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23회)

충남시대 2023. 7. 25. 10:25
마지막 헤어졌던 밤 기억하나?

 

 

  “지년 사타쿠이도 이까 낚시카 버억 긁을라타.....”
  “사내 꺼는 쌍뚱 자르구 즈이 거는 그냥 놔둬? 즈이 계집이 딴 사내허구 포개지능 거 생각만 혀두 쓸개가 녹을 틴디?”
  “우짜겠노. 새끼 따머 참아야제.”
  “으이구, 아무리 새끼가 중혀두 바람핀 여편넬 그냥 놔둬? 여이 멍텅구리 같으니라구.”
  “멍텅구리사 진짜 늬 아이가?”
  이번에는 잰 목소리가 느려터진 목소리를 되받아 넘겼다.
  “그건 또 뭔 소리여?”
  “늬가 진짜 병신이다 그 말이더.”
  “워째서?”
  “노름을 할라 카모 기술이 있어야제 개뿔도 오기만 가지고 돈 딸 성부르나? 그라고 돈을 날렸으모 깨끄이 손 털 일이제 머 한다고 칼부림 했노?”
  “허긴 그려. 허지만 눈깔이 홱 뒤집히는디 워쩔 거여. 그 얌생이 같은 놈이 살살 긁어대는 바람에 꾐에 빠졌응게 얼매나 괘씸혀야지. 그러구 그놈이 더 괘씸헌 건 쪼이로 허면 옛날에 자주 혀봤응게 별로 안 잃었을 틴디 그 육시헐 놈이 해필 도리지꾸땡으로 허자구 혀서 소 판 돈을 몽땅 날렸잖여?”
  느려터진 목소리를 끝으로 그들의 소음은 금세 숨을 죽였다. 간수의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 소리마냥 소음이 싹 가셔버리자 죄수들은 몸을 뭉그적거리며 땟국이 희번드르한 마룻바닥에 드러누웠다. 어수선하던 감방에 다시 정적이 고였다. 
  “재밌습네가?”
  배승태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동호는 자기가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깨달았다. 민망해진 동호는 웃음을 띤 채 배승태의 말을 받아주었다.
  “공비도 그런 말이 재밌소?”
  “공비도 사람이디.”
  그가 처음 동호에게 말을 놓았다. 친밀감의 표시였다. 이제 언도공판도 끝났으니 더 신경 쓸 일이 없는 데다 이송되기 전에 우정이나 맺어두자는 의도 같았다. 동호 역시 새삼 그와 헤어진다는 생각이 들자 외로움 같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배승태가 사라지면 유지창에 찾아올 일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주게. 그동안 나를 어떤 인간으로 봤는가?”
  동호는 농담처럼 가볍게 말을 던졌다.
  “이상해 보였디. 멍청한 바보 같더랬어.”
  “고맙군.”
  “바보를 고맙네?”
  “자네보다야 낫다는 소리잖아?”
  “머이?”
  “자네는 꼭두각시니까.”
  “기거이 먼 소리네? 날 욕하는 게가?”
  금방 배승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네한테 한번쯤 욕을 해도 되잖아?”
  “머이?”
  “자네는 내 적이니까 말야.”
  “기래? 기렇다면 더 쎈 욕을 하라메. 날 총으로 쏘든가.”
  “정말 총으로 쐈으면 좋겠네.”
  “강 형사는 날 못 쏠 거라메. 내레 기걸 잘 알디. 기래서 강 형사는 바본 게야. 바보니께니 더 두려운 게구.”
  “바보여서 두렵다?”
  “기래. 네놈 같은 바본 정말 싫디. 네놈은 마약인 게야.”
  “마약이라.....”
  “지독한 마약이디. 늬놈 땜에 내레 맹추됐잖네.” 
  배승태는 입을 다물고 불빛이 뿌연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동호가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자 두 손으로 덥석 손을 잡아주고 나서 홱 돌아앉았다. 작별의 아쉬움을 배승태는 그런 식으로 짐짓 삭이는 중이었다. 그게 이별의 정표였다. 동호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기억하나?”
  동호가 술잔을 들다말고 배승태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멀 말이네?”
  “우리가 마지막 헤어졌던 밤 말야.” 
  “기억하고 말고디. 나도 방금 기때를 생각했어.”
  파도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왔다. 동호는 앉은 채 창문을 열고 캄캄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통통통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더니 어선 한 척이 뒷섬을 스치며 지나갔다. 옛날에는 돛단배가 많았는데 이제는 어선도 모두 동력선이었다. 동호는 옛날의 뒷섬을 떠올려보았다. 지금은 그 바위섬이 모래톱과 연결이 돼 있지만 그때는 물 가운데에 잠긴 외딴 섬이었다. 그 바위에는 가끔 물개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동호는 한가한 시간이면 바위 꼭대기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물에 잠긴 바위틈에서 해삼이나 멍게를 잡기도 했다.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이어서 서울 해수욕객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그 아름다운 해변에는 늘 파도소리만 괴괴했었다.
  “여기서 지낼 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어.”
  동호의 말에 배승태의 얼굴이 환히 열렸다.
  “그보라우. 자네도 기때가 좋댔디? 기러니께니 여게 사는 나를 생각해보라우. 내레 사는 거이 머갔어. 추억 하나밖에 더 있갔어? 렛날 사생결단으로 대든 곳이 여게가 아니갔어? 깜깜한 절벽을 타고 오를 때나 송장 메나르는 상여틀 밑에 눴을 때 먼 생각을 했는디 알간? 조국통일이었디. 내 가족이 한아름 품고 살 통일 말이네.”
  “가족이 한아름 품다니?”
  “무식하긴. 자넨 통일이 메라구 생각하네?”
  “.....”
  “꽃다발 아니갔어?”
  “.....” 
  “잘 생각해보라메. 암튼 기래서 상여터하구 움막터가 떠오른 게야. 맨날 여게 와개디구 살다시피했디. 기때 연주를 만났더랬어. 횟집에서 일하고 있더랬는데 아주 곱고 착했디. 한눈에 반했어야.”
  갑자기 배승태의 목소리가 떨렸다. 동호가 얼른 술을 따라주자 단숨에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당장 움막터를 사서 포구횟집을 지었더랬어. 길코 나중에 상여집을 옮겨주고 거게다 창고를 지었디.”
  “연주와 함께 살고 싶어서?”
  “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