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카의 유적 마추피추와 티티카카 호수
1997. 3. 15
모처럼 용산고 동창 친목회인 ‘용진회’ 모임에 나갔다. 광화문에서 만났다. 내가 설립하고 회장까지 맡았으면서도 그동안 학교 수업 때문에 소홀했는데 이무근 서울대 교수가 미국 교환교수로 1년간 다녀온 핑계로 모인 것이다. 김용 아나운서도 오랜만에 나왔다. 그는 MBC 아카데미 사장으로 있었다. 그의 아내 효태 엄마가 밥상에서 친절하게도 북어찜과 고기를 뜯어 내게 주었다. 언제나 맑은 여자다. 이무근 교수 부인도 항상 내 말에만 웃음을 담고. 내 신선한 정서에 친화를 느꼈다. 미국 생활에서 얼굴이 탔다.
이 시간 아내는 삼성의료원에서 유라를 돌보고 있다. 준영이가 수다를 떨어 잠시도 비울 수 없었다.
1997. 3. 13
오늘 유라가 삼성의료원에서 딸을 낳았다. 내 뺨에 애기 얼굴을 댔다. 어릴 적 지혜를 닮았다. 아내가 신기해한다. 정서방도 “제 계획대로 잘 돼 간다.”고 한다. 아들 딸 순서를 바란 모양이었다. 나는 호사다마를 말하고 항상 조심하자고 했다.
1997. 3. 20
나는 문체에서도 다양하게 쓸 수밖에 없다. 꼭 내 인생살이와 같다. 작품에서의 서정적 문체, 그 중에서도 심미저 환상문체와 대중적 문체. 그리고 논술문체 등 다양하다. 그처럼 내 글은 훨훨 날아다닌다.
인간은 본시 환상체이다. 종교나 철학적 의미라기보다 생물학적으로 그렇다.
준영이가 더 귀염 받는 동생을 질투한다. 피아제가 말했던가, 세살 때 인격 형성이 완료된다고.
1997. 3. 26
마지막 수업인 시창작연습을 끝내고 책을 꾸리는데 뒷자리로 조태일 학장이 찾아와 “수업 끝났죠?” 한다. 그렇다고 하니 손짓으로 불러낸다. 학장실에 들렀다가 술집으로 갔다. 오랜만의 자리였다. 옆에는 학생총회 부회장 장수현이 동석했다.
어제 밤에는 학생회 간부들이 모두 내 방에 모였다.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시며 주로 내가 떠들었다.
“2년 전 선생님이 광주대에 오실 때 유명한 분이 우리학교에 오신다기에 선생님에 대한 작가론을 쓰고 싶었어요.”
학생회 부회장의 말이었다.
1997. 4. 1
인간은 점점 구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신비성을 풀어가는 게 아니라 신비성을 보태줄 뿐이다. 사실 神秘는 우주의 신비처럼 사물의 本性이다. 그것을 사람은 삶의 관성에 젖어오며 일상으로 여기에 된 것이다. 그걸 또한 지식이라고도 여겼다. 이제 지식은 기술임이 판명되고 있다. 이제 삶의 관성은 해체되었다.
1997. 4. 3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구체성을 잃는다는 내 생각에 우연히 마루야마겐지의「달에 울다」를 읽게 된다. 그는 긴장(시)과 느슨(소설) 사이의 자리매김으로 詩小說을 택했지만 나는 인간의 추상성에서 시작했다. 현재와 과거는 동일선상에 놓인 메비우스의 띠.
1997. 4. 10
탱화를 전공한 고영을 화실에 들러 100만원 짜리 ‘천수천안’을 샀다.. 프랑스에서도 호평을 받은 작가인데 ‘불국토’와 같은 작품은 종교적 색채가 짙고 ‘천수천안’은 예술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마음에 끌렸다.
요즘 학생들(특히 남학생)과 어울려 담론을 즐긴다. 어젯밤에도 수업 끝나고 1시반까지 떠들었다. 이성민과 김윤성은 채만식을 놓고 싸움까지 벌인다. 내 말에 모두 흥분했는데 윤성이는 내 책을 채만식 작품과 나란히 꽂아두었다고 한다.
나는 아무 관심없이「끌려가는 세계」를 썼는데 우연찮게도「처용가」나 날개」의 원관념과 유사한데 놀랐다고 한다.
1997. 4. 23
비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고대하던 페루와 아마존 탐방 여행이라 동참할 수밖에 없다. 미국 시간 (L.A) 2시 10분. 공항에 내리니 엘살바도르 태생 청년이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서 있다가 나를 찾는다. 그의 안내로 체크를 끝내고 공항입구에 있는 컨티넨탈호텔에 억류당한다. 억류 장소인 8층에는 감시원이 문 앞에 의자를 놓고 감시중이다.
사무실로 쓰는 방 맞은편 872호실에 배정받았다. 마침 책임자가 한국인이어서 다행이었다. 내 처지와 같은 일행은 7명인데 그 중에 콜롬비아로 보따리 장사하는 한국인 아줌마도 끼어 있는데 그녀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나는 책임자 윤에게 아래층 로비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법이 그래서 불가라고 한다.
내실은 일반 호텔 그대로였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글을 썼다. 어제 김포에서 탑승할 때 항공사 직원이 회수했던 내 여권과 탑승권이 든 누런 봉투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기다리던 엘살바도르 사내가 들고 있었다. 그가 누런 봉투를 쭉 째니 여권, 티켓, 기타 서류가 나왔다. 그의 안내를 받아 세관 옆 휴게실로 들어갔다. 미국 비자 없이 다니려니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아야 이민국 대행업을 하는 회사가 살찐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침 일찍 LA를 출발하여 10시 40분에 페루 수도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리마 문인협회 공식행사에 참석하고 대사관저 만찬에도 참석했다. 대사 부인이 차린 저녁이 맞갈스러웠다.
1997. 4. 24
호텔에서 조식 후 전용버스 편으로 리마를 출발하여 잉카인들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도착하여 코라칸차, 12각의 돌, 로렛토 거리, 아르마스 광장, 중앙시장, 싹사이와만 유적, 켄코켄코 유적, 푸카푸카라 유적, 탐보마차이 유적을 관광 후 호텔 AMERIKA INN에 투숙했다.
페루는 BC 2000년경부터 티와누코 문명을 비롯하여 나스카, 모치카, 치무, 와리 등의 문명이 등장하였고, 13세기에는 푸스코를 거점으로 케추아족들이 대제국을 형성하였으나 1532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846년에야 독립했다.
1997. 4. 25
아침 6시 50분에 CUSCO의 산페트로역을 출발한 협궤열차는 마추피추를 향했다. 철길을 따라 옥수수, 감자, 고구마의 원산지 고원이 펼쳐졌다. 태백능선 통리역과 도계역 사이에 있는 홍정역처럼 지그재그로 언덕을 오르니 멀리 만년설산이 보인다. 기차가 몸살 날 만큼 흔들린다.
드디어 360년간 잊혀온 잉카의 공중도시 맞추피추에 올라 샅샅이 뒤져보았다. 1911년 하이럼 빙검이 발견한 맞추피추는 세계7대 불가사의한 유적지로 인구 2만 명가량이 살 수 있고 완전 자급자족하는 성체도시였다. 언제 건설되고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잉카 8대왕 때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데, 한 개의 무덤에 180여개의 시체가 묻혀있다.
날씨는 화창한데 고산병으로 머리가 뽀개질것만 같다. 하지만 억지로 산에 올랐다. 돌을 다듬어 모서리를 어긋나게 맞춘 석공의 지혜가 놀랍다. 오후에는 푸스코로 귀환하여 석식 후 호텔에 투숙했다.
1997. 4. 26
드디어 안테스 산맥을 종단하게 되었다. 푸스코에서 고산열차 편으로 잉카의 발생지였던 티티카카 호반의 도시 푸노(해발 3827m)를 향해 달렸다. 자그마치 11시간 동안 안데스산맥의 정상을 달리는데 언뜻언뜻 얼굴을 내미는 만년설산의 절경에 소름이 돋아난다. 만년설산 기슭은 온통 목초지였다. 풀은 거의가 한가지인데 풀이름이 ‘이추’ 라고 한다. 철길 양측으로 펼쳐진 그 목초지에 인디오의 초가가 듬성듬성 박혀있는데 풀을 뜯는 가축들이 정겹다. 그러니까 산맥이 히말리아나 다른 산맥들처럼 암벽이 칼날처럼 솟아있는 게 아니고 산맥 능선을 따라 분지 같은 너른 평원이 8000km 길이의 산맥을 따라 깔려있고 그 목초지 평원 가운데로 철길이 놓였다. 해발 3000m가 넘는 평원을 달리고 있으니 고산병 환자가 생겼다. 나도 머리가 아팠지만 산소통을 코에 대지는 않았다.
완행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랍시고 집이 두 세 채 뿐이다. 잠시 쉬었다가 출발한 열차는 라마 떼가 한가로이 이추를 뜯고 있는 늪지를 지나고 있다. 저기 산기슭 마을의 외딴집 담 안에 우뚝 우뚝 서있는 파란 침엽수 대여섯 그루. 온통 민둥산에 웬 반역인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추 풀 평원에 이따금 늪지가 질퍽하다. 앞으로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시냇물이 기차를 거슬러 흐르더니 어느새 기차를 따라 흐른다.
배낭을 짊어진 인디오의 모습은 안데스 고원의 ‘이치’ 풀을 닮았나보다. 자신을 안데스 고원에 동화시킨 착한 인종. 숨은 쉬는가? 노래는 부르는가? 울 줄은 아는가? 사람은 모두 울 줄을 아는데, 동양 사람도 서양 사람도 울 줄을 아는데,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인디오는 왜 울 줄을 모를까? 누더기를 걸치고 스페인계 백인의 종처럼 살면서도 울 줄 모르는 인디오! 초가지붕과 흙벽돌 속에서 웃음만 매달고 사는 인디오의 생활상이 가슴을 저민다. 처마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처럼 쇠스랑, 쟁기, 괭이, 삽, 갈퀴, 삼태기 따위는 없다. 안데스의 황량한 평원에 서있는 전봇대가 인디오의 돌무덤처럼 을씨년스럽다. 아무도 모르게 안데스 고원에 묻혀 미이라가 되고 싶다.
1997. 4. 27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티티카카 호수에 떠있는 우루스 섬을 관광했다. 나는 잉카 후예들과 어울려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샀다. 점심 후에는 프레잉카 시대의 시유스타니(석탑묘) 유적을 둘러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넓이가 8321㎢에 평균 수심이 184m인 남미에서 두 번째 넓은 우루스 섬, 해발 3874m 위에 잉카 형제 시조가 물속에서 태어난 티티카카 호수! 2000년 전 망코카팍과 그의 왕비가 된 누이동생 마마 요크료가 태양신의 계시로 태어나 잉카 시조가 된 티티카카 호수. 또또라라 갈대를 엮어 띄워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짓고 마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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