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84회)

충남시대 2025. 9. 2. 15:04

잔아(김용만) 소설가

유카탄반도의 마야문명 유적 답사

 



1995. 1. 25

  멕시코 에어라인에서 조식 후 유카탄반도로 향발. 인구 50만에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며 유카탄주의 주도인 메리다(하얀도시)에 도착했다. 호텔에 첵크인 후 마야의 유적지인 욱스말에서 마법사의 피라밋, 여승방, 총독의 관저를 둘러보았다. 

1995. 1. 26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기원전  3세기경부터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서 번영한 마야문명의 최대 피라밋 치체이사(성스러운 샘), 구치첸의 여승방, 천문대, 고승의 분묘, 신치첸의 카스티요성, 전사의 신전, 재규어 신전, 공놀이장, 희생의 샘 등을 관광하고 한 많은 에니껭농장도 둘러보았다. 
  
  1905년(고종 8년)에 1033명이 살리나꾸르스에 도착했다. 튼튼한 젊은이들이 에니껭농장으로 팔려갔다. 우물에 매달고 벌레가 득실거리는 토굴에 집어넣기도 했다. 4년 계약이 끝난 후에는 쿠바 사탕수수농장으로 끌려가기도.
  
  LA는 지구상에서 최다민족복합체(最多民族複合體)로서 새로운 전일화(全一化)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1995. 1. 27

  버스 편으로 메리다를 출발하여 멕시코가 자랑하는 대규모의 휴양지이며 유카탄반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카리브해의 칸쿤(마야어로 뱀을 뜻함)에 도착하여 호텔에 첵크인한 후, 순백의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카리브해에서 수영하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1995. 1. 28

  조식 후 칸쿤시티 남쪽 120km 지점에 있는 마야의 제사 터와 천문대 등으로 유명한 툴툼을 관광 후 카리브해안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쿠말과 갖가지 색상의 열대어가 풍족한 셀하에서 수영했다.

1995. 1. 29 

  오늘은 온종일 자유시간이다. 1년 내내 수영할 수 있는 카리브해안에서 옵션으로는 카즈멜 크루스, 해변 및 마야 정글 투어, 정글 탐험 크루즈가 있다.

  다음은 멕시코 여행을 끝낸 1월 31일자(한국은 구정) 일기다. LA에서 일반인들과 헤어진 우리는 밴 2대에 나눠타고 샌디에고에 들러 공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멕시코 국경도시인 티화나로 갔다. 거기서 가죽제품 상점에서 쇼핑을 하고 한반도보다 더 긴 캘리포니아 반도 해변 고속도로를 달려 엔시나다로 향했다. 항구도시 엔시나다는 지저분했지만 시내에서 30여분 달려 경관 좋은 BATA호텔에 여장을 풀고, 어시장에서 구입해와 삶은 나후타로 식사할 때는 기분이 최고조였다.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곳은 엔시나타로 달리는 한반도보다 더 긴 멕시코의 해변길이었다.  
  
1995. 2. 1

  아침에는 바위틈에 부딪쳐 포말을 날리는 바다분수를 구경하고, LA로 돌아오다가 진흙 온천을 즐겼다.

  멕시코 여행, 특히 유카탄반도의 마야문명 유적 답사는 관광뿐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무척 유익했다. 뱀의 문화로 점철되는 떼오떼와깐(테오테와칸), 똘떼, 아즈텍 문명지의 답사. 특히 욱스말, 치첸이트 섬, COZUMEL로 가는 훼리호에서는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철 수영할 수 있으면서도 그리 덥지 않은 휴양도시 <칸쿤>은 내 발길을 다시 돌리게 할 것이다. 
  욱스말에서는 마야 중엽(7세기)의 빠랄께국의 빠깔왕 석상을 70불에 샀다. 그 석상은 현재 잔아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멕시코는 자원이 풍부하면서도 GNP가 3000불이다. 중산층이 7%, 상류층이 5%, 나머지는 빈민층이다.
 
  인간은 자연과 신에게서 소외되어야 문명을 이룩할 수 있다. 그 중재자 역할이 뱀?            - 잔아

  칸쿤에 가다가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얹은 운치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주변의 웅덩이 옆에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이 주위의 퍼란 잎새들과는 달리 앙상한 햇살을 뒤집어쓴 채 서 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가지마다에는 작은, 정말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밤만한 초록색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눈물이 날 만큼 생존의 정령을 드러낸 그 나무는 풍성한 삶의 숲덩어리를 고스란히 떨궈버리고 그렇게 의지롭게 서 있었다.
  고통!
  그 고목은 내 고통철학을 그렇게 형상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을 영원한 存在의 요소를 지닌, 그 요소를 생성시키기 위한 아픔의 과정이다.

 1995. 2. 5

  유라네 식구가 군산으로 떠났다. 정 대위가 차를 몰고와 준영이를 데리고 간다고 했단다. 아내도 수술한 유라의 건강이 걱정 되어 함께 떠났다. 
  자식이란 무엇인가?
  나는 정 대위에게 문학과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조종사만 아니었으면 얼른 제대시켜 문화인으로 키우고 싶다.

1995. 3. 1

  MBN, YTN, JTBC 등이 개국했다. 
 
  광복 50주년의 해에 맞는 3.1절이다. 2박3일 일정으로 95학년 오리엔테이션이 양평 파라다이스 호텔 수련장에서 실시되었다. OT 이틀째인 어제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내가 특별 문학강의를 실시했다. 강의 요지는 ‘문학과 인생’으로 잡았다.
  1. 필연적인 삶과 재기
  2. 멋을 찾는 삶과 감동
  3. 탐미적인 삶과 미학
  4  고뇌스런 삶과 진실
  5 창조하는 삶과 치열성
 이야기 식으로 재미있게 꾸며나갔다. 2시간 동안 학생들의 경청 태도가 심각해졌다. 성공적인 강의였다. 내 목소리도 트여서 마이크를 제쳐두고 말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할 때도 있었다. 
  
1995. 3. 4

  입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겐자브로와 김지하 대담에서 오에겐자브로는 자기의 주제를 ‘주체성과 공존’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과 우주와의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데 그 파이프를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웰리암 브레이크의 말을 인용했다. 브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나 꽃에서 우주의 힘을 발견하라고 설파했다.
  오에겐자브로는 예츠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며, 양명학이나 노장자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김지하의 말을 서구와 함게 포용했다.

1995. 3. 22

 『미메시스』를 읽었다.

  선율은 아름답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 낭만파 시인 키츠 
 
  러시아 알렉산드르2세는 가장 혁신적인 왕이었다. 그는 1861년에 농노제 폐지를 주장했는데 그 바람에 귀족들에게 암살당했다. 

  바이킹 시대.... 800년-1066년. 바이킹의 첫 배  옷세베르그 발견. 
  
  미스 강이 찾아왔다. 그녀는 숙명여대 음대생이다. 음악에 대한 상식을 들었다.  

1995. 5. 29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공익성보다 돈 욕심만을 내다가 귀중한 목숨들을 잃게 만들었다.

1995. 6. 1
 
  몇 달 동안 조경공사에 시간을 빼앗겼다. 그동안 서초동 집을 팔고, 문호리집 주변 2000평을 추가로 사들였다. 안면도 땅을 팔아 문호리 870-4번지 690평 땅 중도금을 치렀다. 비싸게 산 셈인데 근린시설이 가능한 위치여서 다행이다. 

1995. 6. 4

  한겨레신문 문화부 직원 8명이 최재봉 기자의 안내로 문호리집에 와서 놀다 갔다. 문화부장과 최기자, 그리고 신진 작가인 김소진 (그의 아내 함정임 시인)도 합류했다.
  문화부장은 내 경험담 중 춘천옥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한겨레에서 출판하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