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65회)

충남시대 2025. 4. 1. 14:14

1985년 8월 춘천옥 총매상


1992. 4. 9

  오늘 춘천옥 매상이 600만 원 넘게 올랐다. 한 달 총매상으로는 약 180,000,000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7년 전 서류뭉치에서 1985년도 8월 총 매상 메모지가 눈에 띄어 1985년 30일 자 일기에 적어 넣었다.

  1986년 8월 총 매상..... 55,145,700원    
                         CH  55,088,000원 
                   CT  57,700원
1일 평균 매상.....  약 1,838,200원 

  보쌈   큰 그릇 14,088개
         작은 그릇 3579개

  개업 날자가 1984년 5월 1일이니 1년 3개월 만에 기적 같은 매상이 오른 것이다. 그만큼 손님이 많았다는 데에 새삼 놀라야 했다. 식탁이 4개뿐인 포장마차 같은 초라한 업소에서 1년 남짓한 기간에 수십 배의 매상을 올리다니!
  (요즘 물가로 치면 적게 잡아도 1달 매상이 5억이나 6억은 넘을 터이다. 내가 서초동 집을 팔고 문호리로 이사할 때인 1992년 도로변 대지를 평당 260만 원에 팔고 떠났는데 2024년인 현재는 평당 1억 원이 훨씬 넘는 실정이니 짐작이 갈만하다. 현재 강남에서 27평 아파트가 30억 원 가까이 나간다고 한다.)

1992. 4. 12

  대한극장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다. 홍상화 작품을 영화화한 <피와 불>인데 김원일,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 현대문학 대표 양 여사 등 10여 명이 봤다. 자기 작품을 직접 영화로 만든 홍의 행위가 답답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현대문학 양 여사가 내 곁에서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청탁한 원고를 서둘러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전남 광주에서 지내는 심상대가 찾아왔다. 반갑다. 그는 독자에게 겸허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강릉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학의 생성에 대해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2. 4. 15

  칭찬 들어온 내 문장이지만 이제부터는 잘 읽히는 문장을 써야겠다. 토속어를 줄여야겠다.

  태호 결혼식 준비로 신경이 써진다. 그동안 너무 친구들과 소홀히 지낸 까닭으로 청첩장 내기가 민망하다.

  요즘 바이오(생명공학) 열풍이 대단하다. “인간의 생명은 수많은 뇌신경 세포 간의 기계적 상호작용 이상의 것은 아니다.”라는 유물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뇌는 하나의 기계이며 사고는 그 물리적 현상이다.”라는 말이 어쩐지 신선하게 들린다. 나는 나 자신을 시시한 물체로 여기고 싶다.

1992. 4. 17

  영채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갖는 낯선 통화였다. 하지만 그 통화는 몹시 진실되고 애정 어린 이야기였다. 괴로움이 많다고 한 그분의 말은 분명 인간적인 고뇌일 것이었다. 나는 그분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내가 영채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잔인한 단풍」을 퇴고해야 하는데 태호 결혼식이 5월 2일이어서 밤낮으로 다듬고 있다.

1992. 4. 18

  진영이 열쇠를 공손히 놓아두고 떠났다. 미리 의논한 결정이지만 섭섭하다.

  나는 아내를 만들고 있다. 사랑하는 수니를 다른 사람(아내)으로 만드는 모험!

1992. 4. 26

  영채 여동생 부부가 와서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놀다 갔다. 여동생은 남편이 아내가 변질될까 봐 소설 쓰는 걸 싫어해서 아동문학가가 되었다고 실토했다.

1992. 4. 28

  오늘 370매짜리 중편 <잔인한 단풍>을 동서문학에 넘겨주었다. 황 편집장이 직접 와서 원고를 찾아갔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자본주의 개량을 통해 사회주의로 변천하는데, 내가 구성 중인 새 작품 주인공 찬혁이 그런 수정주의자가 아닐지 싶다.

1992. 5. 1

  각 군 사관학교 출신 동창 모임에 내가 끼었다. 김성직 육군 사단장, 손덕규 공군 준장, 이기정 해군 제독, 장영명 대령, 이성렬 대령(예비역), 유휘문이 모였다. 나는 간이 나빠 맥주 한 잔만 들었다. 그들의 소박한 면이 좋다. 이성렬이 청첩장 내는 일을 도와준다며 수시로 전화가 온다. 고맙다.

1992. 5. 2

  오늘이 태호 결혼식 날이다. 목화에식장 12시. 그런데 요즘 나는 원고 쓰기에 정신이 없었다. 전숙희 회장 부탁이었다. 빨리 자고 결혼식을 준비해야겠다. 불쌍한 내 자식이 결혼식을 올린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주례는 그동안 지내온 정리를 생각해서 이호철 씨로 정했다.
  대충 생각하면 기쁘고 깊이 생각하면 슬프다. 청첩장을 조금만 찍었는데 축하객이 너무 많이 왔다. 내가 그동안 소홀했던 동창들도 많이 오고 작가들도 의외로 많이 참석했다. 전숙희 PEN회장, 이청준, 김주영, 김원일, 김승옥, 이근배, 현의섭, 정소성, 심상곤, 유만상, 박덕규, 등 수십 명이 왔다. 동창으로는 용진회 회원 전원이 부부동반했고(이무근 서울대 교수, 김용 MBC 아나운서 실장, 최준웅 사장, 안흥인 외과의사, 윤건웅 사장, 유휘문 기무사령부 정치반장, 박해준, 김병갑 등),
  그 외 용산고 동창으로는 손덕규 공군장군, 이기정 해군제독군, 이성렬 대령, 박준성 은행지점장, 양민남 은행지점장, 이서 은행지점장, 마재일 등 수십 명이 왔다. 식권만 176명이니 안 먹고 간 사람이 태반이었다.

1992. 5. 6

  태호 부부가 태국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랑이다. 자동차경주, 사격, 춤 등에서 제일 인기였다고 한다. 그놈이 가엾다.
  처음으로 자식한테서 아내와 함께 큰절을 받았다. 며느리가 붙임성이 있지만 고집이 셀 것 같다.

1992. 5. 20

  이호철 작가한테서도 전화가 왔는데 내 중편 <잔인한 단풍>이 좋다고 한다.

  요즘 10여 일간 별장지를 보러 다녔다. 북한강변 남양주 땅과 양수리, 곤지암을 뒤지고 다녔지만 북한강변인 서종면 문호리에 있는 골짜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1992. 5. 21

  영채한테서 전화가 왔다. 파리에서 동생이 왔다고 한다. 우리 집 벽에 붙은 <공간변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찾아갔다. 모든 식구가 반겨주었다. 안종대는 실비가 내리는 데도 자기 집 담 기둥에다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누나가 동생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고 한길문학에 발표한 내 첫 작품 「그리고 말씀하시길」을 읽게 했는데 깊은 감명을 받은 동생이 누나에게 “이런 분과 친하게 지내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채는 동생을 신처럼 여기고 있었다.
  신앙에 대한 말을 하는 중에, 영채는 신앙고백 기록을 태운 적이 있는데 그 기록 자체가 오만하거니와 그 기록을 태웠다는 말 자체도 오만이라고 실토했다. 그리고 신의 품에 안기면 왕이 된다고 했다. 나는 품에 안김 자체가 인간마당의 삶을 잃는 짓이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하이야트 호텔에서 이스라엘 건국기념행사가 있어 이스라엘 여행팀들이 초대되었다. 그곳에서 대충 음식을 먹고 현 목사와 양채 여동생까지 포함해서 여럿이 내 사무실로 왔다. 안종대는 서재에 걸린 내 고교 시절의 그림(백기완 씨 등과 구례 삼진강가 점미 부락에서 농촌계몽활동할 때 그린 그림)을 보고 “놀라운 구도”라고 극찬하며 벽에 걸린 그림을 떼어내 가까이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공간변주」의 주제에 대한 내 질문에 그는 “공간을 채우는 개념이 아니라 채워진 공간을 지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우다 흐른 부분을 흑백색으로 칠했으며 그 공간을 한정하는 선은 늘 황금분할선을 이탈하는 구도”라고 말했는데 그 이탈이 그의 전위성이었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