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자서전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4회

충남시대 2025. 6. 3. 11:43

31기 곡성이 집인 김 수경, 광주가 집인 33기 정 상경, 순천이 집인 35기 김 상경, 47기 정 일경(광주), 48기 서 일경(서천), 51기 한 일경(광주), 그리고 동기인 민 이경(청원)으로 9명이 정원인데 한 명이 결원인 상태였다. 위 기수들은 열외라 하여 공부를 하도록 하고, 근무는 47기 정 일경부터 민 이경이 상황 근무, 공용화기실 근무 등을 했다. 당일 47기 정일경이 집합시켰다. 보고자는 48기 서 일경이었는데 키가 큰 서천 출신이었다. 보고자 열외로 한 다음 ‘졸병이 온다고 해안가에 가 해삼과 멍게를 잡았는데 뱉었다’라며 가슴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고무통에서 소주 대병을 꺼내 온 민 이경이 선임이 보이지 않는 해안으로 나를 데리고 가 같이 술을 마셨다. 맞아도 참고 힘들어도 참고 무조건 참아야 군대 생활을 한다며 조언을 해준다.
“저 바다에 있는 물고기는 모두 우리 것이고, 이 섬 안에 있는 모든 것도 우리 것이니까 매일 일식 9찬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할 것. 이 간단한 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밥쟁이는 근무 잘못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얼차려가 있다. 1식 9찬에서 간장 고추장은 제외한다.”
이 엄명을 지키기 위해 초소 부근에 있는 고구마밭에 가 고구마 줄기를 뜯고, 고구마를 캐 간장에 조렸다. 밤에 근무하고 주간에는 취침이지만 초소 앞에서 어로 작업하는 어선에 가서 민 이경은 해산물을 얻어와 나를 도와줬다. 섬은 용수지역에 마을이 형성되는데 초소에 물길이 아주 멀었다. 거의 1km 정도 떨어졌는데 해안가로 걸어가 조그만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샘이 있어 그 물을 길어다 밥을 했다. 20ℓ 짜리 플라스틱 통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날라야 했다. 밤중에 차가운 물을 달라고 선임이 이야기하면 4리터짜리 노란 주전자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 차가운 물을 제공해야만 했다. 원래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나는 밤중에 찬물을 요구하면 죽을 맛이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박쥐가 날아다녔다. 양 손가락 모두 점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무더운 오후 시원한 물로 등목 해달라는 고참의 말에 4ℓ 노란 주전자를 가지고 재빨리 동굴이 있는 우물로 가 주전자의 물을 흘리며 뛰어 와 고참의 등에 물을 부어줄 때, 칼이 있으면 등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검문소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여 맘을 놓고 공부할 수 있어 모두가 선호하는 군대라는 이야기는 신기루였다. 하루 네 시간 정도의 수면, 그리고 정신적 신체적인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민 이경이 탈수증세로 밥을 먹지 못했다. 동기여서 내가 대신 근무를 서고 죽을 끓여 한 달간 먹였다. 하루는 ‘아무개 쏴 죽이고 우리도 죽을까’ 동기의 말에 그것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우릴 낳아주신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냐며 민 이경의 맘을 돌렸다.
야간 상황 근무를 설 때면 알아듣기 어려운 전라도 사투리와 음어, 약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채널이 1, 2 두 개인 커다란 무전기는 ‘찌직’ 소리가 나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백삼오, 백삼오, 당무자 누까?”
“여기 백삼오, 당무자 잉어 이순신 몽둥이 하나.”
“야, 이 새끼야, 고참 바꿔.”
무전기를 들고 뛰어가 선임에게 무전기를 전해준다. 말귀를 왜 그리 못 알아듣냐며 그날은 집합해 한바탕 가슴이며 머릴 선임에게 맡겼다.
“저요, 가는 귀먹었습니다.”
“뭐 시야? 가는 귀? 가는 귀가 뭐시당가.”
“예, 청력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야 아가야, 뭐시 청력이 안 좋다라구라. 이 새끼 벌써 요령 피워 부러야.” 
“아닙니다. 정말 청력이 안 좋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선임은 청력이 좋지 않은 대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전언통신문이 날아왔다. 섬은 유선은 없어 통신수단은 오로지 무전기를 통해서 가능했다. 특경 분대장(육군의 하사에 해당)이 없어 최고 선임인 김 수경이 초소장을 맡았는데, 특경 분대장이 온다는 것이었다. 특경은 분대장 요원으로 전경 시험 볼 때 특경을 따로 선발했다. 그들은 부사관학교에서 하사 교육을 받고 전경대에 배치되어 분대장 임무를 수행했다. 분대장 부임하는 날, 선임이 집합을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