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영감이 엄니를 업고갔어유
1957. 12. 29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토막이 가슴을 저몄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어느 달 밝은 겨울밤이었다. 이슥할 무렵인데 눈이 하얗게 쌓인 앞산길에서 음습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섬기가 느껴진 나는 그 사위스런 울음소리가 애장귀신(어린이 귀신) 소리라며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예끼, 저건 애장귀신 소리가 아니고 사람 소리야.”
아버지는 나를 사내답지 못하다고 신칙하면서 밖으로 나가셨다. 달빛이 뿌연 들판 쪽으로 걸어가는 아버지가 애장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흑토뫼 너머 산자락에는 애장이 있었다. 여우가 송장을 파먹지 못하도록 돌로 봉곳이 쌓은 애기 무덤이었다. 달빛이 푸른 밤이면 그 애장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아버지는 애장귀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늘에 박힌 별을 바라보았다.
“거기 우는 게 누구냐?”
들 건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놓였다. 애장귀신한테 홀리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음소리도 금방 그쳤다. 한참 만에 집 앞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가 어린 소녀를 업고 사립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씻기고 밥 차려줘.”
사랑방에 짐짝처럼 부려진 소녀는 때 묻은 보따리를 잔뜩 끌어안고 한 손으로 뒤틀린 왼쪽 다리를 주물렀다. 다리뿐 아니라 눈도 앞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소녀를 부엌으로 데려가 이가 득실거리는 누더기를 벗기고 더운물로 씻긴 다음 누나 옷을 갈아입혔다. 그제야 사람 꼴이 되었다.
“소아마비래유.”
소녀가 불쑥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아버지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린것이, 성치도 않은 다리로, 이 추운 밤중에,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엄니를 찾을라구유.”
소녀는 또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어쩌다 엄니와 헤어졌는데?”
“그동안 엄니랑 함께 구걸했는디 미친 영감이 엄니를 업고갔다는 거유.”
“왜?”
“같이 살자구유. 그전부터 그런 말을 했대유. 엄니 말이.”
“쯔쯔쯔....”
아버지는 혀를 찼다. 소녀가 자기 이름을 밝힌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제 이름은 기녀유.”
“이름이 없다면서 기녀라니?”
“엄니를 업고간 영감탱이가 지어준 이름이라 미워서 써먹지 않었걸랑유.”
아버지는 눈먼 거지 소녀에게 옷과 먹을 것을 꾸려주며 닭소리 개소리 나는 데를 찾아다니라고 이르셨다.
1958. 1. 1
오늘은 양력설이지만 서울 관가에서나 양력설을 챙길 뿐 시골에서는 평일과 다름없다.
저녁에 민주가 혜연을 데려왔다. 밤이 늦어 다른 처녀들은 잠을 자는데 혜연과 민주와 나만 말똥말똥 앉아 있었다. 혜연은 가난한 나를 위로해주었다. 새벽녘에야 민주와 함께 월명산 고개까지 혜연을 바래다주었다. 민주는 왜 혜연을 데려왔을까?
1958. 1. 6
밤에는 민주 동생과 초가집 처마에 그물을 치고 처마를 들썩여 새를 잡았다.
불효막심한 양자 간 아들에게 온 재산을 날린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홍산으로 이사할 수 없어 새뜸에 있는 외딴 조카네 초가집으로 이사했다. 본채에 붙여 창고용으로 달아낸 단칸방인데 두 평 남짓한 부엌이 딸려 있었다. 흙바닥 부엌에는 아궁이가 있고 그 옆에는 아버지가 산에서 거둬온 땔감나무가 쌓여 있었다. 서까래가 보이는 단칸방에서 셋방살이 하시는 부모님이 불쌍하다.
1958. 4. 15
수업이 끝나자 친구들에게 끌려 마포에 있는 박태선장노교회에 가봤다. 모두 미친 듯 찬송가를 부른다. 덕소 천령사(신앙촌)로 들어가자고 야단들이다.
동아일보에 연재중인 해묵은 연재물을 읽어보았다.
하늘에는 인공위성(미국, 소련), 지상에는 점쟁이(한국) -동아일보 공기총
1958. 5. 11
서울에 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남산공원에 올라 이승만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동화백화점을 거쳐 남대문시장에서 1500환에 치맛감을 사드리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누나에게 혼사가 생겼다. 신랑감은 농부인데 부잣집이라고 했다.
1958. 7. 16
이번 여름방학에는 한국학생총연합회(대표 백기완: 훗날 백범사상연구소장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고문을 역임)가 주최하는 지리산 농촌계몽운동에 참가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으로는 나 한 사람뿐이다.
1958. 8. 12
인솔자 백기완이 교통부와 의논해서 열차 1칸을 통째로 빌려 대원들이 탔다. 도착지는 섬진강가에 있는 구례군 점미 부락이었다. 주로 하는 작업은 고샅길 다듬기와 화장실 개선, 그리고 교육이었다. 산에는 뼈대만 남은 소나무가 많은데 공비토벌작전으로 타버린 나무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 소나무를 도화지에 그렸다. 땀 흘린 몸으로 섬진강에 뛰어드는 재미가 피로를 풀어주었다.
1958. 10. 25
토마스 하디의『테스』하권을 읽었다. “왜 우리는 벌레먹은 사과를 택했나.”
점심시간이면 여고생들이 잔디밭에 앉아『테스』를 읽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여고생 깡패인 ‘후라빠’들도 가방에『테스』를 끼고 다니며 읽은 척했는데 그처럼 유식한 척해야 남학생들과 어울려 빵집에 갈 수 있었다.
내 나이 70대에 접어든 요즘 잔아박물관에 단체로 관람 오는 여성들에게 후라빠 이야기를 하면 나이든 할머니들이 무척 좋아했다.
“오래간만에 후라빠 소리를 들으니 신나네요. 맞아요. 후라빠들도 유식한 척하려고 가방에『테스』를 끼고 다녔어요. 남학생들과 어울려 빵집에 가려면 읽은 척해야죠. 그땐 여고 깡패들도 낭만이 있었죠.”
1958. 10. 26
메리메의『카르멘』을 읽었다.
나는 15분 늦게 남산교회에 도착했다. 용산고 2, 경기고 2, 서울고 2, 경복고 2명이 모였다. 서울고 광진의 토인비 사상, 서울고 영구의『인간접목』, 경기고 계명의『젊은 수녀의 고백』, 경기고 학래에 이어 마지막으로 내가『테스』와 종교에 대해 20분간 설명했다. 모임이 끝나자 덕수궁에서 열리는 과학전시회도 관람하며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1958. 10. 28
우리 학급에서 제일 말이 없고 위엄을 지키는 심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성적도 우수하고 밴드부에서 갖가지 악기를 다루는 재기를 지녔다. 우리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칠판 앞에서,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우주만상의 원리설로부터 종교철학에 이르기까지 숱한 말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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