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1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2회)

박정희 의장이 구상한 ‘인공강우’ 나는 틈틈이 헌무의 편지를 다듬어주었다. 세 번째 편지부터 애인의 답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헌무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적힌 애인의 편지를 들고 내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는 자연히 서울파의 미움을 더 사게 되었다. 서울파 두목은 내게 종종 압력을 넣곤 했다.   “너는 서울에서 용산고를 다녔으면서 부산놈과 어울리냐? 그렇게 배알이 없니?”   “학교로 따지자면 부산에서도 중학교를 다녔거든.”   “부산? 충청도 촌놈이 더럽게 많이 쏴다녔네.”   “너 깔치 있어? 깔치 있으면 너한테도 연애편지를 대필해줄게.”   “알겠다. 너하고 친해지려면 깔치가 있어야겠구나.”   그날 밤이었다. 취침점호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서울파 두목이 나를 살며시 밖으로 불러냈다...

연재소설 2024.01.30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1회)

5.16 군사혁명 1961. 5. 3 공군 입대시험에 합격한 나는 이곳 대전 유성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에 와 있다. 신병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지내는 중이다. 입대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 숫제 이곳이 좋다. 1961. 5. 5 오늘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항공병학교 입교식을 마쳤다. 3년 동안 입고 사용할 4계절 군복과 장비도 수령했다. 마침 우리 때부터 제복이 진한 하늘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961. 5. 8 일과를 마친 생도들이 저녁을 먹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조명탄이 터지고 스피커로 비상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환한 조명탄 불빛에 연병장은 대낮 같이 밝았다. 활주로 건너편 A지구에서도 조명탄이 작렬했다. “남침을 ..

연재소설 2024.01.23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0회)

내 고통의 샘 은적암(隱寂庵) 1961. 4. 29 아! 내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달빛과 송림내와 농무가 짙게 깔린 이 깊은 계곡의 은적암 별채. 그 초가집 단칸방에는 지금 칠십 넘은 불목하니 노인이 누워 있고, 그분의 외아들인 내가 촛불 속에 가물거리는 아버지의 앙상한 육신을 바라보고 있다. 열린 방문으로 괴괴한 산협의 적막이 밀려왔다. 형제의 눈총을 피해 이곳 낯선 마곡사 은적암까지 걸어와 불목하니로 연명하시는 아버지! 어제였다. 공군 입대를 이틀 앞두고 서울에서 내려온 나는 마곡사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태화산 자드락길을 20여 분을 걸어 암자에 도착했을 때는 해 질 녘이었다. 은적암 대문 안에 들어서자 여승이 맞아주었다. 부여에서 오신 용(龍)자 수(洙)자 되시는 ..

연재소설 2024.01.1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회)

윈스턴 처칠의 문학정서와 제2차세계대전 1960. 7. 29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의석수 219개 중에 민주당 172석 차지했다. 1960. 8. 8 제2공화국 양원(민의원 ⸳ 참의원) 첫 개원일이다. 셋방 안집에서 수박을 가져왔다. 100환이면 수박을 즐긴 텐데,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왜 홍산쯤에 사시겠다고 농토를 파셨는지! 왜 그 돈을 양자 간 형에게 빼앗겼는지! 앞으로 부모님의 생활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새뜸과 탑시부락(무쇠점)에 놀러 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고추, 파, 무청, 나물 등이 들어 있는 보따리 속에서 민주의 편지를 꺼내주신다. “나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남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되었는지 몰라....” 몸을 섞어온 민주가 가엾다. 마음은 혜연에게 가 있는 내가..

연재소설 2024.01.0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8회)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59. 1. 26 이승만 대통령이 4선 출마용의를 표명했다. 시국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어제는 이 결성되었는데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대단하다. 1959. 4. 9 “만약 당신과 헤어지게 되면 그건 커다란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나를 성공시킬 것이며 그 성공은 내게 하등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 혜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1959. 8. 9 민호(훗날 화공과 교수)와 함께 신흥대학교(훗날 경희대학교)로 상대 형을 찾아갔다. 민호는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 미국에 유학가겠다고 말했다. 청파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놀고 지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흥인(훗날 외과의사)과 둘이 한강 백사장으로 목욕하러 갔다. 나는 70 노령에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재소설 2023.12.27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회)

훗날 국회부의장 아내가 된 여중생 1958. 11. 5 이승만 대통령이 월남 고딘디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데 우리 학생들은 도로변 환송에 끌려갔다. 용산고는 한강대교 양쪽 인도가 담당구역이었다. 밤에는 섬진강 유역인 구례에서 농촌계몽운동할 때 계몽대장이었던 백기완 선배를 원효로 집에 찾아갔다. 그는 나보고 향토녹화대나 문화단체를 조직하라고 했다. 나를 퍽 아끼는 분이고 나는 그를 내가 조직한 청진회(靑進會) 고문으로 추대했다. 청진회는 四大 公立高인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에서 각각 2명식 선정한 학생모임이다. 내가 고교시절에 만난 백기완 형을 다시 만난 것은 35년이 지난 후 내가 첫 소설집『늰 내 각시더』를 출간했을 무렵이었다. 내 작품은 중앙지, 지방지 할 것 없이 전 매스컴에서 톱..

연재소설 2023.12.19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6회)

미친 영감이 엄니를 업고갔어유 1957. 12. 29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토막이 가슴을 저몄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어느 달 밝은 겨울밤이었다. 이슥할 무렵인데 눈이 하얗게 쌓인 앞산길에서 음습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섬기가 느껴진 나는 그 사위스런 울음소리가 애장귀신(어린이 귀신) 소리라며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예끼, 저건 애장귀신 소리가 아니고 사람 소리야.” 아버지는 나를 사내답지 못하다고 신칙하면서 밖으로 나가셨다. 달빛이 뿌연 들판 쪽으로 걸어가는 아버지가 애장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흑토뫼 너머 산자락에는 애장이 있었다. 여우가 송장을 파먹지 못하도록 돌로 봉곳이 쌓은 애기 무덤이었다. 달빛이 푸른 밤이면 그 애장에서 슬픈 울..

연재소설 2023.12.12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5회)

서울대 법대생들 대통령 양아들 편입항의 “저는 젊은 시절을 노름으로 보낸 탕아였습니다. 돈을 잃을 때마다 부모님을 괴롭혔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뿐인 자식의 탄식과 애걸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시고 노름밑천을 장만해주셨습니다.” “화투에 손대지 않겠다고 반성한 적이 없었느냐?” “노름은 제 고질병이었습니다. 화투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몸에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성냥치기로 시작했습니다.” “성냥치기라니?” “그 시절에는 생활필수품인 성냥이 무척 귀했습니다. 성냥 한 갑을 사면 한 개비라도 아껴 쓰던 시절이었죠. 저는 형뻘 되는 총각들에게 홀려 하룻밤에 ‘도리지꼬땡’으로 성냥 한두 갑을 날리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성냥 대신 돈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한테 꾸지람을 듣지 않았느냐?” “어릴 적..

연재소설 2023.12.06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4회)

염라대왕과 저승혁신위원회 “내겐 동생 말이 너무 맘에 들어.” “두 사람 모두 미쳤구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아들딸 나면 환장하게 좋을 틴디 강에 빠져 죽다니, 도대체 그걸 말이라구 혀?” “누나, 일본에는 자살하는 여고생이 많아. 걔들은 모두 천재야. 허무가 뭔지를 아는 철학자들이라구.” “그래라. 너도 천재니까 일찍 뒈져라. 쯔쯔쯔, 동생하나 있다는 게 저 꼴이니 싹수가 노랗구먼. 어이구 내 팔자야!” 누나의 말 속에는 허풍이 묻어 있었다. 그 허풍은 혜연이 동생의 말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랄까, 혜연이 동생의 말을 곱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자 누나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혜연에게 누나가 엄살을 떨었다. “나는 맥이 빠져서 꼼짝 못한 ..

연재소설 2023.11.28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3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여 1957. 3. 2 졸업식 날이다. 꽃다발이 운동장을 메웠는데 나만은 아무도 없다. 이동주 가족들이 위로해주었다. 혼자 고교입학원서를 들고 그리운 교문을 나왔다. 밤에 서울행 급행열차를 탔다. 1957. 3. 13 어제부터 오늘까지 필답고사를 치렀다. 내일 면접과 신체검사를 끝내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필답은 자신 있게 마쳤지만 7대1의 어려운 비율을 과연 돌파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운이란 게 있나보다. 내가 자신 없는 과목은 생물인데 한강로 누나 집에서 남영동 용산고 입구까지 전차를 타고 가면서 읽어본 ‘멘델의 법칙’이 그대로 나와 무난히 써낼 수 있었다. 1957. 3. 16 학교 2층 벽에 합격자 명단이 붙어 있다. 31번, 48번, 57번.... 그 중에서 ..

연재소설 202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