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5회)

충남시대 2023. 12. 6. 14:15

서울대 법대생들 대통령 양아들 편입항의


 “저는 젊은 시절을 노름으로 보낸 탕아였습니다. 돈을 잃을 때마다 부모님을 괴롭혔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뿐인 자식의 탄식과 애걸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시고 노름밑천을 장만해주셨습니다.”
  “화투에 손대지 않겠다고 반성한 적이 없었느냐?” 
  “노름은 제 고질병이었습니다. 화투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몸에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성냥치기로 시작했습니다.”
  “성냥치기라니?”
  “그 시절에는 생활필수품인 성냥이 무척 귀했습니다. 성냥 한 갑을 사면 한 개비라도 아껴 쓰던 시절이었죠. 저는 형뻘 되는 총각들에게 홀려 하룻밤에 ‘도리지꼬땡’으로 성냥 한두 갑을 날리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성냥 대신 돈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한테 꾸지람을 듣지 않았느냐?”
  “어릴 적에는 종아리도 무수히 맞았고, 아버지가 작대기를 휘두르시면 뒷산 골짜기로 도망치기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부모님께 대들 정도로 포악해졌습니다.”
  “그런 놈이 언제 속을 차려서 재산을 모았는고?”
  “아버지가 품을 파시고 어머니가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보시게 되자 제가 환장하게 되었지요. 제 창자가 뒤집혔다는 말씀이죠.”
  “속을 차렸다? 제법이군. 그래서 네놈을 내 곁에 둔 것이니라.”
  “대왕님께 거듭 애소하옵니다. 저 같은 불효막심한 짐승을 당장 지옥으로 던져주십시오. 지옥불에 자글자글 타죽도록 선처해주십시오!”
  염라대왕은 지옥분과회장에게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지옥분과회장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왕전하, 저도 지옥을 면해줄 자격이 있사오나 엄중히 말씀드리면 천당분과회장의 소관이옵니다.”
  염라대왕은 천당분과회장에게 견해를 물었다. 
  “제 견해는 이러하옵니다. 아무리 구원책을 강구해봐도 지옥은 면할 수 있을망정 천당행은 불가하옵니다.”
  “내가 선처하겠다면 어찌하겠는가?”
  “절대 아니 되옵니다. 수십만 년 이어온 윤리규범을 한순간에 고칠 순 없사옵니다. 대왕전하, 감히 대왕님 의중을 거역한 저를 엄벌해주시옵소서!”
 “아닐세. 내 생각이 짧았네. 천당분과회장의 그 대쪽 같은 심지가 저승세계의 위의를 영원히 빛낼 거요.” 
  염라대왕의 말씀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승죄업심사원장이 나섰다.
  “대왕전하, 천당분과회장의 심지가 가상하오나 재심을 거쳐 잔아의 선처 방안을 모색한다면 구제가 가능할 수도 있아옵니다.”
  옥좌에 앉아 심사원장의 진언을 귀담아듣던 염라대왕은 자상한 목소리로 하명했다.
  “잔아의 심성이 가상하니 심사원장은 재심을 청구토록 하오.”


1957. 4. 6

  용산고 입학식 날이다. 검은 교복과 백색 줄이 두 줄로 띠 두른 정모를 쓰고 식장에 참석했다.


1957. 4. 18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이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인 이강석의 편입학에 반대하여 동맹휴학을 결의했다. 시국이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다. 

  경무대(청와대)를 단체 관람했다. 
  집에 돌아오니 매부가 술에 취해 또 누나에게 손찌검을 한다. 이런 데서 어떻게 공부할지 걱정이다. 공부방도 없고 마루 복도에서 공부하니 정신이 모아질 리 없다. 하나님, 제발 공부할 공간을 마련해주소서!

  밤에는 옆방에 세 들어 사는 두 이화여대생이 나를 극장에 데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감상했다. 그 누나들 덕에 종종 극장구경을 하는 셈이다.

1957. 6. 15

  학급 대표로 시조를 붓으로 습자지에 두 장 썼는데 선생님이 칭찬하시며 교실 벽에 붙였다. 

  학교에 가면 행복하다. 계단을 올라 2층 1학년 H반 교실로 들어가면 우선 학우들과 악수하며 아침인사하고 잡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어, 국어, 수학 시간이면 손들고 질문하기 으뜸. 별난 질문을 던져 선생님을 웃기면 학우들이 “잔아가 최고야!” 하며 갈채를 보내준다. 초등학교 때도 그런 짓을 해서 담임선생한테 매를 맞기까지 했는데 나는 짓궂은 놈인가 보다.
  수업을 마치고 1시간 반 동안 당수(태권도)를 수련한 후 수돗물에 목욕하고 수도여고 앞을 의기양양하게 걸어 전차를 타러간다. 하지만 내가 갈 곳은 또 지옥.  
  신이시여! 제게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를 놓을 자리를 마련해주옵소서!


1957. 7. 21
 
  교복차림으로 장항선에 올랐다.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학생들로 객실이 화사하다. 여고생들의 하얀 교복에서 해감내가 설핏하다. 처갓집 학교로 불리는 이웃 수도여고생도 눈에 띄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어울렸지만 나는 중절모를 쓴 아저씨들 자리에 앉았다. 잘난 체하고 싶었다. 
  “깊은 사유를 훼방하는 데는 대포소리가 필요 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아세요?”
  “말해 보렴. 누군지.”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이 그의 저서『팡세』에 쓴 말이거든요.”
  “그럼 너 사상이 뭔지 아니?”
  “잘 몰라요.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지만,”
  “잘 모르면서 사상이란 말을 함부로 해?”
  “그래서 저를 개똥철학자라고 불러요.” 
  “하긴 개똥철학자가 나중에 진짜철학자가 되는 법이지.” 

  서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산을 경유하여 마산에 도착하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십 리 길을 걸어 흑토뫼 모퉁이를 돌자마자 또 누나가 달려왔다. 
  “혜연이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왔어. 영학이 말에 혜연이가 너를 보고 싶어한데. 저녁에는 누나 친구들이 떡을 해준다고 야단이야.” 


1957. 7. 24
  
  해질녘에 혜연이 찾아오자 누나는 새뜸 친구들을 불러내 모두 오덕사로 놀러갔다. 대웅전에 도착한 일행은 함께 절을 하고 혜연과 나는 몰래 우물 쪽으로 숨었다. 우물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다. 함께 세수하고 나서 혜연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혜연은 그걸 받아 자기 얼굴을 닦았다.
  스티븐슨 작품『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생각났다. 민주와는 몸을 섞으면서 혜연과는 손도 잡지 않은 내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자 같다.


1957. 8. 14

  밤 9시 30분 경. 혜연이 약속대로 가정부를 데리고 영학이네 집으로 내려왔다. 초등학교 동창인 영학이네 집은 혜연과 만나는 아지트인 셈이었다. 우리는 넷이 봉선지로 뱃놀이를 나갔다. 희끄무레한 달빛에 드러난 혜연의 얼굴이 안개 속에 핀 국화 같았다. 헤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노를 젓던 영학이 짓궂게 배를 흔들었다. 자연히 혜연과 몸을 껴안게 되었다. 서로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뱃놀이는 자정 무렵에야 끝났다. 헤어질 때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란 말을 꺼내자 혜연이 이런 말을 했다. “남자는 처음에만 그래요.”
  집에 와서 마음을 달래려고『노산문선』을 읽었다. 


1957. 8. 16

  민주가 멀고 먼 규암 뱃터까지 배웅해주었다. 내가 나룻배에 오르자 민주가 지폐 몇 잎을 쥐어주고 손을 흔들었다. 모시 길쌈으로 장만한 돈일 성싶었다. 민주는 나룻배가 부여 쪽 나루터에 닿을 동안 서 있다가 내가 나루터에 대기 중이던 서울행 직행버스에 오르자 다시 손을 흔들었다.

 
1957. 10. 23

  소풍날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다. 청파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니 마음이 편해 좋았다. 전차비를 아끼려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운동장에 서 있는 8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광릉수목원으로 출발했다. 돌아올 때 여학생들을 보고 “아주머니” 하고 놀려주었다.


 1957. 12. 24

  북한 김일성 수령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님은 교통 편한 홍산으로 이사하려고 집과 농지를 다 팔았다. 그런데 그 돈을 작은댁으로 양자 간 형이 챙겨 서울로 떠났다. 부자집 작은댁에서 귀엽게 자란 탓에 철이 없는 인간이다. 그 따위를 자식이라고 돈을 모두 줘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선지국을 잡수고 싶어 면소재지에 있는 도살장까지 일하러 다니신 아버지! 9살 때부터 품팔이하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