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5회)

충남시대 2024. 8. 6. 14:34

무장공비의 칼을 맞고 전사한 염 순경


1968. 12. 24

  공비소탕작전도 거의 끝나간다. 나는 거진항 임검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이브를 무기고 숙직실에서 예비군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보냈다. 새벽 2시까지 내 송별회로 막걸리 파티를 열어준다. 고맙다.
  아폴로 8호가 사상 처음 달의 궤도를 돌고 지구 인력권으로 진입했다.

1968. 12. 30

  어제 강릉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거진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 와 있는 기분이다. 북한과 가까운 탓이겠지. 임검소는 자그마한데 직원이 5명이나 된다. 급사도 있다. 알고 보니 명태를 나르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곳에도 깨끗하지 못했다.
  거진항 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자 관할구역 순시에 들어갔다. 먼저 두 명의 직원이 선박을 통제하고 있는 대진항을 찾았다. 최전방 포구인 마차진 바로 다음 포구가 대진항이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어판장에 도착하니 임검소에서 십대 초반의 사환이 달려 나왔다. 대원들의 행선지를 묻자 사환은 얼굴이 벌게지며 입을 열지 못했다. 엄중히 다그치자 그제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나는 사환이 실토한 술집을 찾아갔다. 방에서 개다리소반을 놓고 술에 취한 두 대원이 전투복만 입고 모자를 벗은 채 젓가락으로 장단을 치며 배호의 <누가 울어>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큰 소리를 칠까 하다가 성질을 죽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두 대원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나란히 서서 경례를 붙였다.
  “분대장님 어서 들어오이소. 날씨도 지랄맞고, 상황도 없고, 둘이 모처럼 신세타령하고 있심더.”
  나는 근무 중에는 술을 피하라고 헛소리처럼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규율을 잡겠다며 꾸짖는 대신 그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위계질서를 잡는 것이 순서라고 여겨져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나를 아랫목에 앉히고 뿌연 막걸리를 잔에 채워주었다.
  “칵 마시고 한 곡조 뽑으시소.”
  두 대원이 거듭 잔을 채워주는 바람에 나는 금방 취기가 올랐다. 손에 쥐어주는 젓가락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입에서 저절로 <대관령 길손>이 터져 나왔다. 
  “당장 가수로 나서지요. 만날 공비나 뒤져봤자 머 합니꺼. 언제 염 순경 신세 될지 모르는 판인데예.”
  두 대원중에서 강 순경이 풀어진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사람 갈 데까지 갔군. 염 순경의 순직을 어디에 결부시키는 거야?”
  내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주문진임검소사건 당시 등에 무장공비의 칼을 맞고 전사한 염 순경과는 유독 정이 깊던 사이였다. 내 홀아비 팔자를 이해한 후배는 염 순경뿐이었다. 그는 자의식이 강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경찰관이었다. 나는 강 순경에게 한마디를 더 보탰다.
  “자네 같은 패배주의자가 임검소 업무를 맡고 있으니 큰일이군.”
  “아입니더. 지는 패배주의자가 아이고 허무주의잡니다. 허무주의자는 누구보다 용기와 기개가 넘치죠.”
  “경찰관에게 낭만은 금물이야. 낭만적 허무주의는 자칫 위선에 빠지기 십상이지. 그래서 경찰관은 위악적인 체질을 길러야 해. 경찰관에게 위악은 멋이거든. 진정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멋 말이네.”
  나는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나 자신이 낭만적 허무주의자였던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냥 해본 소리야.”
  나는 불쑥 한마디를 던지고 일어나 술값을 계산했다. 그러자 대원들이 주모에게서 돈을 회수하여 내 호주머니에 넣고 자기들 돈으로 술값을 치렀다. 술집에서 나오자 두 대원은 나를 가운데에 세우고 어깨동무를 했다. 나는 내심 즐거우면서도 주민들의 이목이 민망해서 얼른 팔을 풀고 앞장서 걸어갔다. 가랑비는 여전히 추적거렸다. 대원들은 일부러 고개를 들어 얼굴에 비를 맞았다. 그때였다. 강 순경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뇌까렸다.
  “분대장님, 참으로 괴롭심더. 암울한 세상이 그렇고 암울한 바다가 그렇심더.”
  “우리 술 한 잔 더할까?”
  “아입니더. 괜찮심더. 지를 위로할라 마이소. 지는 그냥 생겨먹은 놈입니더.”
  “어떻게 생겨먹었다는 거지?”
  나는 일부러 강 순경의 속을 떠보았다.
  “문학적인 호기심이 발동하신 겁니꺼?”
  “문학적인 모색이 아냐. 그냥 자네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을 뿐야.”
  “지는 분대장님처럼 깊지 못합니더. 공연히 몸만 들볶을 따름이죠.”
  “자네와 나는 형질이 비슷해. 다른 점이 있다면 자네의 솔직함에 비해 나는 위선적이란 거지.”
  “와 이러십니꺼. 지를 그런 식으로 나무라지 마이소.”
  “정말이네.”
  “그거는 위선이 아니고 위악이죠. 아까 말씀하셨잖습니꺼. 위악적인 체질을 기르라고.”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분대장님 말씀을 들으이까네 경찰관이 면벽정진하는 스님이나 성직자처럼 여겨집니더. 고통을 탐하며 살아야 하는....”
  “저 아이를 좀 봐.”
   나는 강순경의 말을 돌렸다. 대여섯 살 된 꼬마가 접힌 비닐우산을 들고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사라졌다. 비가 내리는데도 우산을 펴 들지 않은 아이의 행동이 시선을 끌었다. 
  “저 우산은 누구의 우산이며, 어디로 가져가는 걸까요?”
  “이제 보니 자넨 시인이군.”
  내 말에 강 순경은 깔깔깔 웃었다.

1968. 12. 31

  거진은 술값이 비싸다. 고급 요정에서 KBS, MBC, 그리고 각 신문사 특파원들과 인사 겸 송년 파티를 열었다. 나는 무려 400여 척의 명태 어선을 통제하고 기자들, 해군, 해경, 군 방첩대, 경찰서와 지서, 그리고 지방 유지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업무까지 지게 되었다. 여기는 일급지서여서 지서장 계급도 서장과 동급인 경감이었다. 전국에서 경감지서장은 논산, 동두천 등과 이곳 거진뿐이다.
  내 직함은 기자들이 호칭하는 분대장이란 공식 명칭, 군인들이나 해경이 호칭하는 대장님. 어민들이 호칭하는 소장님 등 3가지다. 내 복장은 계급장도 없는 군복차림이다. 말단 계급이면서도 직책상 지서장보다 끗발이 세다. 거진항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살벌한 분위기다. 주민의 태반이 이북출신이고 누가 첩자인지도 모른다. 직원들도 거칠어서 지시를 어긴 어민을 몽둥이로 다스릴 때도 있다. 그래야 말을 들었다. 심지어 지시를 어기고 출항하는 어선에게는 발포까지 한다.
  “그래야 정지하거든요. 도통 말을 안 들어요. 이북에 잡혀갔던 선원도 많아요. 곱게 다루면 안 들어요.”
  직원들의 충고였다. 주문진임검소를 공비가 습격하여 경찰관을 죽인 후로 근무자의 인심도 사나워졌다. 나도 인정보다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또 중앙의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운 곳이어서 약점을 잡히지 말아야 했다.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은 곳이다. 

1969. 1. 16

  피랍어부들이 귀환하는 날은 부두 전체가 들썩거렸다. 오늘은 어선 세 척이 북한에서 풀려났는데, 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가족 친지들과 귀환 장면을 구경 나온 주민들로 부둣가에는 사람들이 백절을 쳤다. 드디어 등대 근처에 피랍어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부터 가족들은 눈물을 짓고 있었다. 배가 통통거리며 부두로 진입하자 차츰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정보형사들이 어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어부들은 가족들에게 손만 흔들 뿐 접촉이 금지된 상태였다. 그들 배에는 북한에서 선물로 실어준 쌀가마니가 실려 있었다. 어부들 중에는 북한에서 가져온 담배를 내게 몰래 꺼내주는 어부도 있었다.
  “원산에서 소장님 안부를 묻던데요.”
  담배를 꺼내준 어부가 능청을 떨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사정을 알고도 경찰서로 연행할 수밖에 없노라는 그런 민망한 심정이 묻어 있었다. 나는 피랍어부의 말이 사실로 여겨졌다. 무장공비가 들끓고 임검소가 습격당하는 판인데 전국에서 가장 촉각을 세운 거진항 임검소장이니 북한에서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원래 38선에서 훨씬 위쪽인 거진항은 분단의 현실이 가장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외지인은 북한땅에 들어온 남한 사람이나 진배없었다.
  이번에는 안면이 많은 피랍어부가 내게 슬며시 귀엣말을 흘리기도 했다.
  “구경 잘했습니다.”
  거진은 그만큼 복잡한 지역이었다. 많은 주민이 납북 어민이어서 분위기가 거칠었다. 어부들은 준법보다도 명태 만선滿船이 우선이었다. 원산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명태 어장이 형성되어 두세 시간만 잡아도 거진 앞바다에서 하루 종일 잡는 어획량보다 많으니 기를 쓰고 군사분계선을 넘게 마련이었다. 그들은 태반이 유치장에 수감되었는데 잡혀간 사람들을 왜 집어넣느냐고 항의할지 몰라도 한 번 잡혀가면 반은 빨갱이가 된다는 것이다. 어부들은 태반이 서울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인데, 원산항으로 끌려가 남한에서는 구경도 못해본 호텔 같은 ‘초대소’에서 꿈같은 대접을 받으니 자연히 빨간 물이 든다고 했다.

1969. 1. 17

  승진 관계로 강릉에 다녀오니 그남 누나한테서 편지가 와 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그저 목놓아 울고 싶다. 가난에 시달리신 어머니, 시부렁거리는 주술呪術 때문에 자식에게 구박당한 어머니, 지금 얼마나 자식이 보고 싶으실까. 나는 강릉 본대로 장거리 전화를 걸어 긴급 휴가를 요청했다.

  제1原動子.... 순수현상으로서의 神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은 수학의 기호로 새겨진 책자                      -갈릴레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사르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