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는 대문도 담장도 없어 누구나 쉽게 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사랑채까지 접근이 가능한 명재고택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90호로 파평윤씨(坡平尹氏)들의 세거지인 옛 이산현에 있는 이산을 배산 하여 인접한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 인공 방형지를 파고 조그마한 석가산을 조성한 훌륭한 정원이 꾸며져 있다.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멋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운치를 더한다. 연못을 지나 우측에 엄청난 양의 장독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고택을 지키는 병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정면을 향해 앞마당의 섬돌을 오르면, 기단 위의 기품 있는 사랑채가 손님을 반긴다.
◆ 나눔의 미덕이 지켜온 윤증 선생의 고택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학자인 윤증(尹拯)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불린다. 그는 임금이 무려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일체 사양했을 만큼, 성품이 대쪽 같았다고 한다. 게다가 검소와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고 후대에 가르쳤는데, 덕분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택이 소실될 뻔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윤증 선생의 성품을 반영하듯 고택은 다른 사대부 집안의 가옥에 비해 겉모습이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기품이 느껴질 뿐 아니라, 곳곳에 숨겨진 과학적 설계에 감탄하게 된다.
◆ 안채와 곳간채, 사랑채에서 찾은 선조들의 지혜
전면이 개방된 사랑채의 왼쪽으로 난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나온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ㄷ’자형 구조인데,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룬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넘어오는 길에는 벽이 있는데, 이곳에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다. 문간에 벽을 설치하여 방문객이 안채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한 것이다. 단 벽 아래에는 공간이 나 있어, 안채의 마루에서는 그 공간으로 신발을 보고 방문객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를 남자들이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한 지혜인 것이다.
또한, 안채 옆으로 곳간채가 있는데, 두 건물을 나란히 두지 않고,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두었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북쪽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빨라져 주변이 서늘해지고, 겨울에는 반대로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남쪽의 넓은 통로를 빠져나가 매서운 북풍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곳간채의 북쪽 끝 창고는 여름철에도 서늘해서, 이곳에 차갑게 보관해야 할 것을 둘 수 있었다.
사랑채는 큰 사랑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대청이 있고, 좌측에는 누마루가 있다. 또 그 뒤로 작은사랑방과 안 사랑방, 대문간이 이어진다. 명재고택의 객실은 안채의 건넌방을 비롯한 사랑채의 사랑방 3곳이다. 누마루를 포함한 사랑채를 통째로 예약해 독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더불어 마당 한쪽에는 초가 별채가 있고, 음향장비와 빔프로젝터가 설치된 초연당(超然堂)도 있어 단체 모임이나 공연을 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욕실 겸 화장실도 깨끗하다. 사랑채에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접목한 문이 있는데, 4쪽 미닫이문을 열고 다시 열면 여닫이문처럼 열리는 독특하고 과학적인 양식이다. 또한,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연못과 그 너머의 마을과 앞산을 내다볼 수 있다.
명재고택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사유지로 사전예약 후 방문 및 답사가 가능하다. 고택 앞 해설사가 상주해있으며 고택의 특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사전에 예약하면 다례, 도장만들기, 천연염색 등 다양한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명재고택에서 차로 7분정도 거리에 문화재자료 제299호인 파평윤씨재실이 있다. 윤순거 선생이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었던 건물과 성경재, 영사당의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파평윤씨 재실을 중심으로 문중 공유 재산을 보존하고 제례 과정을 평가하는 등의 기능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중의 주요 사안을 추진하는 상징적 장소이다. 이곳의 문중에서 배출한 황후만 무려 여섯 명이며 조선시대에만 592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되었다. 명재고택과 함께 파평윤씨재실을 방문하여 이 가문의 기품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해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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