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샹그릴라』 - 저승혁신위원회
필봉은 울먹이며 계속 아내의 입장을 두둔했다.
“저는 아내가 가여웠습니다. 아내보다 먼저 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죽었기에 아내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왕님! 청컨대 제 아내 보경이 저승에 오면 함께 살도록 선처해주십시오.”
내 간절한 청에 염라대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얼굴에 넉넉한 미소를 매달았다.
“자네의 그 개차반 같은 자식들 행실에 재미가 끌리는군.”
“네? 재미가 끌리시다뇨? 방금 제 자식들을 괘씸한 놈들이라고 꾸지셨잖아요?”
“괘씸한 것과 재미는 다르니라.”
필봉은 염라대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기분이 멍했다. 염라대왕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고 나서 내일 저승 혁신위원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필봉으로서는 생경한 말이었다. 저승에도 이승에서와 같이 혁신위원회가 존재한단 말인가.
“혁신위원회는 상설기구가 아니라 자네의 그 묘한 가정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급조한 한시적 기구일세. 자네네 가정 문제는 이승에서도 흔한 일이 아닐 만큼 독특하네. 그리고 저승에서도 효도의 개념을 시대변화에 맞도록 정립하는 데에 참고할 만한 사례일세. 요컨대 이승에서 저지른 불효를 심의하는 데에 참고가 된다는 말이지.”
“그러시면, 저는 어떤 징계를 받게 되나요?”
“자네를 징계한다는 게 아니라, 자네네 가정 문제가 효도의 기준을 새로 정립하는 데에 저울추 역할을 한다는 말이네.”
“그럼 그 위원회에 저도 참석해야 되나요?”
“물론이지. 자네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질 걸세. 하지만 정직하게 대답하면 아무 탈이 없네. 내 권한이 아무리 절대적이라 해도 위원회 결정을 무시할 순 없네.”
이튿날 일찍 저승종합청사에서 혁신위원회가 열렸다.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윤리분과회장과 징계분과회장이 자리하고 오른쪽으로는 지옥분과회장과 천당분과회장이, 그리고 염라대왕 맞은편 좌석에는 이승죄업심사원 원장이 앉았다. 원장 뒤편에는 필봉을 비롯하여 저승사자들이 이미 줄지어 앉아있었다. 먼저 회의실 상단에 서 있던 사무총장이 개회선언을 하자 염라대왕의 모두발언이 이어졌다.
“바야흐로 수천 년의 세월이 여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승에서 말하는 속칭 21세기를 맞이하고 보니 과학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터넷이라고 하는 괴물이 이승세계를 뒤덮었다. 때문에 이승은 언어가 뒤틀리고 편의주의가 만연하여 도덕률이 무너지고 있다. 그러니 효심을 어떤 저울로 달아봐야할지 고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토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저기에 앉아 있는 필봉과의 진솔한 대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공식적인 회의장에서는 필봉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 바란다. 저승세계는 이승세계보다 위상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염라대왕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곧장 질문이 이어졌다. 먼저 지옥분과회장이 나섰다.
“필봉은 듣거라. 너는 어찌하여 지옥행을 면했는고?”
필봉이 대답을 못하고 눈치만 살피자 지옥분과회장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짓고 나서 나중에 대왕님께서 말씀하실 거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질문을 마쳤다. 다음으로는 윤리분과회장이 나섰다.
“필봉은 듣거라. 너는 어찌하여 자식들의 상주 노릇을 억지로 막았는고?”
“예,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제 자식놈들은 철든 후로도 분노만 유발시켜왔습니다. 그놈들은 아름다운 삶이 뭔지를 모릅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은 고통을 체질화시킨 삶인데 제 자식놈들은 고통을 피해왔습니다. 그놈들은 막연히 행복을 추구만 했지 행복이 뭔지조차 모릅니다.”
“자식들에게 너무 큰 걸 노린 게 아닐까? 오늘날 그 정도로 의식수준이 높은 자식이 전체인구의 몇 프로나 되겠는가?”
“제 자식놈들은 부모의 고혈만 빠는 빨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애비가 아끼는 물건을 때려부수고, 부모가 땀 흘리며 일할 때도 놀러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에미애비가 병마에 시달리면 집 밖에 던져버릴 놈들입니다.”
“괘씸한 놈들이군. 하지만 부모로서의 책임도 있는 법이니 그런 불효를 곱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네 아내가 계향이를 곱게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회장님, 제 자식들은 게으르고 속물적인 인간들이니 계향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계향이는 극복의지가 강하고 덕스러운 여자였습니다.”
“내 말은 빨대족을 불효자로만 보지 말라는 뜻이다. 귀여운 장난감이랄까?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은가. 그나마 자식이 없으면 심심해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아닙니다. 그런놈들은 심심풀이 감도 될 수 없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분노만 유발시킬 뿐입니다."
“그처럼 철딱서니가 없는 자식이어서 귀여운 장난감이라고 말한 거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은 옛날 같은 효자 찾기가 하늘서 별 따기다. 저승에서도 편의주의에 물든 이승의 빨대족 세대를 어떤 저울로 심판할지 고민이 크다. 그러니 부모인 네가 변할 수밖에 없잖은가. ”
“회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고생한 자식의 효심은 깊지만 노동을 모르는 자식은 효심 자체를 모릅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만, 그나마 네 자식들은 효심이 엿보였다. 에미의 호통에 반발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 것만 해도 효자 측에 낄 수 있다. 계향에게 달려들지 않고 곱게 물러난 것만 해도 착한 덕기(德器)니라. 네게는 부족한 자식들이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불효자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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