부고하지 않았지만 바로 매장하면 한이 맺힌다며 울먹였던 거죠. 아내는 계향의 도리가 가상한 데다 사회의 관습도 무시할 수 없어 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계향에게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관 속에 누워 있는 제 마음에 큰 상쳐를 입혔지요. 자네가 그 지랄 같은 인간을 좋아했으니 알아서 처리하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었죠. 지랄 같은 인간이라뇨. 아무리 지겨운 남편이라 해도 마지막 떠나보내는 마당에 그런 험한 말을 하다뇨. 늘 교양티를 뽐내던 아내가 그런 독한 말을 하다뇨. 저는 아내가 너무 괘씸했습니다. 역시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죠. 계향이를 묵인한 것도 저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이고, 제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진심이었습니다. 몸이 떨렸습니다. 그런 여잔데 계향이가 나타나 귀찮은 일을 도맡아주니 속으로 얼마나 희희낙락했겠어요. 제가 초라한 장례식을 고집했어도 당연히 성대하게 치렀어야 아내의 도리일 텐데, 유언을 핑계 삼아 제 몸을 쓰레기 버리듯 산에 묻어버리기로 작정했으니 울화통이 치밀었죠.”

  “그건 그렇고, 계향이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계향이는 당장 장례식장을 찾아가 제 시신을 안치시키고 빈소를 차렸습니다. 물론 조문객은 한 명도 없었지만 구색을 갖췄던 거죠.”
  “계향이 혼자 빈소를 지키는데 자식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다며?”
  “네. 4남매가 몰려 와서 계향에게 상속문제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어떻게 자네 죽음을 알고 때맞춰 찾아왔을까?”
  “제 임종을 지켜보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의심을 품고 호시탐탐 노렸던 모양입니다. 자식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애비의 죽음이었죠. 제가 어서 죽어야 재산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왕님?”
  “말해보게.”
  “제 자식들이 빈소에 몰려온 걸 어떻게 아셨죠?”
  “자네 혼백을 챙기러 내려간 저승사자한테서 들었네.”  
  필봉은 염라대왕의 흥미를 돋우려고 그 당시의 장면을 더 재밌게 엮어나갔다. 자식들이 계향이와 티격태격하던 장면은 염라대왕의 뱃살을 흔들고도 남을 웃음거리였다. 
  빈소를 차린 이튿날이었다. 느닷없이 빈소를 찾아온 자식들이 엉엉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꼴을 보고 계향이가 소리쳤다. 너희들이 뭔데 눈물을 흘리며 꺽꺽대는 거야? 그러자 네 명의 자식들을 대표해서 첫째아들이 나섰다. 
  “우리 아버지니까요.” 
  “아버지가 뭐지?”
  “우리를 놀리는 거에요? 우리가 유치원생에요?”
  “내 질문이 유치하다는 말이구나. 그럼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질 테니 수준 높은 대답을 해봐. 나는 누구지?”  
  “.....”
  “왜 대답을 않는 거야? 나는 누구냐구?”
  “....”
  “입을 다물겠다는 거냐? 좋아! 그럼 어서 꺼져!”
  계향의 벼락같은 고함이 빈소를 뒤흔들었다. 셋째인 딸이 대답했다. 
  “엄.... 마....”
  “그런데, 왜 그동안 나를 엄마라고 안 불렀지? 내가 첩이라서?”
  “그게 아니고, 업적이 없으니까요.”
  “업적?”  “어머니는 저희들을 낳아서 키우느라 애쓰셨고, 재산을 모으느라 고초를 겪으셨고....”
  “그럼 네 엄마만 업적이 있고 내 업적은 없다는 거냐?”
  “아버지를 만나서 호강만 하셨잖아요.”
  “호강? 십칠 년 동안 늙은이 때 밀어주고 주물러준 게 호강이냐? 늬네 아버지하고 진짜 재미 본 건 5년도 안 돼. 그래도 늬네 엄마는 꽃다운 시절에 재미를 봤잖아? 나는 늬네 아버지가 드러누운 후로 여태까지 독수공방 신세였어. 그 기막힌 설음을 누가 알겠니. 내 젊음은 뭘로 보상 받지?”
  “재산으로요.”
  “역시 여자라 이해가 빠르구나. 그래서 서초동 빌딩하고, 강남 모텔하고, 대치동 아파트하고, 용인 과수원은 내가 갖기로 했다.” 
  “그럼 저희들은 뭘 갖죠?”
  “아무것도 없는 거지. 늬네들은 착한 핏줄을 타고 났잖니? 그게 효도 아니겠어? 늬네 아버지도 저승에서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다.”
  “너무하시잖아요?
  “이것들이 엇다대고 까불어! 썩 꺼지지 못해? 만날 부모 등골이나 빼먹은 빨때족들이 뭐가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