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83회)

충남시대 2025. 8. 26. 17:38

서울에서 성수대교 붕괴사건 터지다


1994. 10. 14

  우리 부부는 소설가협회 이사장 등 30여 명의 회원들과 대마도에 다녀왔다. 대마도 시장의 저녁 대접으로 회를 실컷 먹었다.

1994. 10. 21

  서울에서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터졌다. 차가 추락하고 수장되는 바람에 32명이 사망했다.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하고, 시내버스 한 대는 차체가 뒤집혀 추락하는 바람에 학생과 시민 등 승객 31명 중 29명이 사망했다.

  황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과 부이사장 성춘복 시인으로부터『인간의 시간』잘 읽었다는 전화와 편지가 왔다. 
  지하철 간이 판매대에도 내『인간의 시간』이 꽂혀 있다.

1994. 10. 29

  <박영준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내가 사회를 봤다. 관례상 지난해 상을 받은 사람이 사회를 보게 되었다. 많은 문인들이 참석했다. 심사위원은 김양수, 윤병로, 신동환인데 특히 성균관대 윤병로 교수는 내 작품을 유독 좋아한다.
  식이 끝나자 간단히 다과회를 열고, 이어서 <영채(안옥희) 추모시 낭송회>가 있었다. 나는 3부 사회를 사양하고, 현 목사를 시켰다. 모처럼 그녀의 가족들을 만났다. 이근배 시인이 추도시를 낭송했다. 하용조 목사는 구원은 역동적이라고 했다. 

1994. 10. 30

  그동안 서울에서 춘천옥 일을 처리하고 <조선일보> 박 기자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문창과 교수들과 식사했다. 모주 내 작품에 대한 칭찬들이었다.
  <현대문학> 11월호에 내 작품 평이 2곳에 실려 있다. 인간의 시간』은 한수산, 구효서 작품과 함께 평이 실렸는데 내 작품을 유별나게 다뤘다. 나도 모르는 김성렬이란 평론가가 썼는데 알고 보니 포천에 있는 대진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실력파였다. 그는 훗날 나를 대진대학교에 3차례나 초대하여 문학강연을 시켰다. 

  ..... 아마 애정소설로서 이런 유의 전개는 우리 소설에서 드문 예가 아닌가 한다. 
  ..... 마치 오페라 <카르멘>의 돈 호세를 연상케 한다. 창녀 카르멘에 대한 집념 때문에 정부와 자신의 비극적 종말로 .....

  황선경 교수 자매와 학과장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처녀인 그녀는 직업윤리를 강의하고 있는데 그녀는 자기의 강의가 경직되었냐고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겸손을 떨었다. 
  “학생이 어떻게 교수의 강의를 평할 수 있어요?”
  
1994. 12. 14

  문호리 새집에서 처음으로 조용한 시간을 가져본다. 멀리 북한강의 물너울과 갈대가 나붓끼는 모습이 잊었던 시간을 찾게해준다. 닁큼 기억되지 않는 어느 장면이다. 고향의 그것 같기도 하고, 저승에서 본 듯한 경관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해 있는가?

  후기구조주의에 열의를 보인 경희대 권택영 교수가 내 작품에서 호기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1994. 12. 17

  요즘 평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재밌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소설작법을 강의하는 임헌영씨가 수강생 부인들 4명과 문호리 집에 왔다. 내 작품『인간의 시간』을 읽고 오라고 숙제를 냈단다. 선발대로 온 셈이고, 오는 6일에는  모든 수강생이 찾아와 우리 집에서 야외 학습을 한다며. 임씨는 나보고 큰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1994. 12. 31

  옛날 일기장을 보았다. 어지간히 공부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김양수 씨에게 전화했다. 내 69년도 일기장에 불후성의 문학에 대해 적혀 있었다.
  권택영 경희대교수한테 전화가 왔다. 문호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그녀의 글이 참 좋다. 요즘 그녀의 라캉에 대한 저서『욕망이론』을 읽고 있다.

  1994년도 마지막에 지난 한 해를 생각해본다. 베스트셀러 책을 내고, 집을 짓고, 학교에 다니게 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어쨌든 보람 있는 한 해였다.

1995. 1. 1

  문호리 집에서 일기가 시작된다. 
  늦깎이 작가인 나는 한 해를 10년처럼 아껴 사용해야 한다. 

1995. 1. 3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아줌마는 집에 가고, 아내는 유라가 입원한 산부인과에 가 있고, 나 혼자 새 집에서 북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유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다. 애가 너무 커서(5.6 키로) 수술했단다. 정 대위도 휴가를 얻어 병원에 가 있다. 

1995. 1. 7

  TV에서 러시아 영화 <백야의 연인들>을 감상했다. 지금 알마타에 사는 박미하일이 서울에 와 있지만 바빠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알마타의 추억이 떠오른다.
   “인생은 광기다. 최선은 작아도 좋다.”        - <백야의 연인들> 마지막 자막

1995. 1. 10. 

  미래학자로 <제3 물결>을 쓴 앨빈 토플러는 앞으로 식민주의나 문화종속이 미디어 통신의 보편화로 사라질 것이며 첨단 미디어에 동참하지 않을 땐 낙오된다. 그의 주장은 문화충돌을 예견한 헌팅턴의 주장과 상충된다.

1995. 1. 18  

  오늘 집 앞 땅 830평을 평당 22만원에 샀다. 조규원씨의 땅인데 집을 지을 때 진입로 편의를 봐준 사람이라 값을 평당 26만 원으로 올려주려 했지만 오히려 평당 2만원씩 깎아주겠다고 한다. 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우리 땅을 둘러싼 관우회 땅 11만평은 평당 2만원도 못 미치는 값인데 서후리에서 장편『인간의 시간』을 쓰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원고를 넘기고 나니 이미 팔린 상태였다. (현재 평당 300만원이니 소설 한 권 마무리하는 바람에 수천억을 놓친 셈이다.) 

1995 1. 19
  
  문호리 집 정원공사에 하루 종일 흙을 받았다. 25톤 덤프트럭으로 350대 이상 들어갔다.

1995. 1. 22

  오늘부터 11박 12일간 멕시코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시이나항공 편으로 아침 10시 40분에 LA에 도착하여 공항 영접 후 한인타운에서 중식을 들고 호텔 첵크 인. 
  
1995. 1. 23

  멕시코항공 편으로 LA출발하여 멕시코의 심장부인 소칼로(중앙광장, 또는 헌법광장)를 찾았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가 있던 이곳은 14세기 중엽 아즈텍족이 가난한 유랑민 시절 부족의 신 부탁대로 “독수리가 사보텐 위에 내려앉아 뱀을 먹고 있는 곳”에 신전과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다. 
  소칼로 주변에 있는 240년 만에 완공된 세계최대규모의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을 비롯하여 대통령 집무실인 국립궁전과 산타도밍고광장을 관광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학생운동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는 뜰란떼로고를 지나, 인디오의 앞치마에 현시(顯示)했다는 과달루페 성녀를 기념하는 성당에 도착, 무릎을 꿇고 기어드는 인디오들의 한을 읽었다. 관광 후에는 초호화 시설을 갖춘 콜로니얼호텔에 투숙했다.

1995. 1. 24

  조식 후 버스 편으로 갈색의 성모가 모셔진 과탈루페 사원, 중앙아메리카 역사상 최대규모인 도시국가 테오티와칸을 방문하여 50년에 걸쳐 축조한 달과 태양의 피라미드 신전, 죽은자들의 거리, 깃털 달린 뱀, 케찰파팔로틀 궁전, 멕시코국립박물관 등을 관람하고 가리발디광장에서 멕시코 전통민속춤과 마리아치음악을 감상했다. 
  여기에서 테오티와칸은 중앙아메리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도시국가로 세워졌는데 BC 2세기부터 AD 7세기에 걸쳐 번영했던 도시로 전성기였던 5세기에는 10만 명이 거주한 곳으로 거대한 제사문화를 형성했다. 올메카문명이 쇠퇴하자 소규모의 제사터를 갖게 되었지만 그 후 급격히 발전하여 멕시코의 종교적 중심지가 된다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