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친목회에서 만난 송아
* 15회부터는 일인칭 주인공 ‘나’를 삼인칭 ‘김석’으로 바꾸겠습니다.
“여보, 우리도 계향이 같은 여자를 구해봅시다.”
김석은 아내에게 농담을 던졌다.
“구할 것 뭐가 있어. 송아 년이 있는데.”
“송아는 욕심이 많아서 안 돼.”
“당신이 데리고 살 여잔데 욕심 부리면 더 좋지 뭐. 나는 나대로 실속 차릴 수 있고. 당신과의 전쟁도 휴전이 될 테고. 아니, 휴전이 아니라 아예 종전이 될 테고.”
“농담 그만 하고, 왜 자꾸 송아를 지우지 못하는 거요?. 잠꼬대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정말 미치겠어. 제발 깨끗이 잊어버려.”
“그년 생각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걸 어쩌라구.”
김석은 수니의 몸을 꼭 껴안아주었다. 수니가 밀쳐내도 억지로 포옹을 풀지 않았다. 아내가 가여웠다.
7년 전이었다. 고등학교 동기생 일곱 명이 연례모임에 참석했다. 읍장을 지낸 오정수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동기생 중에서 일곱 명을 골라 친목회를 꾸몄던 것이다. 네 번째 모임인 그날 홍일점으로 참석한 문희숙이 오십대 중년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그 여자가 송아였다.
“우리 모임에 끼고 싶대서 너희들 동의 없이 동참하게 되었어. 오늘 한번뿐이니 양해해주기 바란다. 이 친구는 대학 후밴데 독신주의자야.”
그 말에 남자들이 신나는 환영사를 외쳤다.
“계속 동참하셔도 좋아요.”
“아예 학적부에 올리자구.”
“학적부가 뭐가 필요해. 오늘 참석으로 이미 동창이 됐는데.”
“존경하는 문희숙 선생님, 다음부터는 필히 여친을 지참하도록!”
그때였다. 송아가 넉살을 부렸다.
“지참? 제가 물건인가요?”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옳소. 지참이라고 외친 자는 석고대죄하라!”
그러자 이번에는 물건이란 낱말 해석이 분분했다.
“똘똘한 인물을 물건이라고 하는데?”
“맞아. 아주 똘똘한 사람을 칭할 때 아무개 물건이야, 그러거든.”
“정말 그렇네요. 제 말을 취소할게요.”
송아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취소라고 말씀하시면 저희들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읍장이 능청을 떨자 송아가 짓궂은 말로 흥을 돋우었다.
“여러분, 제가 앉을 자리는 어디죠? 우선 그 문제부터 심사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한 심사숙고란 가장 합리적인 자리를 의미합니다.”
“오늘 임자 만났군.”
남자 석에서 나온 말이었다.
“합리적인 자리라카모 여성 상위시대를 외친 내 옆이 딱이제”
벌벌이가 먼저 나섰다. 벌벌이는 여자 앞에서 벌벌 기는 이재구의 애칭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이재구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주먹질로 말썽을 피웠지만 결혼 후에는 동창사회에서 공처가로 소문난 익살꾼이 되었다. “서정주 시인이 종의 자슥이라카모 내는 아내의 종인기라.” 그런 코믹으로 좌중을 웃긴 재구는 겉으론 모자란 척하지만 속은 옹골찼다.
“그럼, 송아 씨를 어디에 앉힌담? 아무래도 여자를 돌 보듯하는 사람 옆에 앉히는 게 가장 합리적이겠지?”
문희숙의 말을 육군 준장 출신 서동민이 걸걸한 목소리로 받았다.
”그렇다면 여자를 돌 보듯하는 김석 옆에 앉히자구.”
좌중에서 이의 제기가 없자 문희숙은 송아를 김석 옆자리에 앉혔다. 드디어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되었다. 술좌석이 무르익자 추억담이 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벌벌이가 사랑을 화두로 삼자고 제안했다.
“우리 친목회는 인자부터 아카데믹한 모임이 되얀다카이. 밥 묵고 술 묵다 헤어지모 뻔한 모임 아이가?”
그 말에 읍장이 추억담을 고집했지만 벌벌이는 끝까지 사랑에 대한 화두를 물고늘어졌다. 그 주장에 장선우 교수가 선뜻 동의했다.
“늙어갈수록 젊어져야지. 젊어지는 데는 공부가 보약이고.”
그러자 의기양양해진 벌벌이가 목청을 높였다.
“꼰대로 늙어갈끼가? 시골티 내는 기 그리 좋나?”
“가장 아름다운 게 추억담인데 왜 시골티야? 동창친목회가 뭐지? 옛 추억담을 나누는 모임 아냐?”
읍장이 거듭 추억담을 고집했다.
“내 말은 추억담을 무시한 기 아이다. 모임을 쌈박하게 장식하자는 기 내 주장이다이, 알갔나?”
벌벌이가 살짝 꼬리를 내렸다. 일단 참석자 거의가 사랑을 화두에 올리자고 동조하자 여기저기서 뜨거운 경구(警句)가 튀어나왔다.
사랑은 위조지폐야.
사랑은 독약이라구.
사랑은 구원이제.
사랑은 고물이야. 사랑이 아름다운 시대는 이미 지났어.
마지막 비유는 장선우 교수의 말이었다. 그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사랑 얘기라면 김석이 전공 아니겠어? 한마디 해봐.”
읍장의 주문에 모든 시선이 김석에게 쏠렸다.
“먼저 결혼을 예로 들겠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것, 그 상식을 뒤집자는 게 내 주장이야. 사랑하기에 결혼한다면 이혼이 없어얄 텐데 그게 아니거든. 이혼율이 결혼율의 절반에 육박한다잖아. 그러니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건 말짱 거짓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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