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자서전

이상헌의 인생 이야기 아버지와 나의 삶 29회

충남시대 2025. 7. 8. 14:05

“근무 중 이상 무”
큰소리로 근무 보고를 하고 분대장은 상황판을 보면서 행정 구역상 위치, 인원, 무기 상황, 근무상황 등을 보고하였다. 소장은 대원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지나갔다. 졸병은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뭔가 부족해 보이고 허름해 보였다. 제일 졸병은 63기 곡성 옥과가 고향인 이 이경이었다.
“힘들지?”
라고 물었을 때 모두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이경의 대답은 달랐다.
“부대 막내 같은데 힘들지?”
“네, 힘듭니다.”
그 소리를 듣고 부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전 대원들은 얼굴이 하얬다. ‘계속 근무하겠음’ 이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사단장의 순시가 끝났다. 부대장은 얼굴이 붉은 채 사단장을 모시고 초소를 떠났다. 
“대원들 어떻게 교육시킨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대답을 해야지.”
소대장의 얼차려를 한 시간 정도 받았다. 소대장이 집으로 간 후 41기 김 수경이 대원을 집합시켰다. 49기 남 상경한테 질책했다. 잘 교육시키겠다는 다짐과 함께 낮 집합은 끝이 났다.  밤이 되자 다시 집합했다. 49기 다음은 56기 민 일경과 나였다. 민 일경이 집합 보고를 했다. 보고자 열외 원칙에 따라 56기는 열외가 되었다. ‘차 기수를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이런 대답이 나오느냐’며 구타가 이어졌다. 이른바 기수 빠따를 쳤다. 이 이경은 거의 녹초가 되었다.
3월이 되자 41기 선임은 마을 노는 밭을 얻어 수박 농사를 짓자고 했다. 전경대원이 모범을 보이자고 했다. 바닷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밭농사는 별 수익이 없어 묵히는 밭이 많았다. 초소에서 가까운 400평 정도의 밭을 임대하였다. 퇴비며 비료가 없어 동네 인분을 모두 수거하여 뿌렸다. 인분을 푸는 일은 쉽지 않은데 우린 고참의 지시이니 하는 수 없었다.
“똥을 푸면서 코를 막거나 인상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주민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똥을 푼다. 알았나.”
동네 사람들은 누구네 변소가 가득 찼으니 퍼달라고 초소에 왔다. 이 소문에 먼 동네 똥까지 다 퍼 날라 밭에 뿌렸다. 다들 도시 출신이라 나와 청양 정산이 고향인 분대장이 거의 일을 했다. 부식비를 아껴 수박 종자를 사 오고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고 수박씨를 넣고 비닐로 고깔을 만들어줬다. 수박이 점점 자라고 순을 집어주었다. 거름 덕분인지 수박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수박이 주먹만큼 커질 무렵 인사이동에 의해 옆 초소인 월전포로 이동하였다. 동기가 두 명이기도 하고 또 옆 초소에서 자꾸 환자가 생겨 결원이 있어 그리로 옮겼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월전포 초소로 향했다. 후임병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계단을 내려가 컴컴한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남포등을 켜고 선임들이 삼봉(화투의 육백 비슷한 놀음)을 치고 있었다. 분대장을 포함하여 내 선임은 48기 최 수경(목포 출신), 49기 박 상경(광주 출신) 두 명이다. 나도 어느새 선임 반열로 올라선 셈이다. 귀신 나오는 초소로 유명한 우리 초소는 환청, 환각으로 본부로 후송되어 대원들이 꺼리는 초소 중 하나였다. 겁이 많은 나는 미리 걱정부터 하였다.
고참이 화장실 갈 때면 으레 졸병을 데리고 갔다. 귀신이 나온다며, 또 귀신을 보았다는 소문에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일을 보았다. 내무반은 땅속 벙커였는데 화장실과 식당, 전망초소가 멀찌감치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교통호가 가슴높이로 정도 도랑으로 연결되었다. 고참 3명을 열외 시키고 나머지가 전적으로 근무하였다. 2인 1조이지만 수면 중인 고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면 혼자 근무를 설 수밖에 없었다. 산짐승도 없는 이곳 초소에서 우리가 키우는 개가 엄청 짖는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개는 본다는 말을 들었다. 개다 짖을 때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귀신은 화약 냄새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 분대장과 협의하여 내무반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창문에서 총을 쏘았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