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방죽안길 33에 위치한 이광명 고택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일본 정부의 방해로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조선 제26대 황제인 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 의친왕의 딸과 혼담이 오가자 왕가에서 거금을 내려 보내 집을 짓게 함으로써 왕가의 품격을 세우고자 했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집이 완성됐다.
3겹으로 되어있는 지붕은 고택의 품격을 보여주는 듯하며 집을 감싸고 있는 담장에는 넝쿨이 가득 붙어있어 한껏 멋을 더했다. 고택은 모양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口’ 자로 되어있어 빈틈을 찾아볼 수 없으며 왕가의 품위에 걸맞게 99칸으로 지은 대저택으로 사각의 건물을 두르는 복도가 있고 그 옆으로 수십 개의 방이 들어서 있다.
사시사철 푸르고 곧게 뻗어 있는 덕에 올곧은 충절을 보여준다 하여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대나무들은, 일제의 위협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고택 뒤에서 70년 넘도록 충절을 지키고 서 있다.
건물 내부는 문간채 한 면만을 제외한 세 면이 하나의 복도를 따라 길게 연결된다. 이 복도를 따라 안방과 건넌방, 손님들에게 내주는 행랑채가 방향을 달리하며 줄지어 들어서 있다. 중간에는 대청마루가 큼지막하게 마련되어 있어 큰 방들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방 안은 옛 모습 그대로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다. 비록 낡아 보이지만 조선의 역사가 깃들어 있어 대들보에 내려앉은 먼지조차도 고택과 자연스레 어울려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낸다. 방문은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이 함께 만들어진 이중문으로 하여 보온이 잘 되도록 하였다.
고택이 문화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집의 주인은 시간이 지나며 보수해야 하는 곳은 고치고 보존할 곳은 그대로 두며 살아간다.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광명 고택의 매력은 세월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대나무 숲과 논 사이에 있어 고택에서는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가을이면 고택 앞 무르익은 황금빛 논이 풍성한 느낌을 자아내며 담벼락에 자리한 노란 은행나무는 빼어난 외관의 고택에 운치를 더한다. 이광명 고택이 만추에 닿는 고택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겨울에는 여느 시골 마을 집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논에서 조선 왕조의 흔적이 담긴 고택을 아지트 삼아 한바탕 눈싸움을 하는 것으로 추위와 무료함을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주변에는 비(碑보)에 시(詩령)를 새겨 전시하는 ‘시와 숲길’ 공원이 있으며, 보령8경 중 하나인 ‘보령댐’과 보령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각산이 있어 어느 계절이든 사색하기에 제격이다.
이광명 고택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한옥체험 숙박시설로 지정돼 숙박체험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밭 가꾸기, 작물 수확, 과일 따 먹기 등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도 가능하다. 이광명 고택에서 한옥의 전통과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알아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사진 이해든 기자
'고택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⑨] 배움이 가득한 공간, 사계 고택 (0) | 2021.08.25 |
---|---|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⑧] 추사체의 요람 추사고택 (0) | 2021.08.25 |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⑥] 쌓아올린 역사 외암마을 (0) | 2021.08.04 |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⑤] 노란 수선화의 향연 유기방 가옥 (0) | 2021.08.04 |
[기힉연재 고택나들이④] 오래된 벗처럼 편안한 계암고택 (0) | 202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