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통의 샘 은적암(隱寂庵)
1961. 4. 29
아! 내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달빛과 송림내와 농무가 짙게 깔린 이 깊은 계곡의 은적암 별채. 그 초가집 단칸방에는 지금 칠십 넘은 불목하니 노인이 누워 있고, 그분의 외아들인 내가 촛불 속에 가물거리는 아버지의 앙상한 육신을 바라보고 있다. 열린 방문으로 괴괴한 산협의 적막이 밀려왔다. 형제의 눈총을 피해 이곳 낯선 마곡사 은적암까지 걸어와 불목하니로 연명하시는 아버지!
어제였다. 공군 입대를 이틀 앞두고 서울에서 내려온 나는 마곡사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태화산 자드락길을 20여 분을 걸어 암자에 도착했을 때는 해 질 녘이었다. 은적암 대문 안에 들어서자 여승이 맞아주었다. 부여에서 오신 용(龍)자 수(洙)자 되시는 어른을 찾으니 여승은 얼굴을 환히 열며 “서울 아드님이시군요.” 하고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꿀렸다. 불목하니 아들이란 데에 꿀렸고 암자의 고요한 적막에 꿀렸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저녁을 드셔야 되니 곧 산에서 내려오실 겁니다.”
서둘러 암자를 나온 나는 여승이 가리켜주는 대로 서둘러 산길을 걸어갔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헛간처럼 생긴 작은 초가가 나타나는데 그 외딴집이 일흔한 살 된 불목하니의 거처였다. 그 초가에 이를 즈음 지게를 지신 아버지가 어스름이 깔리는 산비탈을 내려오고 계셨다. 나는 얼른 달려가 무거운 지게를 대신 지려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냈다.
“너는 서툴러서 안 된다. 짐은 짐꾼이 져야 제격이다.”
“저도 지게를 많이 져봤잖아요.”
“그때는 어린 앳짐이지만 이건 생솔가지가 다섯 단이나 된다. 그리고 다시는 네 등에 짐 져진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그 말씀에는 초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도 진학을 포기한 채 산에서 나무하다 정강이를 다친 내 피 뒤발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드시면서도 내동 자식 걱정뿐이었다.
“지금은 군대에 갈 몸이니 내 걱정은 말거라.”
“어떻게든 2년만 참아주세요. 제대하면 호강시켜 드릴 테니 아무쪼록 건강만 챙기세요.”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병역을 마친 후에도 대책이 막연했지만 우선 말로나마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병역만 치르면 날품을 팔아서라도 아버지를 모실 참이었다. 자원해서 공군 입대시험을 치른 것도 하루빨리 병역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절간에서 저녁을 먹은 아버지와 나는 초옥으로 돌아와 잠자리를 폈다. 밤이 깊어지자 초옥에는 적막이 자욱했다. 옆방 고등고시 준비생도 잠이 들었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능선에 얹혀있던 달이 중천에 오르면서 이내 낀 산협에는 눅눅한 안개가 쌓여갔다. 나는 그 안개에 묻힌 달빛이 좋았다. 태곳적 달빛이 저랬으리라.
잠시 문턱을 베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조용히 밖으로 나가 토방에 걸터앉았다. 입대를 하루 앞둔 아들에게 경경고침(耿耿孤枕)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효자 아들이 좋으세요 충신 아들이 좋으세요?”
“충신은 효자도 되고 효자는 충신도 되니라.”
“그럼 정치하는 아들과 소설 쓰는 아들 중에서 어느 자식이 더 좋으세요?”
“소설가란 얘기꾼을 말하는 거냐?”
“예”
“허허.....”
“대답해 보세요.”
“본디 얘기꾼은 허풍이 심하잖여? 하기야 허풍쟁이니까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꾸몄겠지만.”
“허풍이지만 여러 사람을 울리고 웃기잖아요?”
“허면 너한테도 그런 소질이 있다는 거냐?”
“그런 것 같아요.”
“요상한 핏줄이구나.”
“네?”
“내 팔자소관 같아서 하는 말이다.”
“팔자소관이라뇨?”
“내 나이 스물다섯 살 때니라. 하루는 콩밭에서 김을 매는데 남사당패가 지나가고 있었어. 한산 읍내서 굿판을 열고 강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울긋불긋 차려입은 게 모두 이승 사람 같지 않았어. 호미를 팽개치고 무작정 따라나섰니라. 강경까지 따라가니까 나를 실하게 봤던지 일행에 껴주겠다고 하더구나. 우선 허드렛일을 하다가 차츰 솜씨를 익히라는 거야. 그런데 다음 날 네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이 득달같이 찾아왔어.”
“어떻게 아시고요?”
“동네방네 수소문해서 찾았겠지. 광대 패 찾기야 쉬운 일이니까. 맏아들이 없어졌으니 집에서 난리가 오죽했겠니.”
“그래서요?”
“못 돌아간다고 뻗댔지. 그런다고 네 삼촌들이 그냥 두겠냐? 모두 황산나루에 빠져 죽겠다고 야단법석인데 어쩌겠냐. 별 수 없이 따라나설 밖에.”
“하마터면 저도 광대 자식이 될 뻔했네요.”
“글쎄다. 광대가 됐더라면 부여로 이사도 못 가고, 자식도 못 낳았을지....”
“제 핏속에도 아버지의 그런 끼가 흐를 거예요. 소설을 쓰고 싶은 것도 그 끼 때문인지 모르죠.”
“나쁜 끼는 아니다.”
“그럼 자식이 가난한 글쟁이가 돼도 좋다는 말씀에요?”
나는 은근히 아버지의 마음을 떠보았다.
“내가 언제 부자 자식을 바랐더냐?”
아버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고생과 타협하는 게 아닐까? 당신의 끼를 죽여 온 그 차디찬 죄업을 탕감받기 위해 되레 고생을 즐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당신은 참담하게 사시면서도 자식에게 재물의 귀중함을 가르쳐주지 않은 걸까? 그처럼 고통을 즐기시는 게 아닐까?
“아버지.”
“오오냐.”
“왜 저를 나약하게 키우시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냐?”
“왜 저를 착하게 키우시냐 그 말이에요.”
“말뜻은 알겠다만 너를 나약하게 키운 적이 없다. 정갈하게 키우고 싶었을 뿐이다. 맘이 정갈해야 하늘이 높아 뵈는 법이다. 착하다고 나약한 게 아니잖니.”
아버지의 목소리는 잔잔한 산울림처럼 들려왔다. 달빛에 물든 아버지 어깨너머로 노송 한 그루가 버티고 서있었다.
“아버지는 뜬구름 속에 사시는군요. 저까지 불행해지라고요.”
“불행이라구? 하늘을 높게 보는 것이 불행이냐?”
나는 침묵을 지키다가 꺼내기 힘든 말을 꺼냈다.
“왜 작은아버지 댁을 떠나셨어요?”
“....”
“작은아버지가 세 분이나 계신데요?”
“차라리 불목하니가 편하다고 생각했니라.”
“아버지가 머슴살이하며 가르치신 동생들인데 맏형 한 분을 모실 수 없다뇨?”
“아니다. 불목하니는 내가 택한 길이다. 더 이상 캐묻지 마라.”
“그럼, 왜 하필 은적암을 택하셨어요?”
“마곡사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다. 그게 인연인 거지.”
“마곡사는 어떻게 찾아가셨고요?”
“소문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찾아가기가 난감했니라.”
“버스를 타고 공주를 거치면 수월할 텐데요?”
“여비가 있으면야 수월하겠지....”
“그럼 한산에서 마곡사까지 걸어가셨다구요? 2백리길인데?”
“걷는 거야 이골이 났지만, 하도 배가 고파서 파출소에 들렀니라.”
“그래서요?”
“순경이 곰탕을 사주고 버스를 태워줬어.”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물안개에 젖은 달빛을 바라보았다. 지금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모아놓은 1000환에서 늬 어머니한테 500환(圜)을 부치고 나머지는 늬 가방에 넣었으니 여비로 쓰거라. 모두 절에서 준 돈이다.”
“안 돼요! 아버지가 쓰세요. 잡수고 싶은 것도 사 잡수시고....”
“나는 쓸 데도 없거니와 뭐니 뭐니 해도 절밥이 최고니라.”
아까 초저녁에 은적암에서 여승이 들고 온 목판에는 아직도 사탕과 떡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버지 잡수시기를 바라며 일부러 먹기 싫다고 했다. 옆방에서 고시 공부하는 서울 학생이 사줬다는 담뱃갑을 내보이며 맺힌 말씀을 꺼내셨다.
“너 때문에 한 때나 하고.... ”
“그저 아버지 몸만 건강하세요. 3년만 기다리시면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1961. 4. 30
산속에 아버지를 외로이 두고 군부대로 떠나야 했다. 아버지는 외아들의 뒤를 따르시며 내동 몸을 조심하라고 이르셨다. 나는 자꾸 돌아가시라고 발길을 세우곤 했다. 드디어 아버지의 손목을 놓고 인사를 올렸다. 몇 번이나 아버지 모습을 뒤돌아보며 천천히 계곡을 내려왔다. 울창한 수목 속을 걸어가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주먹을 쥐고 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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