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미군비행장에 가다
1994. 3. 10
나는 학생인데도 학과장인 유 교수에게 응응 하고 유 교수는 내게 예예 했다. 도저히 ‘님’ 자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른 교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모두 “괜찮아요.” 한다.
1994. 3. 12
<현대문학>에 발표할 <팔라니트> 마지막 장을 묘사하는데 저쪽 방에서 나래의 잠투세가 들려왔다.
어저께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제7차 정기총회가 있었다. 송기숙 전남대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참석 전에, 나는 정규웅 중앙일보 편집국장, 권영택 고려대 교수, 김선학 동국대 교수 등과 서소문에서 술을 마셨다. 술값은 정 국장이 계산했다.
정소성 국민대 교수가 술주정을 하는 바람에 내가 화를 냈다. 그는 나를 형님으로 모신다. 착한 교수다.
1994. 3. 15
완연한 봄이다. 넥타이를 매고 학교에 갔다. 서초동에서 한 시간 반 전에는 차를 몰고 출발해야 했다. 희곡창작입문 시간에는 연극을 보고 리포트를 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시간이 없어 야단이다.
1994. 3. 16
아시아 평화재단(이사장 김대중) 주최 국제학술세미나에 초대되어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 갔다. 홀을 꽉 메운 가운데 김대중 이사장의 인사말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앞으로 4시간 동안 사무엘 헌팅턴의 논문 <문명충돌>에 대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1994. 3. 17
학과장이 내게 바라는 것은 학업 분위기를 고양시켜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을 집중 지도해서 문인을 양성해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물론 학교의 명예이니 나 역시 명지 문창과가 이름나기를 바란다. 지금 서울예전이 휩쓸고 있잖은가.
오늘 수업은 선후배 상견례 행사로 일찍 끝났다. 수업이 끝나자 2학년생들이 모두 찾아와 후배들에게 인사한다. 나는 학창 시절의 낭만을 즐기고 싶어 끝까지 어울렸다. 양평 프라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 10명씩 짝을 지어 나가 자기소개를 했다. 내 차례였다.
“94년도 입학. 학번.....”
와아아! 하고 웃음보가 터진다. 나 다음 노톨이 삼십 대 초반이니 55세는 할아버지다. 사실 손주딸이 있는 할아버지가 아닌가.
인사 차례가 끝나자 학교 앞 식당에서 찌게 파티가 열렸다. 선배 40여 명과 모두 120여 명이 참석한 대연회다.
술기운이 오르자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고 야단들이다. 개중에는 누나 동생을 따지며 언쟁을 벌이다가 울기도 하는 철없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제1회 졸업생인 88학번, 90, 91, 92 학번도 있었다. 그들 고참들은 내 주위로 몰려와 이것저것을 묻고 술대접을 한다. 소설을 지망하겠다는 선배들도 많았다.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핑계를 대고 먼저 나왔다. 여학생 둘이 저희들도 가겠다며 따라나선다. 나는 리포트를 쓸 겸 그녀들과 함께 연극을 보기로 했다.
1994. 3. 17
이영준 주간과 이경철 기자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나한테 “얼굴을 들 단계가 되었으니 좀 오만해지세요.” 한다. 그리고 이 기자는 이 주간에게 “잔아 선생님은 서정 묘사사 뛰어나세요. 누구를 만났을 때 선생님 작품을 안 읽었다면 화가 나요.” 한다.
1994. 3. 18
유라 경혼식에 참석하거나 축하금을 보내준 동창 십여 명을 강남 한국관에 불러 한 턱 냈다. 동창들 중에서 내로라하는 친구들이 참석한 셈이었다.
“잔아 전화 한마디에 쫙 모였군”
이성렬 대령의 말이었다. 태현실 남편 김철환은 일본 사람과 저녁하고 늦게야 도착했는데 고마운 성의였다. 김승홍 병원장은 오늘도 내 칭찬이다. 손덕규 장군은 대구 결혼식에 못 간 죄로 십만 원을 봉투에 넣고 왔다. 축하금 최고의 액수다.
김용 MBC아나운서 실장이 서초동 집에까지 따라와 놀다가 자기 아내 차를 타고 떠났다. 나는 양평으로 가서 밤늦게까지 집필했다.
1994. 3. 24
눈이 내린다. 2학년 학생회 간부들이 나를 찾아왔기에 문학인의 자세와 소설 작법에 대한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은장도」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졸업생이 눈물까지 지었다. 감격적이었다. 그들은 자주 만나자며 양평집으로 떼 지어 오겠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어린 자식이 학교에 갈 때마다 “선생님한테 많이 여쭤보고 오너라.” 한다는데 우리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오너라.” 하고 잘못 가르친다.
눈발 속을 달릴 때는 마치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눈송이는 천체.
1994. 3. 26
밤늦게까지 용고 동창회지 <큰그릇> 과 대학교 <햇귀>에 실을 글을 썼다. 제목은 <멋을 찾는 길>로 정해서 두 군데 것을 같은 내용으로 쓰고 <햇귀>에만 학생들에게 분발하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서초동 집에서 며칠 지내다오니 목이 아프다. 서울 공기가 그만큼 탁했다.
1994. 3. 27
새벽에 일어나 김포공항으로 달렸다. 군산행 첫 국내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비행시간은 삼십여 분, 손님이 한산했다. 적자 나는 노선이라고 했다.
유라와 지운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사위는 파일럿 복장에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있어 멋있어 보였다. 아파트에 돌아오자 잠시 뒤 열 시쯤 지운이는 비행훈련 때문에 출격을 나갔는데 자기가 적기 역할을 하고 원주 등지에서 뜨는 전투기가 추적한다고 했다.
대구에서 시부모가 도착했다. 결혼하고 처음 만나는 셈이었다. 유라 말에 지운이는 대대장과 함께 F5를 조종하는데 양가 부모에게 보이기 위해 착륙시간에 활주로 착륙 지점에 나와 있으라고 했다. 우리가 정 대위의 후배인 장 중위의 차를 타고 활주로에 도착했을 때는 2인승 전투기는 이미 착륙하여 격납고 쪽으로 오고 있었다. 정 대위는 비행기에서 두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알라트룸과 대대본부 실내를 둘러보고 커피를 얻어 마셨다. 당직 대위는 하체로 피가 내리는 걸 막기 위한 특수 비행복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는 비행기도 만져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정석도 구경하고 좌석도 만져보았다. 대대본부에서는 복장 진열실과 각 업무 별로 브리핑받는 교육실을 구경했다. 군산비행장은 미군 비행장이어서 미군의 숫자가 몇 배 많았다. 조깅하는 여자들도 보였다. 모든 풍경이 외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 좋았다.
군산 시내에 나가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와본 군산은 감회가 깊었다. 전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대구 식구들은 거기서 2시 차를 타고 떠났고 우리는 딸네 아파트로 돌아와 쉬다가 오후 여섯 시 반 비행기를 탔다.
1994. 3. 28
학교에 갔더니 복도에서 여학생 둘이 기다렸다가 나를 보자 반색한다. 89학번 소설지망생이라며 앞으로 지도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우선 작품을 보여달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자 국어 교수에게 책을 주었다. 수업시간에 “저보다 훨씬 경험이 많으신 분”이라고 나를 추켜세우던 교수다.
1994. 4. 9
오후 5시쯤에 M.T 장소인 청평 안전유원지로 차를 몰았다. 문호리에서 수입리 쪽 비포장길을 천천히 달려가기로 했다. 한창 확장 포장공사를 하는 중이고 다리공사도 교각을 세우는 중이었다.
청평에서 ‘뜨락’ 민박집을 찾아갔다. 근처에는 서울대생, 중앙대생, 인천대생, 성균관대생들이 MT를 갖고 있었다. 나는 20대의 기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민박에 도착하니 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나를 보자 학생장을 비롯한 2학년 간부들과 1학년 학생들이 좋아서 야단이다. 그동안 학생들이 나를 노인으로 꺼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있는 것이 마음 든든하고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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