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래, 인자 봉게 강 형사도 쌍것이구먼. 나 이래뵈두 무리한 적 읎어.”
“하긴 그럴 거야. 골라먹기만 했을 테니.”
구평이 끼어들었다.
“으이구 지랄, 영광의 별을 꼬집는 말잉감?”
홍마담이 눈을 흘겼다. 구평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영광의 별? 낯익은 말이었다.
구평이 유치장 근무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 먼저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1호 감방부터 차례차례 눈여겨보며 근무 데스크가 놓인 중앙부를 지나 맨 끝 방인 20호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두 개의 여감방 중 첫 방인 19호 앞을 지나가는데 철책 안에서 간드러진 인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유 홀아버님.”
홀아버니라니,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구평은 혀를 내둘렀다. 죄수들은 간수의 신상을 귀신처럼 알아낸다지만 어떻게 신상을 캐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구평은 근무 데스크로 돌아오자마자 홍마담의 신상부터 살펴보았다.
간통범인 그녀는 대전에서 다방 마담생활을 할 때 횡령으로 걸려든 적이 있어 별이 두 개째였다. 하지만 그녀는 별이 하나라고 고집을 부렸다. 횡령은 전과로 수긍이 가지만 이번에 들어온 간통은 범죄가 아니라고 우겼다. 횡령의 별은 수치스런 별이지만 간통의 별은 영광의 별이란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법보다 더 구속력이 강한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통죄는 수치나 징벌의 고통을 초월하는 순교자적인 희생이라고 으스대는 판이었다.
“사랑허는 사인디 말유, 워째서 통정을 매도허는지 모르겄슈.”
홍마담은 그렇게 지껄인 적이 있지만 며칠 내로 합의가 이루어져 풀려날 거라던 그 며칠이 몇 달이 가도 풀리지 않고 지금은 묵은 돼지가 되어 빵장에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어구상을 하는 어느 유부남과 눈이 맞아 몰래 동거생활을 해오다 남자의 아내에게 들통이 났던 것이다.
“빨래 좀.”
구평이 감시 근무차 다시 19호 앞을 지나갈 때 송마담이 혀를 내밀려 알랑거렸다.
“규정 시간에 빨도록 해요.”
“그것 땜에 그러는디.”
“그게 뭔데?”
“이봐유, 결혼 전과자가 그것도 몰러유?”
홍마담이 하얀 이를 까내며 웃었다.
“나는 멘스하는 여자와 살아본 적이 없소. 암튼 이따 근무교대 직전에 시간을 내줄 테니 그때 빨아요.”
구평은 발길을 돌렸다. 그때 안동이 고향이라는 절도범 아가씨가 빵장한테 점수를 따보겠다고 수작을 부렸다. 접대부 출신인 그녀는 삼척 탄광지대에서 논다니 생활을 하던 중 손님 금반지를 훔쳤다가 걸려들었다.
“이따 말고예 당장 문을 따주소. 우리 언니 을마나 예쁜교. 맘도 갈대꽃처럼 연하지러.”
“야, 방정맞게 나서지 말어. 누가 너한티 비행기 태달라구 혔어?”
홍마담이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대개 고참은 신참이 간수와 얘기하고 통하는 걸 은근히 꺼렸다.
“언니는 와 화를 내능교.”
“뭐여? 요게 깐죽거려? 니가 깐죽거리먼 워쩔 참여?”
“언니를 역성들어서 한 말인데 와 험한 말을 하능교?”
“요년이 뒈질려구 환장혔나? 감히 누구헌티 눙깔을 굴려?”
“아니, 당신이 먼데 그러능교? 당신캉 내캉 머가 다른교? 새장에 갇히긴 매한가진데 와 텃센교?”
“요게 썅!”
간수 앞에서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홍마담은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그만들 그쳐요.”
구평이 조용히 타일렀다.
“저런 도둑년이 태어났는디두 안동을 선비고장이라구?”
“머라? 당신은 충청도 양반이라 나미 서방캉 붙었능교?”
“히야, 요것봐라. 못허는 말이 읎네. 좋아, 내가 참지. 그 대신 너 이따 보자!”
홍마담은 이를 갈았다. 그 말에 절도범 아가씨는 금새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싹싹 빌었다. 빵장의 위세를 새삼 깨달은 것이다. 머리채를 뜯길 게 뻔했다. 햇돼지는 묵은 돼지한테 실컷 터지고도 감히 일러바치지를 못했다. 사실 그쯤의 피해로서 그네들은 원망을 품지 않는다. 그만큼 그네들은 포기라고 하는 생활방식을 익혀가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행복이란 어휘가 낯설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네들은 때리고 맞았으면서도 지루한 밤이면 발을 모으고 앉아 노래를 흥얼댔다.
풀잎새 매만지며 사랑을 했었건만
지금은 철장신세 비운의 여수란다
누가 오라 여기 왔나 누가 가라 여기 왔나
십구호야 이십호야 하얀 내 집 여감방아.
“때리지 말고 타일러요.”
구평은 홍마담을 빨래터로 보내주며 그 절도범 아가씨를 구타하지 말 것을 다짐받고 옆방으로 향했다.
*
성미는 매일 병원을 찾아가 연주를 문병했다. 성미는 간병인을 별도로 두었으면서도 연주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었다. 영양식 선택에서부터 환자의 위생과 몸치장에 으르기까지 친형제 이상으로 애정을 갖고 간병에 신경을 썼다. 그런 보살핌을 받으며 독실에서 편히 지내서인지 연주의 병은 날마다 차도가 보였다. 얼굴에 혈색이 돌고 스스로 치장을 할 수 있고부터는 몸에 귀티마저 풍겼다.
외모뿐이 아니었다. 더듬거리던 말이 점점 매끄러워지고 불안감이 맴돌던 눈의 초점이 안정을 찾아갔다. 마치 긴긴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연주는 모든 사물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이나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 느낌 차이에 따라 섬세함이 달라져 보였다.
연주는 동호와 성미에 대한 호칭도 어떻게 불러야 친밀하고 품위가 있을지 고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성미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동호한테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지 않았다.
'연재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소설[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9회) (0) | 2023.09.13 |
---|---|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8회) (0) | 2023.09.05 |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6회) (1) | 2023.08.22 |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5회) (0) | 2023.08.08 |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4회) (0) | 202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