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19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7회)

“얼래, 인자 봉게 강 형사도 쌍것이구먼. 나 이래뵈두 무리한 적 읎어.” “하긴 그럴 거야. 골라먹기만 했을 테니.” 구평이 끼어들었다. “으이구 지랄, 영광의 별을 꼬집는 말잉감?” 홍마담이 눈을 흘겼다. 구평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영광의 별? 낯익은 말이었다. 구평이 유치장 근무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 먼저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1호 감방부터 차례차례 눈여겨보며 근무 데스크가 놓인 중앙부를 지나 맨 끝 방인 20호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두 개의 여감방 중 첫 방인 19호 앞을 지나가는데 철책 안에서 간드러진 인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유 홀아버님.” 홀아버니라니,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구평은 혀를 내둘렀다. 죄수들은 간수의 신상을 귀신처럼 알아낸다지만 어떻게 신상을 캐냈는지 놀라울 정도였..

연재소설 2023.08.29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6회)

“총알구멍을 모두 때워봐. 그리고 보트 위에다 장정 다섯 명 무게만큼 모래 가마니를 실어서 집중사격한 장소에 띄워봐.” 작업을 끝내자 서장이 또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방파제로 사수들을 보내 어젯밤 사격했던 위치에서 다시 총을 쏘도록 해봐.” 일제히 보트에 대고 사격했다. 총알을 맞은 보트는 뱅그르 돌다가 모로 기울면서 모래 가마니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됐어!” 지휘관은 환호성을 질렀다. 즉시 주문진 관내에 있는 데구릿배(저인망어선)들과 데구리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잠수복을 입은 데구리들이 공기 호수를 투구에 매달고 물속으로 잠수하자 데구릿배마다에서는 펌프질이 요란했다. 쉴 틈 없이 펌프질을 해야 데구리가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데 작업하는 어부들의 사기를 돋아주기 위해 막걸리 통이 배달되었다. “..

연재소설 2023.08.22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5회)

당신들 이 따위로 근무하기야! 퇴근 후에 교동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신 동호는 자정이 넘자 숙직실에서 잠을 자기 위해 경찰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통금에 묶인 아스팔트길은 발자국 소리가 울릴 만큼 조용했다. 도로 양 켠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대여섯 개의 방범등이 어둠을 밝히고 그 잔영이 파출소 건물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왜 파출소에 불이 꺼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어둠 속에서 사위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미진 시골길에서 들었다면 소름이 끼칠만큼 음침한 목소리였다. “구평이지?” 동호는 어둠 속에 대고 소리쳤다. “네 접니다. 한잔 하셨군요?” “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쉬었다 가시죠.” “또 인생론을 강의할려구?” “여기에 삶은 문어와 초장이 있습니다.” “술도 있겠군..

연재소설 2023.08.08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4회)

낯선 세계 “이제 다시 장가를 들어야지. 더 늙기 전에.” “장가? 기거이 머가 중하네? 길코 내레 장가들 처지갔어? 인자 머가 신나는 인생이라고 계집 얻어 살간. 거더 괴롭게 살다가니 팍 거꾸러지는 거이 젤루 빛나는 거디.” “빛나다니?” “기거이 사는 의미 아니겐?” “미친 사람.....” “기럼, 미쳤디. 미치구말구디. 미친 거이 얼마나 멋지누.” 배승태가 깔깔깔 웃음을 날렸다. “자 받아.” 동호가 술잔을 내밀자 배승태가 얼굴을 돌린 채 팔만 뻗었다. 잔을 채워주자 후딱 비우고 다시 팔을 뻗었다. “제깍 잔을 채워주라마,” 그 오기가 애처러웠다. 동호는 한 손으로 그의 술잔 들린 손을 감싸쥐고 한 손으로 술을 채웠다. “강 형사는 행복하네? 출세했디? 얼굴이 부하군 기래.” 배승태가 술잔을 비우고..

연재소설 2023.08.01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3회)

마지막 헤어졌던 밤 기억하나? “지년 사타쿠이도 이까 낚시카 버억 긁을라타.....” “사내 꺼는 쌍뚱 자르구 즈이 거는 그냥 놔둬? 즈이 계집이 딴 사내허구 포개지능 거 생각만 혀두 쓸개가 녹을 틴디?” “우짜겠노. 새끼 따머 참아야제.” “으이구, 아무리 새끼가 중혀두 바람핀 여편넬 그냥 놔둬? 여이 멍텅구리 같으니라구.” “멍텅구리사 진짜 늬 아이가?” 이번에는 잰 목소리가 느려터진 목소리를 되받아 넘겼다. “그건 또 뭔 소리여?” “늬가 진짜 병신이다 그 말이더.” “워째서?” “노름을 할라 카모 기술이 있어야제 개뿔도 오기만 가지고 돈 딸 성부르나? 그라고 돈을 날렸으모 깨끄이 손 털 일이제 머 한다고 칼부림 했노?” “허긴 그려. 허지만 눈깔이 홱 뒤집히는디 워쩔 거여. 그 얌생이 같은 놈이 ..

연재소설 2023.07.25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2회)

그 육시헐놈 땜에 재수 옴붙었당게 “이 낮도깨비 같은 놈아, 죽어서두 불구덩이로 빠질 노릇이지 아무리 돈에 환장혔기로서니 총을 쐈다고 그짓말을 혀? 아무리 빨갱이라 혀두 한 핏줄인디 그러큼 목을 옭아매 쓰겄냐 그 말여.” “이놈이 맘 한 번 착허게 쓰네. 그래 배곯아 죽는 게 낫냐 보상금 타 먹는 게 낫냐?” “허면, 배곯는다고 사람을 죽여도 쓰는 벱여?” “이놈아, 총은 안 쐈다 혀두 먹다 남긴 밥을 부뚜막에 놔둔 건 사실 아녀?” “그것보담은 총을 안 쏜 게 더 중허잖여?” “하여튼 우리 싸워서 피차 이득 볼 게 뭐겄나. 이참에 자넬 푸대접헌 건 내 잘못이다 치고 먼저 사과함세. 그저 가난이 죌세.” 갑자기 방안이 조용해졌다. 송두문의 사과 발언에 황억배의 부아가 금방 수그러진 모양이었다. 덩달아 마..

연재소설 2023.07.18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1회)

윤희정 동무레 꽃처럼 별처럼 곱디오 “배승태 동무! 기거이 먼 소립네까?” 윤희정의 당돌한 말에 배승태의 몸이 움찔했다. “기걸 말이라구 합네까? 동무를 영웅으로 키운 거는 위대하신 수령님 은혜가 아닙네까? 말을 조심하라요.” 순간 배승태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오싹,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배승태는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 목숨 바쳐 수령님을 옹위하갔습네다!” “제꺽 마음을 다잡기오! 길코 우리 아들 딸두 수령님의 용맹한 전사로 억세게 키우기오.” 윤희정은 큰 소리로 배승태를 거듭 닦달했다. 배승태의 눈에서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윤희정은 팔로 배승태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다. 결혼식은 처음 만나고 삼 개월이 지나 치러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윤희정의 큰아버지..

연재소설 2023.07.11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0회)

꿈결에도 그리운 배승태 동무에게 동호는 지금도 옛날 어느 겨울밤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배승태가 서울 상부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강릉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지 한 달쯤 지나서였다. 그날 밤 동호는 여느 때처럼 밤이 깊어서야 배승태가 입감된 11호 독방을 찾아갔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북한에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배승태는 행복했던 추억담을 틈이 날 때마다 자랑삼아 지껄이곤 했다. 특히 아내 윤희정의 모습을 회상할 때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달밤에 집체로 춤 출 때는 안해가 젤 고왔디랬시오.” 윤희정은 보기 드문 미모인데다 대학을 나온 지성인이며 성분이 좋은 당 간부의 딸이었다. 포항에서 초등학교만 나와 농사..

연재소설 2023.07.04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19회)

공비도 아내를 팽개치능교? “이잔 빨갱이 때를 훌훌 벗고 밝게 살아보레이.” “머이? 빨갱이?” “빨갱이카모 어둡잖나. 지옥처럼 어두분 게 빨갱이 아이가. 난 세상을 밝게 살란다.” “려편네가 맨날 술을 도가니로 마셔대구, 사내들 껴안구 히히대는 거이 밝게 사는 게가? 기건 배때기 불러개디구 지랄떠는 거라메.” “역시 빨갱이 말투군. 늬캉 내캉은 연분이 아닌기라. 일찌감치 구정을 내얀다카이. 미친 인간!” 지화는 꽥 소리를 내질렀다. 장사도 당장 때려치우자며 남편을 꼬나보았다. 배승태는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멋대로 하라메. 날래 치우면 내레 편해 좋디.” “자식도 날래 치우소. 강식은 당신 자식이 아니잖소. 강식을 북쪽 자식만큼 생각했능교?” 지화는 입을 벌린 채 헤헤거렸다..

연재소설 2023.06.27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18회)

머이? 내가 총잡이었다 기거네? “와 야속한 팔자가 멋진교?” “기거는 사람을 긴장시키디. 긴장시키니께니 싱싱한 게구.” “무슨 말씀인지 도통 모르겠심더.” 어느새 강식은 아버지의 말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늬도 알디? 흐르는 물은 싱싱하고 괸 물은 썩잖네?” “.....” “썩은 물에서 고기가 살 수 있간? 살 수 없디?” “네.” “인간도 고기처럼 생물이니께니 탁한 데서는 병들디?” “네.” “병들지 않으려믄 긴장하며 살아야갔디?” “그라요.” “예수님이나 석가모님도 탁한 걸 싫어하셨디? 기러니께니 긴장하며 사신 분들이디? 긴장하며 사신 분들이니께니 늬처럼 야속한 운명을 타고난 분들이디? 내 말을 이해하겠네? 어드래서 늬가 위대한디 인자 알간?” “.....” “날래 대답해보라우. 긴장이 머겐? “..

연재소설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