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포트 정권의 학살현장인 킬링필드
(88회에 이어서)
공항에서 일찍 설렁탕을 먹고 나니 그제서야 일행이 모여든다. 정을병 이사장, 구인환 사울대 교수 등이 나를 반긴다. 9시에 출발한 베트남 여객기는 5시간 반 만에 호치민시(사이공)에 도착했다. 지난번 김승옥 등과 하노이에는 갔었지만 남부는 처음이다.
서로 죽이던 사이가 경제협력이란 미명 아래 국교를 트고 배트남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들어온다.
사이공 공항에서 30여분 뒤에 푸놈펜으로 직행. 50분 만에 도착하니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불볕을 쏟아낸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청사 밖으로 나가 포장마차에서 파인애플을 사먹었다.
1996. 11. 12
시엔림 공항에 도착하여 벅세이 참크롱, 앙코돔 남문, 베이온, 밥혼, 필민아카스, 레프왕 테라스, 앙코르유적지 관람.
1996. 11. 13
뽈레이 유적지와 반데이크데이를 관람하고 프놈펜으로 향하여 중식 후 시내를 관광했다. 폴포트 정권의 학살현장인 칼링필드를 탐방하고 고문수용소를 관람했다. 어린 애기를 나무통에 타작하듯 후려쳐 죽였다니!
1996. 11. 14
프놈펜을 출발하여 호치민 도착 후 노틀담성당, 통일궁, 틴하우 사찰, 차이나타운, 벤탄시장을 둘러보고, 사이공강 유람선에서 식사 후 디너쇼 구경하다.
이튿날 호치민 출발하여 서울 도착.
1996. 11. 25
광주에서 5년 이상 탄 그렌저(2.4)를 도난당했다. 그 사실을 알리려고 덕소 태호에게 전화했더니 나래 에미 말이 안 받겠다고 문을 쾅 닫았단다. 끝내 괴롬을 주는 자식. 모두 팔아서 쓰다 죽어야겠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가망이 없다. 교수들이 위로해준다.
1997. 1. 1
새해부터 담배를 끊었다.
폭설이다. 아내가 군산에서 하룻밤 자고 유라와 준영이를 데리고 왔다. 차가 밀려 밤늦게야 도착했다.
앞으로 21C에는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시대라고 한다. 첨단과학과 첨단놀이(예술)가 살이의 지침이 된다고 한다. 여성의 영역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1997. 1. 12
오늘 아침 처음으로 뒷산 (사릿재) 정상에 올랐다. 아내는 정상 50M 아래까지 왔다가 주저앉았다. 급경사가 미끄럽다.
매일 노동법개정과 안기부법 개정으로 노동자들 데모다. 대한민국 산업이 마비될 정도다.
풍납동 현대아산병원에서 종합검진결과, 거의 모든 게 정상이다. GTP도 144에서 51로 줄었다. 그동안 술을 끊고 어쩌다 포도주 1잔씩만 든 결과다. 위에 약간 염증이 있다고.
1997. 1. 15
조태일 예술대 학장과 통화했다. 광주대학교가 지방지 신문에 8명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축하기분이라고 한다.
“잔아 선생님 덕분이죠.”
조 학장의 말이다. TV․신문에서도 광주대학교가 떴다고 야단이란다.
1997. 1. 16
고려대학교 최동호 교수가 박사학위 취득자와 석사학위 취득자 15명과 함께 문호리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갔다. 점잖은 젊은이들이다. 추운데도 밖에서 캠프화이어까지 했다. 거시담론을 나누기도 했다.
1997. 1. 21
아내를 광주대에 보내기로 작정했다.
부부가 함께 지내면 된다.
유라가 상성의료원 진료 차 군산에서 올라왔다.
1997. 1. 31
나는 생명사상에 대해 썼다.
하루단위로 바쁘게 살아야 한다. 젊어서 대학에 못 간 것이 내 인생의 파괴 화근이다. 대학은 그 층위에 끼게 하는 자극제였다. 그게 현실이다.
장흥 고향에 내려가 지내는 한승원 작가와 통화했다. 유라 결혼 축의금을 보내준 성의에 대한 답전이었다.
“서울에서 어울릴 필요 없어요. 경찰체험 작품에 천착해요. 한번 장흥에 놀러와요.”
한승원의 말이었다. (훗날 그의 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다.)
1997. 2. 7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유라네가 정 서방이 3일 휴가를 얻어 올라왔다. 대구 사돈네 부부가 미국에서 사온 내 시계와 아내의 화장품을 유라 편에 보내주었다.
유라네와 춘천 댐으로 회를 먹으러 다녀왔다. 태호네와 함께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놈은 아예 내일 설날 제사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다. 점점 불효가 심해진다. 인간이 변할 줄을 모른다.
준영이가 영어 알파벳을 달달 왼다. 그놈을 꼭 껴안아주었다.
1997. 2. 8
설날이다. 테호네는 끝내 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유라가 몇차례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고.
제사상에 나 혼자 준영이를 테리고 절했다. 병풍도 치지 않았다. 솟구치는 눈물을 사위 앞이라 억지로 참았다. 유라네 세 식구의 세배를 받고 아침을 먹었다.
1997. 2. 17
대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무기징역과 2200억 원의 추징금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다.
1997. 2. 27
나래가 내 전화를 받으며 운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가슴이 찢어진다. 자식놈이 기어이 손주까지 멍들게 하는구나.
최동호 교수 부부가 다녀갔다.
1997. 3. 3
아내가 광주대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강당에서 거행하는 입학식에 참석했다. 아내가 학력 콤플렉스를 푸는 날이다. 내가 아내 선배인 셈이다
입학식을 마치고 나는 아내와 함께 교수들과 점심을 먹었다. 참석한 교수는 문순태, 유순영, 김은수, 신덕용, 이은봉, 배봉기 등 6명이다,
1997. 3. 5
아침에 서울대 조남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즉시 받았다.
“원고 잘 받았습니다. 이번 여름호에 내기로 했습니다.”
조 교수의 목소리가 흥분된 톤이었다. 나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다른 데에 주기로 약속했지만 교수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 송고했노라고 말했다.
“공부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대단한 열성이십니다.”
조 교수의 말이었다.
중앙일보 이경철 문화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소설과 사상>에 실리게 된 걸 이해해달라고 했다. <문예중앙> 여름호에 내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김우연(문예중앙)과 원고 받으러 가기로 했는데, 너무 잘됐어요.”
조남현 교수에게 원고 주길 잘했다는 말이었다. 이 부장은 내 원고를 미리 보았는데 모처럼 좋은 작품을 읽었노라고 말했었다.
나와 세계와의 틈새는 고통이다. 그것의 막을 통해서만 나는 바깥을 볼 수 있다.
신 교수실에서 아내와 차를 마셨다. 그의 저서『초록생명의 길』을 받았다. 내가 시에 대해 걱정하자 “조태일 교수님이, 선생님의 시가 의외로 좋다고 하던데요.” 한다.
지난 달 28일 강남에서 고급 책장을 여러 개 맞추어 책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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