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 [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94회)

충남시대 2025. 11. 25. 09:55

잔아(김용만) 소설가

 

김대중 후보 15대 대통령 당선.

 

1997. 12. 9

  아내와 눈길을 달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세운 발사체 ‘나로호’를 보러갔다. 
  아내가 기말시험을 끝냈으니 1학년으로 중퇴할 수밖에 없다.
 
  밤에는 아내와 함께 염주동에 있는 횟집에서 신덕룡, 이은봉, 배봉기 등 소장과 교수들의 술대접을 받았다. 그동안 나한테 신세졌다며 헤어지기 전에 술 한 잔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四物에서  

북은 구름, 꽹과리는 번개, 천둥, 징(풍백)은 바람, 장구는 비
   
1997. 12. 12
 
  오늘밤 서울로 떠난다. 아내의 시험을 마지막으로 2년간의 광주 생활을 마치고 떠난다. 그동안 광주의 속살을 본 셈이다. 정겹고 추억 어린 2년이었다. 짐을 정리핶다. 셋방 아주머니와 포옹으로 작별했다. 우리 방 연탄불을 갈아줄 정도로 친절한 주인이었다.

  황형철이 시로 천마문학상(영남大)을 받았다. 정호승 시인이 심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선소감 란에 “소설가 잔아(김용만)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썼다. 지도교수가 섭섭할 텐데.

1997. 12. 16

  고려대 김화영 교수가 문호리로 “한눈팔기와 글쓰기”를 보내왔다. 버림으로써 얻는 미학의 원형이다. 침묵과 자유만이 진정 버릴 수 있다.

  ,,,,,소지종이는 불타며 날아감으로써 얽힘을 푸는 자유를 얻게 하고 새살(삶)을 돋게 한다고 적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마르셀이 마들렌느 과자 한 쪽을 한 스푼의 차에 녹여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덧없는 삶의 온갖 잡사와 부침에는 무관심해지고 어떤 “고귀한 본실”로 가득한 감미로운 희열을 느끼는 체험을 했다는 일화.         
  .....단순히 잊혀진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자아와의 만남이다.

  위 내용들은 신선하며 문학의 본질을 엿보게 한다. 나는 그동안 끌어안고 살아온, 내 모든 것인 고통을 “바람”이라고 명명했다. 그 가벼움을 통해서 존재의 무의미성을 찾아야겠다. 가벼움은 무거움을 거친 도착지이다. 산들거리는 나무는 바람을 쐬기 위해 존재한다.
  저 달빛!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저 달빛이 보고 싶어 두렵다.
 
1997. 12. 18

  어제 15대 대선이 있었다.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1.4%란 근소한 차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다. 이제 이 나라는 한 발 앞선 정치선진국이 된 셈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밀려오는 IMF를 어떻게 견디고 이겨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말했었다. 부정부패의 토착화와 고리를 끊기 위해서, 지역감정의 악순환을 풀기 위해서라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고. 김 후보처럼 큰 정치를 펴야 한다고. 아마 그는 그걸 알고 있을 것이었다.

1997. 12. 22

 전두환, 노태우 특별사면으로 복권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큰정치를 위한 배려였다.

1997. 12. 27
 
  홍용희(경희대:현대문학연구회 회장. 훗날 한강 남편) 교수의 연락을 받고 일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실에 갔다. 모처럼의 외출이다. 12명이 다 모인 셈인데 특별히 나를 끼워넣었다. 장충동 족발집과 노래방에서 놀다 밤 1시경에야 집에 도착했다.
 
  유라네가 연말 파티가 있어 준영이와 하영이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가 내일 군산비행장에 데려다 줄 참이다.

1998. 1, 1

  아내와 단둘이 지내는 양평 문호리 집에서 외롭게 새해를 맞이했다. 문학인생을 사느라 사회친구들과 소원했고, 4년 동안 학교 다니느라 文人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온 탓이다. 4년 동안 작품도 소홀했지만 대학 트라우마를 치료한 셈이다.

  중앙대 이동하 교수에게 경희대학원에 갔다고 이실직고했더니  연구원이 되어서라도 인연을 맺자고 한다. 

1998. 1. 7

  서울예전 박기동 교수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후리에 사는 오규원 시인(서울예전 교수)을 찾아갔다. 금년에도 서울예전에서 6명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는데, 현재 교수는 최인훈, 오규원, 최창학, 박기동, 김혜순, 이광호라고 했다. 서울예전 문창과에서는 거의 자율 학습이며 심지어 대중가요 써클도 있다고 한다.

  행복을 극복하고 불행을 쟁취했다. 김혜순의 말이었다. 김혜순은 이광호 교수와 우리 집에 두어 번 다녀갔다. 그녀는 ‘보리회’ 모임에서도 나와 둘이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1998. 1. 11 

  준영이와 하영이가 비행기로 왔다. 그놈들을 유라한테서 받아 안는 순간의 행복감이라니!

1998. 1. 23

  <中央日報>에서 신춘문예 시상식이 있어 나갔다. 행사가 끝나고 불고기를 먹고 나서 2차로 홍기삼 교수, 이시영 시인, 최동호 교수, 임영조 시인과 어울렸다. 술값은 모두 홍기삼 교수가 냈다.
  모두들 뭐에 불만인 듯 싶다. <창작과비평>에서 어울리는 이시영 시인은 내게 5번이나 편지를 보내줄 정도로 내 작품을 좋아했다. 

1998. 1. 30

  김원일이 故한무숙 선생 문학상 시상식이 있다며 나를 <한국일보> 13층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김원일이 며칠 내로 전숙희 선생과 문호리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한다.
 
  정서방이 광주 조정 교관 요원으로 발령이 났다며 휴가 차 양평에 왔다. 또 준영이와 하영이를 보게 되어 좋지만 시간이 아깝다.

1998. 2. 19

  김원일이 전숙희(83) 한국펜클럽회장과 전 회장 딸 강 여사와 셋이 문호리 집에 왔다. 새우를 1박스 사가지고 왔는데 원일이 직접 새우탕을 끓였다. 맛이 좋았다. 김원일에게 그건 점이 있다니!
  나는 전 회장과 2층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엌에서 점심과 술을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후에는 아내까지 5명이 설악 별장지로 갔다. 전숙희 모녀는 기사가 운전하는 자기네 차를 타고, 아내가 운전하는 내 차에는 김원일과 셋이 타고 갔다. 설악 별장지에는 전 회장의 땅이 있었다. 전 회장은 파라다이스 그룹 전낙원 회장의 누나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1998. 2. 25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추임식은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1998. 3. 5 

  대학원에 처음 등교했다. 정식으론 3월 2일이 개원이지만 내가 신청한 학과가 오늘부터다.
 
  아내가 서울예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바람에 2박 3일 동안 집에 없다. 광주대학을 1년 마친 아내는 서울예전에 응시하여 詩 실기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용산고 <큰그릇>에 군두언 원고를 보냈다. 두 번째 청탁인데 IMF시대에 대해 써달라고 해서 4년 만에 또 쓰는 셈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명화 <쉰들러 리스트>를 다시 감상했다. 그 화제작은 내 삶에 영향을 줄 것 같다. 삶이란 뭐냐를 다시 묻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는 6시부터 “현대문학 연구회” 모임이 있어 참석했는데 석사 박사 과정의 학생과 졸업생이 모여 공부하는 전통적인 모임이다. 
  첫 인사에서 “석사과정 새내기 잔아(김용만)입니다.”라고 서두를 꺼내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인원은 40명가량인데 인사를 끝내고 곧바로 시팀과 소설팀으로 나뉘어 수업에 들어갔다. 치열하고 수준 높은 토론에 당황스럽다. 나중에 뒷풀이 때 나는 당분간 옵서버로만 남겠다고 엄살을 떨었다. 예상한 바이지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큰일이다.
  뒤풀이 중에는 사회자가 나에 대한 특별 소개가 있어 또 일어나 “운명적으로 경희인이 된 이상 교명에 누가 안 되도록 새롭게 정진해서 멋진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그날 밤에는 홍용희가 박사학위를 받아 기념패 전달식이 있었는데 그는 내 곁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홍용희의 말이다.

  “선생님 것을 크게 다루고 싶어요.『늰 내 각시더』‘작가의 말’을 아내(한강)와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누었죠. 진한 감동을 받았어요.”