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1회)

충남시대 2025. 11. 4. 13:42

잔아(김용만) 소설가

 밀림속에 숨어사는 나체족 한 가구

개 대신 갈매기가 깍깍거리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장사판이 갈대 마당에 펼쳐졌다. 옷과 장난감 배와 질그릇 따위를 파는 인디오의 순해터진 눈빛, 그 눈으로 장사가 될까?
  장사는 관광객이 시켜주고 인디오는 갈매기처럼 날아와 앉아있을 뿐이다. 갈대로 만든 배로 관광객을 태워 200여개 남짓한 섬 둘레를 돌게도 한다. 멀리 푸노 시가지 쪽 작은 섬에 고급호텔이 보인다.

  밤늦게 쿠노에 도착하여 리마행 국내 여객기에 올랐다. 푸노를 이륙한 비행기는 고원과 설산으로 둘러싸인 건조한 평원에 기착한다. 백야 같은 불빛이 아름답다. 해발 2800m의 아레키파였다.

  잉카 트래킹 2만km. 그 길 때문에 스페인 기마군에게 점령당한 셈이다. 사실은 과테말라의 띠깔호수가 잉카 발상지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이다.

1997. 4. 28

  드디어 아마존 유역을 답사하게 되었다. 조식 후 항공편으로 리마를 출발했다. 가슴이 요통친다. 비행시간 40분 만에 고도를 낯춘 모양이다. 계속 구름 속을 날아간다. 아까 구름에 묻히기 전 언뜻 파란 산림이 비쳤으니 아마존 유역에 들어선 게 아닐까? 사막지대인 수도 LIMA를 출발하고부터는 붉은 산이 계속되었는데 안데스 산맥을 넘었으니 지금은 밀림 상공이 틀림없다.
  고도를 낮추자 구름 조각 사이로 파란 밀림이 보인다. 밀림 쪼가리보다 구름 쪼가리가 더 많다. 드디어 밀림 속에 꾸불꾸불한 아마존강이 보인다.   
  정글 속에 박혀있는 이퀴토스에 안착했다. 아마존강 상류에 위치한 이퀴토스는 에쿠와도르, 콜롬비아, 브라질과의 국경도시지만 정글 속 외딴 도시여서 감회가 새롭다. 인구는 25만 명에 고무생산이 유명하다. 찌뿌린 날씨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고 한다. 4~8월이 가을이고 10~3월이 봄 여름이란다. 동물원과 벨렘항의 수산시장에서 악어고기를 파는 좌판을 구경하고, 동물원도 둘러보고, 호숫가에서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 야구아 인디오 마을을 방문한 후에 고대하던 정글 트레킹에 들어갔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황토색이다.
  모터보드를 타고 밀림 속 인디오 촌으로 침투한다. 길이 물에 잠겨 도끼로 찍어넘긴 세크로피아 외나무다리를 여러 개 지나 인디오 촌에 당도했다. 관광 목적인 듯한 풀잎 움막인 COCAMERA. 원래 아보리전이라고도 하는 COCAMERA는 山이 높은 곳에 짓고 사는 집인데, 벌거벗은 인디오 가족 한 집만이 달랑 숨어 있었다. 가족은 동물 뼈가 매달린 활과 열매로 만든 목걸이를 팔고 있었다. 두 딸들은 제법 입술에 루즈까지 칠한 모습이다.
  나는 짐승 뼈로 장식한 활과 활촉을 샀다. 물건 값이 얼마냐고 물으면 고개만 끄덕거린다. 깎지 않고 10솔을 주니까 그냥 히히 웃는다. 손짓으로 가져가란다. 그들과 사진을 찍고 헤어지면서 한 개비 뿐인 담배를 피우는데 여남은 살도 안 된 어린이가 손을 내밀며 담배를 달라고 한다. 그때 구입한 활과 활촉은 현재 잔아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전용버스 안에서는 어느 젊은 화가가 볼펜으로 내게 삽화를 그려주었는데 그것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그만큼 순박한 인디오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위대한 예술행위였다.     

  나무를 좋아한 잔아야, 실컷 나무 처먹어라!

  뱃길로 1시간 쯤 달렸을까, 강변 밀림 속에 정박하여 안내받은 방갈로가 보였다. 숙소였다. 밤이 되자 아마존에 번개가 친다. 기어이 비가 내린다. 인디오들은 말 대신 휘파람 소리로 연락을 취한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그 방갈로에서 멧돼지 바비큐로 저녁을 들고 방갈로에서 모기에 뜯기며 회식이 열렸다. 나는 일찍 자리를 떴다. 이곳에까지 와서 밀림의 점막에 묻히지 못하고 서울 뒷골목에서처럼 떠들러대는 게 싫었다. 명색이 글 쓰는 작가들이 술에 취해 악악대는 추태라니!

  나무로 만든 회랑을 따라 램프가 켜져 있고 그 회랑을 통해 방갈로 숙소가 이어진다. 꼭 캠핑 온 기분이다. 전기도 없다. 하지만 여기는 아마존, 나는 여행 수첩을 들고 불가에 쭈그리고 앉아 시를 써본다. 야자수 잎새가 바람에 나부낀다. 새소리가 곱다. 

1997 4. 29

 이튿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어둑신할 무렵 램프로 길을 밝히며 보트에 올랐다. 20여 분쯤 달렸을까, 날이 밝아온다. 드넓은 아마존강 우거진 숲, 그 위에 비구름. 아 저 풀숲은 실체인가 환상인가! 강변에 듬성듬성 CABANA와 TAMBO가 보인다. 비어있는 집 같다.

  호텔식으로 조식 후 항공편으로 이퀴토스를 출발하여 리마에 도착했다. 라우니온 거리, 대통령궁, 카테드랄 산프란시스코 성당 등을 관람했다. 리마에는 박물관이 15개나 된다. 금속공예품이 가득한 박물관에서는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B.C 7세기에 뇌압수술을 받은 잉카족의 의술이었다. 흔하디흔한 잉카의 금과 고도의 세공술이 빛난다. ‘키프’라고 하는 결성문화인 끈 매듭문자가 경이롭다. 십진법으로 된 그 매듭으로 추수량, 인구증가량 등을 표시한다고.

A.D 500년경의 모치카 시대에는 짐승과 SEX할 만큼 성이 개방되어 있었다고 한다.  모든 부족을 통일한 게 INCAS 제국이다. 거리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가위춤을 구경했다. 페루는 남미의 축소판이었다.

1997. 4. 30

  PERU 수도 리마에서 어르헨티나 비행기로 10시간 만에 LA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트랩에서 미 이민국 위탁 회사의 직원이 나와 있었다. 서울에서 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내 가슴에는 주홍글씨와도 같은 동그란 파란색 딱지가 달려있다. 유색인종인 그 경비원과 함께 찾아간 곳은 특별구역인데 경찰관의 체크가 있을 때 다른 중국인 청년에게는 한참동안 묻었지만 내 패스포드를 보고는 2개월 오버한 것을 보고 “응”하고 고개를 흔든다. 속결로 통과괴어 경비원과 함께 짐을 찾으러 갔다. 내 짐만 달랑 남아 있는데 여자 직원이 지키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처리과정이었다. 모든 게 기계적이랄까. 10여명의 NO VISA 중에서 나 혼자만 콘티넨탈 호텔로 가게 되었다. 알고보니 소장인 윤치성이 특별히 나를 자기 회사로 픽업한 것이다. 지난번 페루로 떠날 때 묵었던 곳으로 내가 친절히 대해주고 그의 사무실에서 작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때문이었다. 착실한 젊은이었다. 암튼 마음이 놓였다. 

1997. 5. 1

  아침 일찍 경비원을 따라 공항으로 나왔다. 공항에서 그와 함께 빵을 먹고 나오는데 매니저 윤이 나를 찾아 공항까지 왔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가 내 비행기표를 받아 비즈니스 1번 석으로 바꿔다준다. 그는 전에 공항에서 근무하다 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뭘 사주고 싶었지만 거절하고 사라진다. 나는 드디어 LA에 친구를 둔 셈이다. 그것도 젊은 청년을. (9750 Arapurt Blvd, Suite867, Los Angeles, California 90045,) 
  과테말라 출신인 경비원은 자기 상관이 내게 한 짓을 보고 놀라며 비행기 안에까지 와서 정중히 인계한다. 비즈니스 석에 앉으니 나 혼자의 대접이 일행에게 미안했다. 스튜어디스가 샴페인을 한잔 따라준다. 역시 특석이 좋다.

1997. 6. 12

  아내가 야간 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집에 가지 못하고 혼자 장흥 한승원(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아버지) 집에 갔다.
  벌써 전화 약속은 돼 있으면서도 한 달 넘게 미뤄 온 셈이다. 예상한 대로 바닷가였다. 원래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전망이 좋아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海山土窟(해산토굴). 그곳에서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마침 찾아온 중앙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둘이서 해변 횟집으로 갔다. 그는 술을 줄였는데 집에서 마주왕을 한 병 들고 나섰다. 환자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은니, 빈병에 절반을 따른다. 술을 나누는데 그의 아내가 도와준다. 오랜만에 보는 부인이었다. 우이동에 살 때는 여러 번 만났던 얼굴인데 소박한 주부였다. 
  도다리 1키로를 시켰다. 반찬이 깔끔하다 나도 술을 마셨다. 그는 취한 듯 말에 열이 오른다.
  “경찰 경력을 피하지 마시오. 독특한 체험인데, 왜 피하는 거요.”
  매취 한 병을 더 시켰다. 해산은 바닷물 속에 잠긴 산이라고 한다. 그는 바다 이야기를 더 써야겠다고 한다.

1997. 6. 16

  문호리에서 아내와 일찍 내려와 밤에는 기말고사를 치렀다. 문에사조론에서는 엥겔스의 리얼리즘에 대한 명제보다 상징주의 시학 쪽 문항을 택했다.
  기말시험을 끝냈지만 아내가 내일까지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광주애서 더 기다릴 수밖에.
  오후에는 카페에서 이화경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승원을 만났다고 하니 나보고 “선생님이 그분보다 더 큰 사람”이라고 한다.

1997. 6. 25

  북한이 굶어 밀가루와 강냉이 가루를 보내는 배가 부산을 출발했다.

  새로 사온 대우 SOLO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니 기분이 한결 좋다. 
       *
  “유머는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서는 맛을 모른다. 부른 배가 빨리 내리라는 소화제가 유머이다.”
  “유머는 당장에 웃음이 탁 터져나오는 것은 좋지 않고, 십을수록 은근히 웃음이 소리없이 솟는 것은 제격으로 친다.”
  “영어를 생판 모르는 친구가 도미한다는 말을 듣고, 영어를 몰라 불편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나는 괜찮지만 미국 사람들이 불편하겠지.”
  “유머 이야기는 미국식이요 희극적인 이야기는 영국식이며 기지에 넘친 이야기는 불란서식이다.”
  이 말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이며 유머리스트인 마이크 트웨인의 말이다.
  “무덤을 보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신시내티의 무덤에선 나무가 크게 자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의 무덤에선 나무가 800야드나 무럭무럭 자란다. 그것은 모두 사람들이 죽기 전에 마신 물 때문이다. <미시시피강의 생활>에서.
  안식일날 고기를 너무 많이 잡지 말아라. 그렇지만 찬스를 놓쳐서 하느님이 모처럼 내리시는 선물을 거절해선 안 된다. ‘미 문학작품 중 가장 비극적이고 악마주의적인『백경』에서’
  자연스러운 유머보다 과장이 강한 게 중국 풍자다. 똥차를 꿀차라고 하여 자신이 부닥친 곤경을 미화시켜 웃는 능력.
 『춘희』의 작가인 小듀마가 아버지 大듀마를 헐뜯는 사람에게, “아버지는 비유하자면 큰 강과 같은 존재랍니다. 그 속에다는 소변을 보는 작가도 있답니다.”
  토론장(비례대표제)에서 침묵하는 샤르르 브노아를 보고 묻는 대답에 “그건 말야, 모두가 발언하고 있는 것 같은 장소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제일 눈에 띠게 마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