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3회)

충남시대 2025. 11. 19. 14:59

잔아(김용만) 소설가

사도 요한과 바울이 전도한 에베소

1997. 10. 3

  조식 후 하드리안신전, 셀서스 도서관, 엠피극장을 구경했다. 유서 깊은 에베소에서는 에베수스 유적지를 관람했다.
  에베소는 고대 에베수스 유적으로 유명하며 사도 요한과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옛 로마시대의 화장실에서 돌로 만든 변기에 앉아보기도 했다. 해변가에는 유명한 아폴로신전이 서있었다. 특히 로마시대의 길바닥 타일을 보면서 감탄했다

1997. 10. 4

  조식 후 히에라폴리스를 구경하고 파묵칼레로 이동하여 유명한 온천을 둘러보고 안탈랴로 이동해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했다. 
  이튿날은 조식 후 아스펜토스, 페르가, 안탈랴박물관, 하드리안 문, 뒤멘강 폭포를 관광했다.
 
1997. 10. 6

  안타랴에서 항공편으로 이스탄불로 향했다. 1시간10분 만에 도착하여 롭카피궁전, 그랜드바자르 관광 후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탄 후 공항으로 출발했다. 

1997. 10. 24

  그동안 바삐 지내는 탓에 일기를 못 썼다. 그 바쁨만큼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혓바늘이 설 만큼 대학원 선택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한마디로 즐거운 비명이었다.
  더구나 <중앙일보> 문화부장이 찾아와 자기의 모교인 동국대를 권하는 바람에 마음이 더 괴로웠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홍기삼 교수가 나한테 네 차례나 연락했었다고 한다.

1997. 10. 26

  동국대학교 홍기삼 교수(훗날 동국대 총장)가 대학원 석박사 과정 12명을 데리고 문호리 우리 집 창고방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치열한 공부에 나도 참석했다. 오후 3시에 모여 밤11시까지 수업하고 뒤풀이에 들어가는데 대단한 열정이다. 홍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너희들 1년에 4번씩 잔아 선생님 댁에 와야 학위를 받는다.”  

1997. 11. 3

  서울은행(삼성동)에서 경희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 등록금 305만원을 냈다. 어저께 경희대에서 합격에 따른 서류를 찾아왔던 것이다. 박사과정 5명, 석사과정 7명이 합격했다.

1997. 11.  7
I
  광주에서 금오고속을 타고 낮에 올라왔다. 오늘 밤에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석박사 과정이 우리 창고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박상우 작가 부부가 놀러왔다가 창고방 책상을 정리해주었다. 

1997. 11. 10

  우리 집에서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교수와 만났다. 내가 2년간 광주에서 지냈다고 하니 “우리가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었나?” 한다. 대학원 입학 얘기를 듣고는 나를 “독종”이라고 평했다.

1997. 11. 16

  오후 3시에 동국대 홍기삼 교수 인솔로 20여 명의 대학원생들이 와서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쉬는 시간마다 홍 교수는 내 서재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 서재 옆방에서 잤다.

1997. 11. 20

  프랑스의 기호학자이며 구조주의 학자인 롤랑 바르트에 대해 읽고 있는데 아내가 내 책상 옆에서 앉은뱅이 밥상을 놓고 끙끙대며 시를 쓰고 있다.  모파상의「비계 덩어리」에 대한 독후감을 쓸 때는 잘 풀리는지 미소를 지었다. 
  
1997. 11. 21

  이형기의 시작법을 읽다가 아내를 태우기 겸 김준태 시인을 만나기 겸 10시쯤에 학교에 갔다. 301호에서 詩를 수강하고 있었다. 다른 교실은 조용한데 그 교실에서만 수업이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니 김 교수가 반갑게 내 손을 잡는다. 학생들이 나가다 말고 나를 보려고 발길을 멈춘다. 아내에게 군산에 전화하도록 시키고, 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아내의 시가 좋다고 극구 칭찬하며 싹이 보인다고 했다.
 
  전주IC에서 정서방이 태워온 유라와 애들을 내 차로 옮겨 태우고, 새벽 3시경에야 양평에 도착했다.
 
1997. 11. 22 

   오후에 이 교수가 경기대 국문과 3학년생 30여 명을 데리고 왔다. 디른 학교처럼 오후 3시부터 밤늦게까지 수업을 마치고 뒤풀이에 들어갔다. 우리 집 야외수업이 각 대학교에 소문난 모양이다.
1997. 11. 28 

  과제물로 고재종 시를 평했다.「끌려가는 세계」를 수정했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와「실존철학」을 읽었다.
  
  아내는 김준태 교수가 자기의 시 <10월 서해>를 완벽하다고 칭찬했다며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1997. 11. 31

 보드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읽다.
 마침 낮에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영상문학 시간이어서, 1896년 이태리의 Marconi에 의해 발견된 전파로 인류는 Radio라는 기초적인 전파매체를 만들어 30년 동안 사용해왔고, 그 이후 음성과 화상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TV매체를 발명해 30여 년 동안 사용해 오다가 color TV 시대를 거쳐 이제는 Multimedia 시대에 도달했으며 몇 년 남지 않은 21세기 초에는 Digital에 의한 방송기술혁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 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새삼 느껴지는 마술성에 보르헤스의 난해한 작품을 읽고 있으니 내 몸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인쇄매체는 케케묵은, 뒤져보면 볼수록 그 과거 역시 마술물이 되어 버리는 듯한 기분, 그 기붐이 좋아 영원히 먼지 속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 내 마술적 리얼리즘은 여기에서 정의적 신념을 획득한다.

  보르헤스의 존재론적 탐구가 미로라는 해답 아닌 해답에 이르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 서구의 정신자를 지배해왔던 神의 선험적 존재를 부정해왔던 니체, 쇼펜하우어 등과 같은 후기 칸트학파의 영향 때문이다. 즉 신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은 형이상학적 물음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지는 <길 잃음> 뿐이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눈에 비친 세계는 불확실하고 혼돈적이고 마치 바빌로니아의 복전에서처럼 우연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우연이나 길잃음이 無神 때문이 아니라 (길잡이 없음 때문이 아니라) 정보산업․ 첨단과학의 예측불허 때문이다.....주제.
  소설, 에세이, ‘체험과 신비’를 쓰고 싶다.
  나는 보르헤스의 <Ficciones>를 읽으며 이 책과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했다. 
  내 기법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쓰기 위해 탐정과 섹스 기법을 동원하고 싶다. ‘마술적(환상적) 리어리즘’. 나는 환상이란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환상적 사실주의는 대략 보르헤스의 그것과 그의 다음 세대 학자인 홀리오 꼬르따사르(1916-1984)의 환상적 사실주의로 대별해볼 수 있다. 전자의 작품들이 비현실적인 꿈과 환영과 관념을 ‘사실화’ 시키고 있다면, 후자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역으로 현실을 ‘환상화’시키는데 중심이 모아져 있다. 

1997. 12. 3

  가스통 바슐라르의「촛불의 미학」을 읽었다. 어릴 적의 등잔불로 정서가 환원되었다. 정말 나는 그 세계를 찾아가야 한다.

.....꺼지는 촛불은 죽어가는 태양이다. 촛불은 하늘의 별보다도 더 천천히 죽는다.
 .....심지가 구부러지고, 심지가 까맣게 된다. 불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편을 먹는다. 그리고 불꽃은 아무 말 없이 죽는다. 그것은 잠들면서 죽는다. (p47)
  .....더욱이 스스로를 소멸시키면서 순수한 빛을 내고 있는 것은 불순물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악은 선의 양식이 된다. (p52)

  나는 모든 걸 새롭게 봐야 한다. 내 고향의 풀잎과 소리와 모닥불과  등잔불은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1997. 12. 7 

  아내와 광주로 내려왔다. 아내가 내일부터 기말 시험이 있기 때문. 마지막 길이 되는 셈이다. 언젠가도 그리워지는 추억의 길이 될 것이다.

 「끌려가는 세계」를「이상한 도시」로 수정했다
  김중태 시인의 말처럼 광주는 이상한 도시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