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육시헐놈 땜에 재수 옴붙었당게
“이 낮도깨비 같은 놈아, 죽어서두 불구덩이로 빠질 노릇이지 아무리 돈에 환장혔기로서니 총을 쐈다고 그짓말을 혀? 아무리 빨갱이라 혀두 한 핏줄인디 그러큼 목을 옭아매 쓰겄냐 그 말여.”
“이놈이 맘 한 번 착허게 쓰네. 그래 배곯아 죽는 게 낫냐 보상금 타 먹는 게 낫냐?”
“허면, 배곯는다고 사람을 죽여도 쓰는 벱여?”
“이놈아, 총은 안 쐈다 혀두 먹다 남긴 밥을 부뚜막에 놔둔 건 사실 아녀?”
“그것보담은 총을 안 쏜 게 더 중허잖여?”
“하여튼 우리 싸워서 피차 이득 볼 게 뭐겄나. 이참에 자넬 푸대접헌 건 내 잘못이다 치고 먼저 사과함세. 그저 가난이 죌세.”
갑자기 방안이 조용해졌다. 송두문의 사과 발언에 황억배의 부아가 금방 수그러진 모양이었다. 덩달아 마음이 가라앉은 동호는 이번에는 거적으로 만든 부엌문에 허심한 시선을 던졌다. 손때 묻은 거적문의 궁상기가 눈물겨웠다. 하필 왜 우리 밥을 훔쳐먹으러 이 가난한 부엌을 찾아왔소, 하고 투정부리는 듯한 거적문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도저히 연행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동호는 그냥 발길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막 사립문 쪽으로 걸어가려던 참인데 방에서 또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활달한 목소리였다.
“그러구저러구 참 이상헌 일이구먼. 작대기에 설맞고서두 지 손으루 권총을 뽑아줬응게 말여. 증말이지 총뿌리를 이쪽으로 대는디 영락읎이 죽는 줄만 알었당게. 그런디 말여, 두 숨 세 숨이 돼도 총이 불을 안 뿜더란 말여.”
“난 아예 눈을 딱 감아버렸구먼. 인자 죽었구나 혔응게.”
“말도 말어. 거기 있어도 죽을 거구 도망쳐도 죽을 거구 참말로 환장허겄더라구. 우리가 따로따로 쳐야 허는디 한꺼번에 달겨드는 바람에 작대기가 엉킨 거여. 그렁게 등짝으로 빗나간 거라구. 그 작자 목쟁이를 쳐야 되는디 작대기끼리 부딪쳤응게 환장헐 노릇 아녀? 원참.”
“그런디 말여, 그 작자가 워째서 총을 우리헌티 줬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여. 자네는 생각혀 본 적 읎어? 왜 그렸는지?”
“낸들 알것남. 귀신헌티 홀렸응게 그렸지 워째 그렸을 거여.”
“그려두 자네는 엔간히 빠르드먼. 그 작자가 나헌티 총을 중게 눈 꿈쩍헐 새에 칼을 뽑았잖여? 워뜨게 그 난중에 그런 생각을 혔댜?”
“이래뵈도 나 휴전선서 철조망 지킨 사람여. 여하튼 귀신 덕을 봉건지 조상 덕을 봉건지 모르겄구먼.”
“워쨋든 몇 푼 타기는 탈 것 같은디, 그 여우처럼 생겨먹은 강 형사 그놈 땜에 일이 들통날까봐 걱정이 태산이구먼. 그놈 눈치가 여우보담 더 빠르단 말여.”
“그놈이 우리허구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 지랄이랴.”
“혹여 그놈 빨갱이 아녀?”
“맞어, 틀림읎구먼. 빨갱잉 게 공비를 역성들지 워쩌자구 그 지랄루 감쌀 거여. 참 그 육시헐놈 땜에 재수 옴붙었구먼.”
“혹여 그놈이 우리가 보상금 타는 걸 배지아파서 그러능 거 아녀?”
“설마 그건 아닐테구, 워찌 보믄 그놈이 양심 바른 놈인지두 몰러. 여하튼 서울서 높은 사람이 온다고 혔씅게 푼돈은 아닐 거구먼.”
“비러먹을, 돈이나 왕창 타가지구 떼부자나 됐으면 좋겄는디.”
“여하튼 술이나 마시자구.”
또 쇠젓가락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웃음소리가 겹쳤다. 동호는 조용히 마당을 빠져나갔다. 사립문 밖에서 다시 한 번 거적문을 훑어보고 나서 발을 재게 떼놓았다. 당산 자락을 돌아나오니 저만치 방파제 쪽에 세워진 지프차 보닛이 푸들푸들 마른 잎새 같은 햇살을 흩날리고 있었다.
동호는 지프차를 몰면서 그들이 포상금을 타도록 묵인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뻔히 내막을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는 그 관용이 한갓 객기가 아닐는지. 물론 그런 관용은 당국의 반공교육에 대한 의도가 합리화시키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바로 사흘 전이었다. 과장이 동호를 은밀히 불러 타이르듯 말했다.
“깊이 캐지는 말게. 위에서는 자수든 체포든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포상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네. 일반에게 반공의식과 신고의무를 고취시키는 데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거겠지. 내 말뜻을 알겠나? 그래서 장관급 고위층이 내려와 직접 포상할 것 같다는 거야.”
“그럼 배승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상 참작이 되겠지. 사실 그 문제는 법조문과 상관없는 일 아닌가. 김신조를 어떻게 처우하고 있는지를 알면 뻔하잖아.”
과장은 그 말을 하는 동안 미소 띤 얼굴로 동호의 어깨를 툭툭쳤다. 동호는 법과 상관없다는 말에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 비의(秘意)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세상이 온통 꼭두각시가 춤추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전쟁이 그렇고, 반공이 그렇고, 자신의 정의감이 그러했다. 동호는 자신의 판단이 자기 것 같지가 않았다.
배승태에 대한 언도공판이 있던 날 동호는 공판정에 참석하지 않았다. 뻔한 판결이 나올 것이었다. 일 년 징역이든 십년 징역이든 의미 없는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사형이 떨어진다 해도 집행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배승태 역시 그런 판결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배승태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감방을 찾아간 동호에게 그는 희죽희죽 웃기까지 했다.
도대체 배승태의 진심은 무엇일까? 기분이 어색해진 동호는 배승태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철책 멀리에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와 마지막 보내는 밤이어서 차마 떠날 수는 없었다. 날이 새면 배승태는 다른 교도소로 이송될 처지였다. 동호는 천천히 철창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옆 감방에서 “히히힛!” 하고 쌩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동호는 그 쪽으로 눈을 주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아직 감방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켁켁 헛기침하는 사람, 가슴팍의 마른 때를 문지르는 사람, 맹숭맹숭한 눈알을 굴리며 손짭신하는 사람, 미친 듯 혼자 시부렁거리는 사람....
“그느므 걸 쌍퉁 잘라버링게 속이 시원허등감?”
“하모 시원하제. 히힛!
“그러믄 느이 껀 워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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