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이런 소문이 날까 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바보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온종일 체력장 측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다음에는 고입 시험 대비 공부를 해야 했다. 집에 와서도 동네 친구의 집에 가 12시까지 공부하고 왔다. 그 친구는 각종 참고서가 있어 빌려보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2~3 학년 때도 도서관에서 책을 엄청 빌려 읽었다. 김동인의 『젊은 그들』에서 주인공이 죽을 때 나도 울었다. 꼭 살아서 대원군의 개혁을 성공시켜야 했는데, 죽다니. 또 다른 한 권은 누이가 사서 보내온 책인데 나가마즈가즈의 수기 『이 땅에 저 별빛을』이라는 생활 수기였다. 일본인인 저자는 일제가 패망한 후, 만주에서부터 한국으로 와 일본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전쟁을 겪는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손에 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아들을 맡아 키웠다. 광활한 중국에서 겪은 일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는데, 중국이란 나라는 얼마나 커다랗기에 풍습이 각 곳마다 달랐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여러 번을 읽었다. 후일 중국어를 공부하게 된 것도 조금은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나중에 영화로 나왔던 유명한 책이었다. 봄가을 소풍은 아산의 모산 건널목 사건으로 경서중학교 많은 학생이 희생된 후 가까운 곳으로 갔다. 삼각리의 선덕사와 이인면과 경계에 있는 신기령 쪽으로 갔다. 특히 신기령으로 소풍을 가려면 비포장 길 이십 리 길을 걸어야만 했다. 뽀얀 먼지 속을 걸어가고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갔다. 노래자랑 시간은 멀거니 앉아 박수만 쳤다. 유행하던 개다리 춤은 남학생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나는 몸치라서 나가지 못하고 방관자로 남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꿍 두 명이 저세상으로 갔다. 한 친구는 대학리 쪽에 살았는데 폐렴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결석하더니 나오지 않았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녔는데, 소아마비 증상이 있어 도와주라고 나에게 짝꿍을 지어주었다. 그 친구는 화장실에 빠져 그만 세상을 떠났다. 옛날의 화장실은 커다란 옹기를 묻고 그 위에 송판을 두 장 놓아 발판을 만들어진 위험한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 발판을 잘 못 밟아 빠진 것이다. 안영리 그 친구 빈소를 다녀오는데 날이 어두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 후 나는 내 짝꿍 두 명이 죽은 것에 대해 내게 무슨 원귀가 있어 그 친구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한참 동안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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