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군과 미국군을 퇴치한 베트남
1995. 6. 21
그동안 토지 매입과 서초동 집 매도절차를 모두 마쳤다. 힘들었다. 4200평의 너른 땅에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심어두고 싶다.
몇 개월 동안 조경공사를 하느라 책상에 앉아보지 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몸이 까맣게 탈 정도로 누비고 다녔다. 이달 중으로 대충 끝내고 책을 읽어야겠다.
보리회 총무 박덕규 교수가『우리시대 화제작의 밑그림』을 보내주었다. 이문열, 김원일, 김주영, 이상우, 박기동 등과 함께 내 작품이 실린 동인지다. 내 작품은「은장도」. 보리회는 대구·경북 지역 문인과 언론인 모임인데 타지(충남)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1995. 7. 11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하는 안종대 화백의 특별전이 가나화랑의 초청으로 열려 참석했다. 그처럼 나를 좋아하던 안종대 부부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문예중앙> 기자들 6명이 다녀갔다. 서후리 개울에 가서 놀았다. 국장은 내게 2개월 내로 체험담을 장편으로 써달라 한다. 나는 이미지 때문에 확실한 대답을 못했다. 화제성 작품은 삼가고 싶다.
1995. 7. 16
오늘부터 아내와 함께 4박5일 일정으로 VIETNAM을 여행한다. 문인으로는 김승옥, 김채원, 송영, 현의섭, 안순애 등이 동행했다. 다른 일반인 젊은 쌍이 여럿 끼었는데, 그들이 나를 최고 인기인으로 뽑았다고 한다.
김포공항을 이륙한 베트남 에어라인은 5시간 동안 비행 끝에 우기에 접어든 베트남 북부 호치민 상공에 들어섰다. 빗물이 황토를 씻어내려 벌겋게 물든 평야와 강물이 저 아래에 펼쳐진다.
허름하기 짝이없는, 마치 옛날 내 공군시절 여의도 공항 같은 에어포트에 착륙했다.
비를 맞으며 베트남 국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색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월남전 참전 때문일까? 암튼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하노이에서 4박5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자칭 고속도로인 4차선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품 버스지만 길거리의 차 중에서 고급차에 속한다고 한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때문에 사오십 키로 이상을 달릴 수 없는 고속도로, 아낙이 잡은 고삐줄에 끌린 소가 유유히 횡단하는 고속도로, 아이들이 중앙분리대에 걸터앉아 장난치는 고속도로, 그 도로를 빠져나와 쓰레기가 쌓이고 중앙선이 없는 좁디좁은 도로를 지나 시내로 접어들었을 때는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차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뒤엉켜 지날 뿐이다.
시내 중심가로 접어들자 가끔 바로크 풍의 2층 건물이 나타나고, 그런 건물들에는 영락없이 국기가 꽂혀 있었다. 관공서나 공공건물이라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었을 그 유럽풍의 건물들이 도시 얼굴로 보이는 베트남의 후진이 눈물겹다. 프랑스는 물론 우리나라가 참전한 미국마저 견디지 못한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베트남이 아니던가!
호텔은 마치 병영 같았다. 군 지프가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호치민 시절에 막사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군사박물관에서 느낀 것도 죽창을 비롯한 원시적인 무기가 프랑스군과 (1954.년) 최신 무기를 소지한 미군을 물리친 사위스런 병기로 남아 있다. 사실 그들 문명된 군인들은 원시적인 베트공의 사위스런 무기에서 기가 질렸던 것이다. 구두 밑창을 꿰뜷는 철침이나 죽창이 꽂힌 함정레서 얼마나 징그러운 혐오감이 느껴졌을까. 결국 최신예 60만 대군이 물러나고 말았다.
물론 자연적인 조건을 무시할 수도 없다. 질퍽한 늪지와 정글이 게릴라들의 방패막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호치민군은 세계적인 첨단 선진국들을 물리친 것이다. 호치민 광장에서 그의 무덤을 보는 내 마음의 긴장감도 그런 어이없는 현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995. 7, 17
아침 일찍 버스 편으로 HALONG BAY로 떠났다. 거리로는 두어 시간 걸리겠지만 길이 나쁘고 교통질서가 없는 산만한 도로여서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서너 번이나 바지선으로 강을 건너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렸다. 배턱마다에서는 거지들과 장사꾼 소녀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어느 점잖게 보이는 아줌마가 자기의 어린 자식을 구걸시키는 모습은 가엾다 못해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다.
하롱베이는 중국의 계림을 능가했다. 바다에 떠 있는 3000여개의 작은 섬들, 섬이라기보다 둥둥 떠 있는 바위 덩어리 같았다. 기암괴석 틈새에 이끼처럼 낀 나무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탄성!
배를 타고 유람에 들어갔다. 30여 톤의 어선처럼 생긴 목선이었다. 배를 탄 채 동굴 속을 들어가니 신비스러웠다. 배는 작은 모래톱 근처에 정박했다. 수영하기 위해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수영복이 없는데 젊은 신부가 자기 남편 것을 하나 빌려주었다. 모두 내가 바다에 뛰어내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침 도마뱀 술을 한잔 마신 뒤라 내 기분은 달뜬 상태였다.
아까 모래톱에 내린 걸로만 착각하고 막 뛰어내리는데 바닷물이 퍼렇다. 그래도 그냥 빠졌다. 배가 그냥 떠나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침착하게 수영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금방 두 사람이 뛰어내려 나를 구출했다.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다.
온종일 모든 화제는 나에 대한 것이었다. 저녁에는 내가 술을 한턱 냈다. 그런데 내게 팬티를 빌려준 젊은 부부가 안 보였다. 싸운 모양이었다. 신랑이 자기네가 수영복을 빌려준 바람에 익사할 뻔했다며 미안해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음식을 싸서 호텔로 돌아와 그들 방을 노크했지만 없었다. 문 앞에다 메모지와 함께 음식을 놓아두었다.
1995. 7. 18
캄보디아 시옌림에 도착하여 세계적인 명소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오랜 시간 관람했다. 나는 조각품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그 규모와 섬세함에서 공포감이 느껴질 만큼 신앙심이 경이로웠다. .
코키리테라스, 바욘, 프놈바켕, 바라이호수 등을 관광하고 호텔에 투했다.
1995. 7. 19
조식 후 프놈펜으로 출발했다. 실버파고다, 왕궁을 둘러보고, 폴포트 정권의 학살현장인 킬링필드를 방문하여 해골이 쌓인 참상을 목격하고 고문현장을 둘러보았다.
해물 바베큐로 저녁을 때우고 호텔에 들었다.
1995. 7. 20
프놈펜 시내를 관광하고 다시 호치민으로 출발했다. 도강하기 위해 버스가 뱃턱에 정지할 무렵 젊은이들 측에서 웅성거렸다. 알고 보니 지난번 하롱베이에서 나를 바다에서 구출하기 위해 맨 먼저 뛰어든 청년이었다.
드디어 호치민 시내에 도착했다. 노틀담성당, 통일궁, 틴하우사찰, 차이나타운, 벤탄시장 등을 구경했다. 사이공강 유람선에서 식사하면서 디너쇼를 보았다.
밤에는 맛이 없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2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쇼핑했다. 호치민 중심가였다. 나는 그림을 사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 값 1불을 주고 나오는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애가 손을 내밀었다. 무심결에 5000 dong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1불에 10,000 동인데 최소한 5000동은 주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그 또래의 여자애가 아주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잔돈이 없어 200동을 주었는데도 고맙다는 인사를 차리며 밖으로 나간다. 나는 얼른 그놈을 불러 같이 사진을 찍고 1불 짜리를 더 주었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가 꼭 내 강아지 나래를 닮았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서울행 여객기에 올랐다.
1995. 7. 29
마당 구획선을 정하고 주목을 심는 걸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흰 두루미 한 마리가 우리집 연못에 앉았다가 인기척에 날아간다. 점심을 먹고 나니 그 두루미는 계곡 나무 위에 외롭게 앉아 있다.
어저께는 아내 생일이어서 나래네가 이틀 밤 자고 갔다. 나래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만 맴돌았다. 나는 그놈을 자연과 동화시키려고 자꾸 밖으로 데리고 나깄다.
1995. 8. 10
김채원 소설가는 내『늰 내 각시더』와『인간의 시간』을 읽고 잘 썼다며 특히 작가의 말을 읽을 때는 어느 외국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이 없고 나에게 한 말도 헤어질 때 계단을 내려오면서 살짝 한 말이었다. 참으로 매력있는 여자다.
1995. 8. 18
서울대에서 조남현 교수를 만났다. 연구실에 들렀다가 둘이 곧바로 구내식당 양식부로 갔다. 그는 현재 고려원에서 발간하는 계간지의 주간을 맞고 있는데 나보고 단편을 써 오라고 한다. 특히 농촌문학작품을 선호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두 소설집 『늰 내 각시더』와『인간의 시간』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열심히 쓰라고 한다. 그러면서 권영민 교수에게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다. 권 교수 연구실은 조 교수의 연구실과 마주보고 있었다.
(훗날 서울대 권 교수는 소나기마을 행사에 참석했다가 나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살짝 빠져나갔다. 바빠서 먼저 떠났겠지 했는데 나중에 나한테 전하를 주었다. 우리 잔아박물관에 와 있다고 한다. 깜짝 놀란 나는 즉시 박물관으로 차를 몰았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1995. 8. 26
엄청난 비다. 벌써 달포를 퍼붓는 비. 양수리와 문호리간 도로가 침수되어 목왕리로 돌아다닌다. 가루게 마을 앞 도로도 침수되었다. 그 바람에 서종 양수리간 도로공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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