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꾸중을 알아듣는 개구리
1993. 7. 10
마조가 그의 제자 백장에게 근로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잡일을 시켰듯 나는 태호에게 마당 풀 뽑는 일, 비로 쓰는 일, 정리정돈 따위를 시켜왔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태호에게 춘천옥 지하실을 맡겼더니 당구장을 꾸민다며 야단이지만 일손이 서툴러 걱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임제를 변화시킨 광승(狂僧) 보화의 말이 가슴을 친다. 보화는 임제에게 진심으로 죽여야 될 것은 깨우쳤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 것이다.
1993. 7. 11
장편 도깨비촌 습격 사건의 도벌단속 부분을 쓰다가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아내는 계속 티브이만 보고 있다. 티브이 전원을 끄고 워드에 찍은 원고의 대화 부분을 읽어주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서후리 집은 이제 본가가 되었다.
1993. 7. 13
유라 친구들이 찾아왔다. 회사에 다니는 영은, 대학원에 다니는 신애, 옥경이다. 나는 그 애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애들은 내 수염이 멋있다고 한다.
며칠 전 일이다. 서울에서 이발을 하고 서초동 집에 들렀는데 며느리가 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이발하시니까 아버님이 귀여워요.”라고 말한다. 철없는 며느리가 귀엽다. 아내는 며느리가 시어미한테도 “아버님 이발하시니까 예뻐요. 꼭 영화배우 같아요.”라고 말했다며 웃는다.
나래를 예뻐하느라 집필 시간을 많이 축낸다. 하지만 그 손해가 좋다.
1993. 7. 16
온종일 집필만 하니 체중이 떨어진다. 밤에는 추울 정도다. 한여름에 추위가 느껴지는 동녘골이 좋다. 오늘은 인부 2명을 불러 야채밭 풀을 뽑고 들깨를 심었다. 고추, 가지, 도마토가 가지에 주렁주얼 매달렸다. 상추와 쑥갓도 무성하다.
창문에 모기장을 쳤는데도 온갖 잡것이 날아든다. 하루살이, 나방이, 무당벌레가 날짜에 따라 나타난다. 낮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나비가 날아와 집필하고 있는 노트북 키보드 위에 앉기도 한다. 동녘골을 향한 큰 창은 골짜기 전망을 환히 보기 위해 모기장도 치지 않았다.
박라연이 원광대 무용교수인 남편을 시켜 아내 수니에게 필요한 시집을 여러 권 보내왔다. 또 그걸 확인하려고 전화까지 걸었다. 그녀는 전화에서 자기를 아껴주는 김주연 교수가 고맙다고 한다.
1993. 7. 20
집필을 하고 있는데 바로 문턱 너머에서 개구리가 꽥꽥대는 바람에 시끄러워 “이놈아 조용해!” 하고 소리쳤더니 개구리가 알아듣고 입을 다문다.
1993. 7. 24
유라를 따라다니는 공군 전투기(F5) 조종사가 태호네를 거쳐 서후리에 찾아왔다. 빨간마후라를 사위로 둘지도 모른다. 결혼을 미루고 훌륭한 예술인이 되기를 바랐는데, 미국 유학 입학허가서까지 받았잖은가. 정 대위의 인물과 품위가 마음에 든다. 유라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남자는 중앙대 대학원을 나왔고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어머니가 교사를 지냈다지만 본인이 좀 튼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에 차지 않는다.
1993. 7. 26
장마가 끝난 동녘골의 햇살이 싱그럽다. 내가 이처럼 좋아하는데 아내는 미치겠다며 밖에 나가 소리를 치겠다며 방을 나간다. 하지만 고함 대신 호미를 들고 야채밭을 매고 있다.
1993. 7. 29
오후 한 시 반에 김포를 이륙한 중국 MU항공은 두 시간 만에 상해에 도착했다. 중국은 세 번째 여행이다. 첫 번은 백두산, 두 번째는 돈황과 란주, 세 번째인 이번에는 남부지역으로 계림, 황산, 제남 쪽이다.
상해에서 임시정부 청사와 노신공원을 둘러보고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에 열차 편으로 소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달이 보였다.
중국 五大 호수가 있는 물의 고장 소주에 도착하여 소주반점에서 짐을 풀고 거리에 나가 노점에서 튀긴 닭똥집으로 술을 마셨다.
중국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솟은 빌딩과 호화로운 간판들. 물결을 이룬 자동차 행렬이 두려움마저 느껴지게 한다. 그 두려움이란 바로 13억 인구와 경제발전이 어우러질 가공할 국력이다. 몇 십 년 내로 미국을 능가할지 모르는데 그때의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을 띌는지.
1993. 7. 30
두 번째 와보는 소주 관광에 나섰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소주는 오나라의 수도였으며 인구는 88만 명에 한산사(寒山寺), 졸정원(拙政園), 호구탑(虎丘塔)이 유명하다. 한산사는 한산거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졸정원은 400년 전 명나라 때 왕헌신과 그의 친구인 화가 문징명이 지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길이 구불구불한 것은 곧장 걷는 귀신이 못 오게 하려고. 특히 장위나무는 400년 전 당시에 심은 나무로 줄기 굵기가 팔뚝만 한데 흰 담벽 위에 검은 기와를 얹은 건 행복을 의미하고 용마루 끝이 하늘로 솟은 건 죽어 천국에 간다는 상징이라고.
虎丘塔은 吳나라 합려왕이 지은 것으로 7층 8각 탑이며 높이는 47M인데 특히 유명한 것은 돼지 피와 찹쌀과 흙을 섞어 만든 것으로 1000년 전에 창건되었으며 400년 전부터 30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정원 내 구름다리의 두 구멍은 부인 서시가 거울 용으로 내려다본 구멍이라 한다. 나는 그곳에서 비가 오는 데도 가마를 탔다.
1993. 7. 31
항주에서 밤을 지새웠다. 항주는 두 번째 와보는 곳이다. 항주는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1089년부터 2년 간 지사로 재임하던 중 2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축조한 2KM의 長堤가 유명하다. 白堤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이름을 땄다 한다. 일행은 아침에 호텔을 출발하여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이상 서호를 유람한 후 岳飛廟에 갔다. 악비는 문무를 겸비한 송의 장군으로(1103-1142) 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적 영웅이다. 그의 묘 앞에는 철책 안에 양손이 뒤로 묶인 奸賊 4명의 모습이 있는데 침이 묻어 있었다. 민족적 영웅을 음해하여 죽게한 秦檜와 그의 처 王씨, 張俊과 그 외 한 사람에게 국내 관광객들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았기 때문이다. 침을 뱉지 말라고 쓰여 있어도 간적에 대한 중국인의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 짓을 어떻게 평가해야 될지. 사회주의 국민의 경직되고 편협된 단면을 엿볼 수 있어 기분이 찝찝하다. 악비묘의 글이 이색적이다. 관세음보살이 물고기를 밟고 있는데 물고기는 시끄러운 세상을 의미한다. 卾(악)은 호북성을 의미.)
다음에는 용정茶에 들러 茶를 사고 영은사로 갔다. 326년에 창건된 남송의 대사찰로 못을 사용하지 않은 녹나무로 만든 석가여래상이 유명하다. 높이는 19.6M이다. 또 72개의 환상적인 동굴과 330개가 넘는 석불 조각상이 유명하다. 특히 飛來峰 최대의 석상인 미륵좌상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 좌상은 모든 걸 다 벗어주고 창피해서 앉아 있다고 한다. 부처의 오른손 손가락은 힘의 원천이라는데 呂東洴이 아이들을 튀기다가 부처 앞에서 굴복했다는 전설이 이색적이다.
오후에는 7시간 반 동안 버스로 달려 황산에 도착했다. 들판과 험준한 산협을 엮으며 좁은 길을 달리는 기분이 피로를 씻어준다. 黃山의 桃源賓館에 짐을 풀고 모두 술집에 간 사이 나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시가지를 둘러보고 沈泥石으로 만든 차 주전자 紫砂후(주전자후)를 샀다. 호텔에 돌아와 작품을 구상했다. 또 평생 살집을 부여에 잡을지 양평에 잡을지를 생각했다.
지금 중국에서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작품이 많이 읽힌다고 한다.
1993. 8. 2
숙소에서 황산 비행장으로 떠나기 전 둔계(屯溪)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골동품을 사고 明代의 고가를 둘러보고 먹을 만드는 공장을 구경하고 도둔계를 출발하여 오는 길에 송, 명 청街에서 쇼핑했다.
황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계림에 도착했다. 계림은 계수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9월에 계수나무 꽃이 피면 향기가 근동에까지 퍼진다고 한다. 도시는 200년 전부터 형성되었다고. 밤에는 야시장을 구경했다. 길거리에 즐비한 고물상과 뱀탕과 쥐탕이 유명하다. 쥐는 한 마리에 20원. 민물고기와 뱀 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五足蛇를 끓여 파는 뱀탕집 앞 노상에서 일행과 술을 마셨다. 나는 간이 나빠 콜라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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