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에서 온 수도사들의 시바 상징 링거
규모가 웅장하고 최첨단적이고 상업적 매너가 신선한 다른 나라 국제공항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공항이다. 거대한 현대문명의 파고에 가랑잎만한 절개로나마 원시의 정조를 지키겠다는 사뭇 앙징스런 고집덩어리랄까. 그래서인지 입국수속을 밟기 위해 길게 늘어선 코쟁이들의 발길을 무성의로 주춤거리게 하는 세관원들의 태도가 바가지를 매달아놓은 듯한 화장실 소변기의 가난기 정도로 이해해줘야 될는지.....
아니다.
그들은 구정물에서 더러움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바슈바티 사원 담 밑으로 흐르는 하수천을 오물로 보지 않고 성스러운 물줄기인 갠지스강의 상류로 여겼다. 그 맑디맑고 무구한 세월 속에 지친 육신을 씻어주며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성수로 보였던 것이다.
마침 시체를 태우고 있었다. 대기하는 임종자도 있다고 한다. 마치 귀중한 행사에 참석하려고 행사장 인근 숙박업소에서 투숙하듯 힌두교도들은 행복한 죽음(안심입명)을 맞기 위해 바그마티 냇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1996. 1. 16
아침 일찍 안나푸르나 호텔을 나와 버스 편으로 포카라로 떠났다. 7시간 동안의 드라이브다. 거리가 멀다기보다 시속 40km도 못 미치는 완속으로 달릴 만큼 길이 험해서였다.
서너 시간쯤 달린 끝에 피시링에서 레프팅을 하게 되었다. 궂은비만 아니면 너무 멋있을 코스였다.
모두 부위복과 헬멧을 쓰고 고무보트에 올라 노를 잡았다. 비를 맞으니 몸이 떨렸다. 더욱 험한 코스를 타고 싶었다. 두 시간여의 레프팅 끝에 강가에 내려 길가 식당에서 준비해간 김밥을 먹었다. (나는 아내와 다른 보트를 탔었다.) 옷을 갈아입고, 빗속을 달리는 버스에 앉아 간간이 나타나는 부켄베리아꽃을 보며, 항상 낯설게만 느껴지는 들과 산을 본다.
어둑신해서야 포카라에 도착했다. 네팔 제2의 도시이며 왕의 별장이었던 곳을 호텔로 개조했다고 한다, 호수를 건너 단층 방갈로와 같은 호텔에 도착. 홀 중앙에 놓인 페치카 앞좌석 화덕불에 몸을 녹였다. 방이 정해지고, 목욕 중에 찬물이 나와 기분이 상한 아내를 혼자 두고 식당에 나갔는데, 김주영이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어께에 수건을 둘렀다고 창피를 주어 홧김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시팔!” 하고 대들었다. 김주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자리에 와 앉으라하여 참았다. 서로 미안하다는 말이 오갔다. 술판이 벌어지고 밤늦도록 떠들었다.
1996. 2. 2
태안에서 안면도 땅 잔금을 받아와 문호리 870-4번지 땅 중도금으로 처리했다. 오늘 준섭 아범을 데리고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대학교에서 합격연락이 왔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방송통신대에 들어갈까 고심하다가 일단 차를 몰았던 것이다. 학교에 도착하여 신덕용 교수를 만나 내 의중을 비치고 학장실에 들어가니 조태일 학장이 서울에 가지도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차마 거절을 못하고 등록해버렸다.
1996. 2. 3
동국대 홍기삼 교수(훗날 동국대 총장)는 내가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갈 줄 알고 있다. 그는 대학원생들을 양평 우리 집에 여러 번 데려와 수업을 해왔다.
“너희들 잔아 선생님 댁에 와야 박사학위 받을 수 있다.”
홍 교수는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중앙대 이동하 교수는 자기네 예술대학원에 들어오라고 한다.
1996. 2. 4
아내가 중앙병원에서 검진결과를 듣고, 자궁이 의심스러워 3개월 뒤에 다시 검사해얀다고, 유방검사도 재검하라고, 만약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삶은 끝이다.
1996. 2. 25
<문예중앙>에 내 단편「속도에 관하여」가 실렸다. 거기에 인간의 원초적인, 혹은 살아가면서 이래저래 맺힌 한을 풀어가는 굵직한 서사성에 향토적 문체와 압축된 서정성을 지향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
내 박사과정 동료들이「속도에 관하여」를 읽고 신선한 작품이라고 야단이다. 특히 이정희 동료는 선생님의 대표작 같다고 평했다.
1996. 3. 31
문호리 집으로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찾아왔다. 둘이서 내 서재에 앉아 이야기하다가 내 옷으로 갈아입고 뒷산으로 해서 문호리 소재지를 한 바퀴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선생님은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고 했다.
1996. 4. 1
광주에서 서울대 조남현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따뜻이 대하며 중편이나 단편을 써 보내라고 한다.
1996. 4. 17
밤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신덕룡, 배봉기, 이은봉 교수와 술집에(닭 집) 갔는데 늦게 조태일 학장이 4학년 여학생들을 데리고 왔다. 우리는 그냥 방에서 들고 조 학장은 바깥에서 들고 있는데 조학장이 학생들에게 “우리 과에 들어오신 유명한 작가시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1996. 4. 18
어젯밤 숙취 탓에 흐릿한 머리로 교단에 섰다. 유순영 교수가 자기 소설연습시간을 내게 대신 맞겼던 것이다.
40여명(야간반)의 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 내 강의를 경청했다. 일부 학생들은 노트에 적기도 했다. 눈동자가 한 치도 흔들리지 않고 내 눈을 응시했다. 너무 피드백이 좋았다.
2부로 넘어가, 내 작품 개요를 시작했다. 칠판에 제목을 쓰고 인물을 체험인물과 실존인물로 구분하여 명시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내 달변은 궤도는 달리고 있었다.
주제, 구성, 문장론을 강의할 때는 담당 교수의 체면을 참작해서 조심스레 엮어나갔다. 학생들의 경청 열기는 더해갔다.
내 강의가 끝나자 유 교수의 나에 대한 설명과 칭찬이 이어졌다. 극적인 순간순간이었다. 그때 내 옆자리의 수녀가 휴지를 내밀었다. 복도로 나온 학생들이 나를 둘러싸며 내 작품을 서점에서 사겠다고 한다. 나는 그냥 나눠주겠다고 했다. 어느 아주머니 학생은 내 강의가 교수들 강의보다 몇 배 좋았다며 손을 내밀었다.
1996. 5. 15
새 작품을 구상해보았다. 물질주의와 새 정신주의. 모든 가치관과 종교 형태가 무너지고, 자연으로만 남는다. 진정한 도가사상이 구현된다.
비극적 세계관의 깨달음과 실천성이 고통이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구원책을 시도하는 것이 고통이다. 여기에서 구원책은 ‘버림’에 대한 각성이다. 버림은 자연회귀요 그 자연회귀가 Humanism이다. 자연은 변함없는 신의가 있다. 이것은 죄와 야비론과 맞물린다.
1996. 5. 16
낮 수업이 끝나고 문학장르론을 강의하는 이화경(37) 교수와 교문 밖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선생님 얼굴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눈빛 때문이죠. 그 고통스런 눈빛!”
이화경 교수의 말이었다.
“제 강의가 끝나는 동안만 제가 교수일 뿐, 그 이후는 선생님이 제 스승이세요.”
그녀는 또 내 사유를 체계화시킬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뒷받침 해 주겠다고 한다. 내 리포트「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을 읽었는데 대단하시다며 “의지태와 의미와의 관계” 설정은 좋은 착상이라고 말했다.
저녁에는 광주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가 주최하는 광주민주항쟁 6주년기념 “오월문학제”(신명아트센터)에 다녀왔다.
1996. 5. 19
양구에서 오신 장모님 생신이라 양구 식구들과 가리봉 식구들 32명이 모여 북적댔다.
1996. 5. 22
희곡 담당 배 교수는 육화된 강의를 해서 좋다.
“선생님이 제출하신 희곡분석「천호동 사거리」를 읽고 탄복했어요.”
1996, 6. 5
모처럼 시를 써보았다.
「하얀 오월」
광복촌 발치에 철길이 간다.
철길 따라 아스팔트 외길이 간다.
민들레 패랭이 핀 외길따라 망월동 사내
꽃처럼 걸어온다.
가슴에는 마음보다 붉은 노을 달고
사랑보다 하얀 오월 밟으며
아이들 학교에 가듯,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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