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무량(豊無量)! 헤아릴 수 없이 불어가고 불어오는 바람. 운무량(雲無量)! 헤아릴 수 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 겨울하늘의 찬바람이 솔잎을 울리는 덕숭산 중턱, 만공도 허공도 아닌 둥그런 돌덩이 하나 침묵만 지킨다. 제가 무슨 구름인양 연꽃위에 가볍게 앉아있다. 부처는 보이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 아무것도 없음인데, 제가 무슨 부처인양 가부좌 틀고 저토록 오랜 세월을 앉아 있을까. 간간이 휘날리는 눈발은 벚꽃이파리처럼 휘날리다, 하얀 나비인양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더러는 하늘을 맴돌다가 연꽃처럼 “만공 탑” 둥근 머리위에 내려앉는다. 스르르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진다. 눈은 떨어진 그 자리에서 자취도 없이 녹아 마른 흙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있음인가 없음인가. 보임인가 보이지 않음인가. 감인가 옴인가. 눈발은 연꽃처럼 염화시중 휘날리다 안개처럼 이심전심 사라져 버린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외면하는 듯 용봉산의 쌍용은 고개를 돌려 서쪽 바다를 바라본다. 백년천년 쌓이고 쌓이어도 마냥 그 타령인 바닷물, 이름 하여 해무량(海無量)이라 하던가. 언젠가는 한번 “만공 탑”을 바라볼 것 같은 그런 자세로 용머리가 되어 굳어버린 바위, 언젠가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어둠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밝음인가 어둠인가. 꺼짐인가 켜짐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암시인가 귀띔인가. 바람은 풀잎을 울리고 꽃잎을 울리고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부질없는 차디찬 돌덩이, 제 속을 단단함으로 가득 채운 둥근 돌. “비어있음”이란 이름을 가슴에 새겨 안고 얼마를 더 저렇게 앉아 있을 작정인가.
합장 절을 올린 후 나는 “만공 탑”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읽는다. “허공을 무서워하라” 짤막한 설법의 말씀이다. 아니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불생불멸의 진리란 말인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무서워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잠시 허공을 향해 명상에 잠긴다. 절대고요가 오히려 더 불안하고 더 초조하듯 절대의 “비어있음” 또한 무서우리라. 그러할진대 ‘너희는 왜 허공을 아랑곳하지 않는가’ 하고 만공은 일갈을 내뱉을 듯 돌덩이의 이마가 햇살에 빛난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우두커니 선 옷깃을 여민다. 허무한 것이 인생이고 세상인 것을 그것도 모르고 허우적거렸으니 정말 내가 바보다. 허공은 아무 것도 없음이구나. 차있음도 비어있음도 아닌 허공이구나. 무소유, 아무 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되는구나. 허공이 만공이요, 만공이 허공이로구나! 소유가 무소유요, 무소유가 소유이구나! 허공을 무서워하라, 외고 외며, 중얼거리고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 왔다. 산문을 나서니 산은 나를 꽉 잡았다가 헐렁 놓아버리는 것 같다. 허무와 허망이 시름시름 깨달음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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