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TV에서 녹화 중 서울경찰청에서 초청
1994. 9. 2
학생들이『인간의 시간』이 보도된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을 오려서 2학년 교실과 1학년 A.B반 교실에 붙였다. 학과장은 2학년 학생장에게 본관과 별관 복도마다에 붙이라고 시켰다.
1994. 9. 4
MBC TV에서 녹화 중인데 서울경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장비계장(전 나주경찰서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점심에 이헌만 경무부장(경무관. 후에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인천청장을 지냄) 등 여러 경무관급 간부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했다.
옥인동 식당에 들어서니 경무관 이상 고급간부들과 경무과장이 나를 반겼다. 점심을 마치고 부장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수사부장, 정보부장, 경비부장 등이 나를 자기들 사무실로 데려갔다. 책상마다는『인간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이헌만 경무부장실에서『인간의 시간』 2질에 서명해서 모두 청장실(치안정감)로 들어갔다. 부청장도 동석했다. 그 자리에서 경무부장이 말했다.
“선배님 소설 한 권이 경찰예산으로 P.R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내고 있어요.”
그 말에 여러 칭송이 나왔다. 청장과 부청장도 동감을 표시했다. 경무과장은 “방금 도착한 석간에도 크게 보도되었네요.” 하고 신문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나는 청장에게 문화경찰을 강조했다. 청장은 내게 경찰문화에 애써달라고 당부했다. 고등고시 출신인 이헌만 부장은 나를 계속 P.R하며 이런 말도 했다. “경찰문학상을 제정했으면 좋겠어요.”
청장을 비롯하여 모두가 복도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SBS TV에서도 보도시간에『인간의 시간』을 길게 다뤘다고 한다.
1994. 9. 5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학생인 나보고 강의를 해달라고도 한다.
KBS TV <사건 25시> PD가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왜식집에 들어가 도시락을 얻어먹었다.
“<중앙일보> 보도를 읽어본 국장이 선생님을 만나뵈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PD는 내게 자문을 구하겠다고 한다.
1994. 9. 6
학과장이 나를 학장실로 데려갔다. 교무처장도 함께 들어갔다. 학과장은 나에 대한 보도물을 모두 복사해서 가지고 갔는데 거기에는 ‘명지전문대 학생’이란 기사 내용도 실려있었다. 되도록 학교선전을 보여줄 욕심이었다.
학장은 자랑스런 일이라며 <학보>와 명지대학교 <교지>에도 실으라고 했다. 차를 마시고 나와 학생처장실로 들어갔다.
1994. 9. 7
<조선일보>에서 <스포츠조선>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잡지 <뿌리와 날개>와도 인터뷰를 가졌다.
<경우신보>에는 한 장 크기로 보도되었다. 신문이 생긴 이래 처음 대서특필로 다뤘다고 한다. 신문사 실장은 경찰문화를 강조해왔는데 나를 천만 명의 원군으로 여긴다고 했다. 실장은 수필가인데 신문을 직접 서초동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경향신문>에서 발행하는 <뉴스메이커>에도 크게 실렸다.
1994. 9. 9
KBS 이 PD가 자기네 아파트로 초대해서 저녁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어 참 좋다고 했다. 방송인들은 대개 대중문화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1994. 9. 11
<동아일보>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권기태 기자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잘 쓰겠어요.”
이성구 교수, 홍태식 교수와 모처럼 술을 마셨다. 나는 마시는 척만 했다.
홍 교수는 평자답게 내 작품에서 미나 언니가 뱀에 물려 죽는 장면과 그녀 부모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라고 한다.
1994. 9. 12
SBS 라디오에서 25분 동안 생방송을 했다. 녹음테이프를 선물로 받았다.
1994. 9. 13
잡지 <선진사회>와 인터뷰했다.
대구 동부경찰서 정보과에서 장거리 전화가 왔다. 김만조 경사였다. 나는 그의 음성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내 장편『인간의 시간』에서 배고픈 자의 눈빛에 묘사된 윤 순경이 바로 김만조였다. 너무 반가웠다. 그는 거진임검소에서 내 부하직원으로 근무할 때 자기 친척인 부산 소재 초등학교 여교사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신당동 집에도 찾아갔고, 남산에도 여러 번 올랐었다. 그 무렵 나는 양구경찰서로 발령이 났고 거기서 아내를 만났던 것이다.
1994. 9. 14
광주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조선대 교수들이 ‘뉴스메이커’(경향신문)를 읽고 책을 공동으로 10질(20권)을 사겠다고 했단다. 그 잡지는 보건소에 근무하는 형수가 직장에서 읽고 집에 가져온 거라고 했다.
광주 서부경찰서 정보과장은 내 책을 읽고 직원들에게 독후감을 써오라고 지시했단다.
1994. 9. 17
<동아일보>에 대단한 기사가 실렸다. 소설 5작품, 비소설 5권이 <한가위에 읽을 만한 책 10>으로 선정 되었는데 내『인간의 시간』이 소설 5작품에 선정되었다. 소설은 서울대학교 조남현 교수와 서영채 문학평론가가 추천했다.
『타나토노트』..... 배르나르 배르베르(프랑스)
『깊은 슬픔』..... 신경숙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은어 낚시 통신』..... 윤대녕
『인간의 시간』..... 잔아(김용만)
1994. 9. 18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인간의 시간』이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특별히 전시되어 있었다.
1994. 9. 20
홍익대 로데오 거리는 신흥 유흥가이다. 압구정동 오랜지족들의 이동이 있은 뒤에 활발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20여 군데가 넘는 곳에서 인터뷰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신문사에서 박해현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까지 찍었지만 보도가 유보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쓰지 않겠다.
그 대신 <주간조선>에서 보도하기로 했단다.
유라와 정 대위가 휴가를 얻어 군산 미군비행장에서 올라왔다. 문호리 주택 신축건물을 둘러보고 서후리 집 냇가에서 숯불구이를 해먹었다.
1994. 9. 21
책이 하루에만 1000질(2000권)정도 나간다고 한다. 문이당 사장은 좋아서 계속 각 신문에 5단 광고를 친다.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광고 문안이 3번 바뀌었다.
1994. 9. 23
TBS(교통방송)에 들러 녹음을 마치고 학교에 갔다.
<스포츠조선>에도『인간의 시간』이 크게 보도되었다. 박용재 기자가 인터뷰 기사를 잘 썼다.
1994. 9. 24
<조선일보>에 베스트셀러 집계표가 보도되었다.
드디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94. 10. 10
내 苦는 일체무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 인간은 신을 가까이 느끼고 있다. 그건 타락이다.
<현대문학> 10월호에 내 단편「팔라니트」가 실렸다. 이문열의『홍길동을 찾아서』와 3 편이 함께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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