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1회)

충남시대 2024. 1. 23. 15:12

5.16 군사혁명


1961. 5. 3

  공군 입대시험에 합격한 나는 이곳 대전 유성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에 와 있다. 신병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지내는 중이다. 입대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 숫제 이곳이 좋다. 


1961. 5. 5

   오늘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항공병학교 입교식을 마쳤다. 3년 동안 입고 사용할 4계절 군복과 장비도 수령했다. 마침 우리 때부터 제복이 진한 하늘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961. 5. 8

  일과를 마친 생도들이 저녁을 먹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조명탄이 터지고 스피커로 비상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환한 조명탄 불빛에 연병장은 대낮 같이 밝았다. 활주로 건너편 A지구에서도 조명탄이 작렬했다. 
  “남침을 자행한 인민군은 서울을 정복하고 어느새 유성을 지나 만두고지까지 접근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비록 훈련병이지만 위난에 처한 조국을 위하여 용감히 전투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영점오초(0.5초) 내로 연병장에 집합!”
  전 훈련병들은 무장을 갖추고 선착순으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완전무장을 갖춘 집합으로는 눈부신 동작이었다. 하지만 훈련병들은 두렵기는커녕 이제 구국전선에 뛰어든다는 강렬한 모험심이 치솟아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참으로 지루하던 내무반 생활이었다. 만날 엎드려뻗쳐 기합에다 청소(깨끗한 곳을 매일 거듭 쓰는 청소)와 관물함 정리에 진저리를 쳐야 했는데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니 사뭇 어깨에 힘이 솟았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전투는 군인의 멋.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출전에 대비했다.
  중대원 전원이 연병장에 모이자 지휘관이 연단에 올라갔다. 어떤 작전 명령이 떨어질까 바짝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어디로 진군해서 어디에서 적군과 교전하게 될지 숨 가쁜 찰나였다. 그런데 연단에 올라 선 중대장의 입에서 엉뚱한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부터 노래자랑을 실시한다.”
  와아아! 연병장에 박수소리가 진동했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남침 소식도 못 들었는데 언제 대전까지 내려왔을라구.”
  여기저기서 안도의 숨이 터져나왔다. 구대(소대)별로 가수를 뽑았다. 3구대에서는 내가 뽑혔다. 가수들은 차례차례 지명에 따라 연단으로 올라갔다. 나는〈대관령 길손〉을 구성지게 불러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가사는 잘 기억할 수 없어 1절과 2절을 뒤섞어서 정리한 곡이었다.

  갈 곳도 없는 몸이 쉴 곳이 있을 소냐
  떨어진 보따리를 베개 삼고 벗을 삼아
  밤울새만 지저지저 나그네 우울리는데
  정든 고향 왜 버렸나 대관려엉 기일손

  대표 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는 지방별로 지목을 바꾸었다. 첫 번째 가수는 서울치였다. 서울치는 경상도치에게, 경상도치는 전라도치에게, 전라도치는 충청도치에게, 충청도치는 강원도치에게, 강원도치는 경기도치에게, 경기도치는 제주도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그러자 이북(북한)치가 소리쳤다.
  “집어치우라우! 이거이 오락회네? 간나들!”
  그제야 사회자는 지명 누락을 사과하고 이북치 가수를 연단에 세웠다. 마이크를 잡은 가수가 소리쳤다.
  “이북치들은 숫자가 적으니께니 박수를 크게 치라우!”
  그렇게 밤은 즐거웠다.
1961. 5. 14

  첫 면회가 실시되었다. 다른 훈련병들은 부모 형제들이 고기와 떡을 장만해서 면회왔지만 나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온종일 내무반에서 누워있는데 해질 무렵에야 면회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얼른 뛰쳐나가보니 고향 옆집 오씨 아저씨가 멍 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느이 집이 야단났어. 느이 아버지는 마곡사에서 절머슴살이를 하고 있다지만 느이 엄니가 워디로 떠났는지를 몰러. 아마 남의집살이하러 송당으로 떠난 것 같은디, 혀서 내가 대신 면회 옹 거여.”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머리를 빡빡 깎은 훈련병인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입술만 깨물었다. 


1961. 5. 16

  오락회를 치르고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아침에 완전무장으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단체기합인가 짐작했는데 기합치고는 서두는 기색이 없었다. 아무래도 심상찮은 명령이었다.
  “아침부터 와카노?”
  “아침부터 오락회 열랑가?”
  “오락회만 열다 제대 허믄 좋겄는디.”
  연병장에 집합한 생도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집합이 완료되었는데도 지휘관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다시 스피커에서 명령이 하달되었다.  
  “해체하라! 완전무장만 갖추고 내무반에서 대기하라!”
  생도들은 투덜거리며 도로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그때 또 명령이 하달되었다.
  “제군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말고 지시대로만 행동하기 바란다. 함부로 떠들지 말고 입을 조심해라. 의심나는 점이 있어도 묻지 말고 복무에만 충실해라. 여러분들은 군인임을 명심하고 명령에만 복종하기 바란다. 이상!”
  내무반이 점점 술렁대기 시작했다. 생도들은 무슨 일이 터진 것만 같아 몹시 궁금했다. 바늘귀만큼의 짐작도 할 수 없는 캄캄한 궁금증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서울 출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투리가 튕겨나왔다.
  “내사 알갔나. 암튼 집합 없고 편하니까네 좋다마.”
  “인민군들이 쳐들어오다가 졸고 있는 것 아녀?”
  “맞당게, 전쟁허다보믄 몸이 지칭께로 졸리기두 허것제.”
  “말들 조심하라우. 머이가 터질 징조라메. 기러티?”
  그들은 벌렁벌렁 마룻바닥에 누우며 계속 잡담을 늘어놓았다. 아무 지시도 없고 영내는 조용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스피커에서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 라디오를 틀어주는 모양이었다.
  “포고령…… 혁명공약……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저 소리가 뭐꼬?”
  “뭐가 터지긴 터진 모양인디.”
  생도들은 하나둘 스피커 주위로 몰려들었다. 1961년 5월16일 점심 무렵이었다.


1961. 5. 17

  새벽 3시, 부대 스피커에서 계속 방송이 나오고 있다.
  혁명! 육군과 해병대의 구테타!
  
  그런데 민심은 구테타를 지지한다고 한다. 바보 같은 민주당이다. 각부장관 체포령. 이 나라에 이사야 같은 신앙영웅은 없는가.


1961. 5. 18

  혼자 활주로 주변 수풀 속에 앉아 쉬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맑은 시정(視程)이 비행기 이착륙에 알맞겠다. 잠자리 같은 L-19기가 쉴새없이 뜨고 앉는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앉아 있다. 멀리 2층 교실 아래 연병장에는 갑종장교 임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우리 병과       91기는 갑종장교 15기와 훈련을 같이 받는 셈이었다.  
  
  오늘부터 직각보행 실시. 장소가 어디든 방향을 꺾을 때는 직각으로 보행을 해야 한다. 그냥 걸어가다 들키면 기합을 받았다.
 

1961. 5. 19

  정식으로 내무반생활이 시작되자 두 싸움패인 서울패와 부산패가 틈만 나면 으르렁댔다. 취침점호가 끝나는 밤이면 두 패가 싸움을 벌였고, 그 바람에 부산패 두목인 헌무와 친한 나는 서울패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느그들 잔아 손대모 이빨을 왕창 빼뿌릴 끼다. 알갔제?”
  헌무의 주먹은 늘 내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입대하기 전 부산에서 밀수업에 종사한 헌무의 주먹은 오달지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런 식으로 헌무가 나를 옹호했지만 서울패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무 때고 손봐주겠다는 눈치였다. 서울패들은 연병장에서 나를 볼 때마다 침을 이빨 사이로 찍찍 내갈기며 째려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헌무는 내 주위를 살피며 엄호해주었다.
  헌무가 그처럼 나를 보살펴준 이유는 내가 헌무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었기 때문이다. 헌무의 글은 후지고 칙칙해서 통통 튀는 애인의 정서에 맞지 않았다.
  “세월이 여류하여 어느덧 꽃피는 춘삼월이.... 이 따위 글로 깔치(애인) 맘을 사로잡겠어? 그런 글은 케케묵은 풍월이라구.”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