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76회)

충남시대 2025. 7. 1. 13:23

금융실명제 「돈보따리를 들고」


  “알려야죠. 곧 대학을 졸업할 자식인데 알려 마땅하죠. 동주는 착실한 애라 돈 훔쳐낼 리도 없을 테니.”
  아내의 말에 황대구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튿날 황대구씨 부부는 돈을 옹기그릇에 담아 밀봉해 놓고 마당 구석을 파기 시작했다. 뗏장을 걷어내고 옹기를 묻은 다음 다시 덮을 참이었다. 땅은 황대구씨 혼자 파고 아내는 이웃 사람을 망보았다. 그런데 옹기가 묻힐 만한 깊이로 땅을 팠을 무렵 학교에서 동주가 돌아왔다. 마당을 파낸 부모의 수고를 보자 웃음부터 터져 나온 동주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돈을 은행에 두셔야지 땅에 묻으면 어떡해요.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맘 편히 사셔야죠.”
  “누가 그걸 몰라 이런 짓 하냐? 이십 프로도 안 남는 장사에다 외상돈 떼이기 일쑤인데 세금에 다 빼앗기고 뭔 재미로 고생해?”
  “그래도 먹고 쓸 만큼은 남겨두겠죠. 정부가 뭐예요? 국민을 보호하는 기관이잖아요?”
  “너 참 똑똑하다. 네가 대학생이라고 입바른 소릴 하는 모양인데 세금 내라는 대로 다 내고 장사해먹을 작자 뉘 있겠니? 장사란 게 너희들 산술처럼 딱딱 아귀가 맞는 줄 아니? 계산은 남지만 손에 안 쥐어지는 게 장사여. 너 그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어떻게 사회에 나갈 참여?”
  황대구씨는 점잖게 아들을 꾸짖었다. 동주는 아버지의 말이 이치에 맞는 것도 같고 틀리는 것도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였다. 대문 버저소리가 울렸다. 황대구씨는 삽자루를 놓고 조심조심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리가 몹시 떨렸다. 만약 남한테 마당 파는 모습이 들통나면 돈 감추는 방법을 바꿔야 될 판이었다. 그는 대문 틈으로 바깥을 살피며 누구냐고 물었다.
  “저예요.”
  바깥 대답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경아였다. 황대구씨는 생각지도 않은 딸의 갑작스런 내방에 몹시 당황했다.
  “뭘 하시던 중에요?”
  마당에 들어선 경아는 아버지의 당황하는 모습과 흙더미 옆에 멀쭉이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 앞으로 다가간 경아는 동생의 인사도 무시한 채 먼저 옹기부터 살폈다. 뚜껑 속 아가리를 비닐로 틀어막은 옹기 모습을 보자 경아는 어이가 없었다.
  “오오라. 이제 알겠네. 돈을 묻으시려는 거죠? 집집마다 난리라던데 이 집도 예외는 아니군요.”
  “그 수밖에 더 있냐?”
  어머니가 대꾸해 주었다.
  “그런데 참 이상해요. 돈 없는 집들이 더 야단이라니까. 수백억을 지니신 시아버님은 그저 태평히 웃고만 계신데.....”
  “네가 그 집에 수백억 있는 걸 어떻게 알아?”
  황대구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엇보다 친정을 이 집이라고 하대하고 시집을 우리 집이라고 정답게 부르는 딸년의 말투가 아니꼬웠다.
  “제 몫으로 감춘 돈만 해도 몇십 억인데요?”
  “그럼 그 돈을 어디다 숨겼냐?”
  “그건 못 가르쳐드려요. 우리 아버님 말씀에 목숨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남한테 말하지 말랬어요.”
  “내가 남이냐? 나는 네 진짜 애비여. 그러니 우리도 감쪽같이 숨기는 법을 알아야 되잖여?”
  “이 집 돈은 푼돈이니까 마당에 묻어도 괜찮을 거예요.”
  “뭣이 어째? 요년!”
  찰싹! 경아의 뺨에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돋았다. 그런데 딸의 뺨을 때린 손이 공교롭게도 아내의 손이란 데에 황대구씨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한참 만에야 그는 다시 삽을 들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1993. 8. 15

  독립기념관에서 8·15 기념식 거행.

  작품을 무리하게 쓰다 보니 눈에 다래끼가 나다. 눈을 보호해야겠다.

  아내가 목요일에만 공부하러 진로문화센터(황금찬 시班)에 나가더니 화요일에 황금찬의 특별교습을 5명이 받는다고 가는 바람에 나는 혼자 밥을 차려먹었지만 야단이다. 

1993. 8. 17

  집필하는 방에 나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마치 밭둑이나 벌판인 양 그놈들은 내 방에서 활개치고 있다. 개미도 들어오고 나방이도 들어오고 심지어 청개구리까지 들어온다. 나도 그들과 한패인가 보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허무주의에서 생긴다.
                                              - 잔아

1993. 8. 20

  승가사 우성(종남) 스님한테서 서후리로 책과 테이프가 보내졌다는데 테이프는 없고 책 3권만 도착했다. 불교에 대한 서적이었다.
  마침 이경철 기자와 박라연 시인이 와 있었다. 이 기자는 집 앞 시냇물에서 나와 함께 피라미를 잡고 있었다. 체에다 모기장을 씌운 통발이인 셈이었다. 박 시인은 아내와 방에서 아내의 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1993. 8. 21

  나래가 서후리에 왔다. 그놈은 내가 편안히 안아주니까 잘 안긴다. 낮잠에서 깨어난 그놈의 귀여운 눈동자. 그 눈동자 속에서 매미소리와 산새소리가 난다. 나와 손녀딸은 지금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요체는 제재와 유인의 균형을 이루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8.23 중앙일보 사설

1993. 8. 26

  오랜만에 안옥희를 문병했다. 영동세브란스에 가기 전에 그녀의 동생 순해에게 전화를 걸어 순해의 소라아파트에서 이야기를 나무다 함께 갔다. 나는 순해에게, 언니는 큰걸 노렸다. 그래서 갈등이 컸고 그 갈등요소가 질병이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신앙마저도 양에 덜 찰 거라고 말했다.
  병원 8층 55호실.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순해를 먼저 들여보내 놓고 꽃을 사러 병원 밖으로 나갔으나 못 사고 음료수 바구니만 사들고 와서 병실에 들어갔다. 옥희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반항이면서도 기쁨인 줄 알았다. 암 판정을 받고 반년이 넘어 처음 찾아간 문병. 솔직히 나는 그녀의 병세에 대해 그닥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붉은 열꽃이 총총히 박힌 그녀의 메마른 몰골을 보는 순간, 더구나 뼈만 앙상한 팔을 보는 순간 나는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짚으며 “주여 이 여인을 낫게 해 주소서!” 하고 속으로 소리쳤던 것이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옥희는 메마른 팔을 억지로 머리 쪽으로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당신에 대한 명작을 쓰겠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별것 아니다. 당신은 큰 사람이다.”
  나는 위로의 말을 해주며 발과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나는 그렇게 주무르면서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윽고 안수 목사가 어느 여자와 함께 왔다. 부부인지는 모르겠다. 옥희가 나를 그에게 소개하자 그 목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나도 함께 예배를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와 파리에서 귀국한 종대와 종배도 동참했다.
  예배 뒤에 잠시 쉬었다가 옥희는 안수를 받았다. 2분쯤 지났을까, 양 눈을 휴지로 가리고 그 위쪽 양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여자가 기도를 하자 옥희는 누운 채 팔과 다리를 요동친다. 힘이 들고 덥다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힘일 것 같았다. 종대와 순해가 나 보고도 안수를 받아보라고 한다. 그러나 나중으로 미루고 그냥 나왔다. 그런데 그 부인은 안수 기도를 끝내고 “저녁에는 더 많이 먹을 거예요.” 한다. 태연한 말이었다. 옥희는 두 달간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닝게르 3 가지 병만 목에 꼽고 누워 오줌똥도 받아내는데 오늘 아침에는 죽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몸을 쥐 트는 통증이 씻은 듯 가라앉았다고 한다. 병원 의사도 상식 밖이라고 했단다. 벌써 죽었어야 할 몸이라고 했다.
  옥희는 머리를 쓰다듬는 내게 말했다.
  “살기만 하면 할 일이 있어요.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예요. 큰일이 있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까칠한 입술을 다문다.

1993. 8. 30

  중앙일보 1장에 실을 단편을 며칠 내로 끝냈다. 요즘 시끄러운 금융실 면제에 대한 세태소설이다. 첫 번째는 윤흥길, 두 번째는 김영현, 세 번째는 이청준인데 나는 다음 주에 실린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